구약에서 수도원 활동의 원형
11/19/14
김에스더

프린스턴 신학교 목회학 석사
예일대학교 신학부 신학 석사
드루대학교 신학부 목회학 박사
미국장로교 (PCUSA) Palisades 노회 소속목사
개신교수도원수도회 제2대 수도원장
엘리야는 주전 9 세기에 북 왕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지자이다 . 당시 거센 종교적 , 사회적 , 정치적 세파 속에서 온전한 여호와 신앙의 보루로서 바알종교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 특히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의 악명 높은 왕과 왕비 그리고 그들의 추종세력인 바알종교의 지지자들과 대항하며 홀로 개혁들을 수행해 간다 . 바로 이런 배경의 저변에 엘리야의 호렙산에서의 수도 ( 원 ) 생활이 있음을 묵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수도원 생활 또는 수도사 (monachos) 란 의미는 선지자 엘리야에게 좀 어색 하지만 기독교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수도사들의 모습과 수도원 삶에서 홀로 있는 생활과 (monachos),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 (apotakikos) 들로 금욕생활을 하며 ,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은둔자 (anchorite)[1] 의 삶 등이 엘리야의 호렙산 생활과 관련 지을 수 있을 것이다 . 수도사들이 누렸던 종교적 명성과 권력자들을 대적하여 교회정치에 개입하는 모습 등을 살펴볼 때 그다지 무리는 가지 않는 연관성이 엘리야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된다 .
엘리야가 수도 ( 원 ) 생활에서 얼마를 그가 호렙산에서 지체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지만 ( 엘리사와 레갑인들 ‘, 왕하 10:15) 처음에는 홀로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그 힘은 대단하였다 . 바로 이것이 엘리야의 수도생활의 저력인 것이다 . 엘리야 한 사람이 무슨 힘을 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라고 한 사람이 사회를 바꾸고 국가가 바른 신앙을 지켜 나가는 버팀목이 되었다 .
북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은 그의 아들 아합과 시돈 왕인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결혼시킴으로 ( 왕상 16:31) 바알종교와 야웨신앙의 이원 종교 체제를 형성한다 . 외교적으로는 주변국간의 정치적인 동맹으로 이어져 ( 왕상 22:1) 서진하는 앗수를 왕 살만에셀 3 세 ( 주전 859-825) 를 물리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2]. 정치 외에 국제 교역관계와 문화적 개방을 통해 북 왕국은 경제적인 번영과 새로운 문화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3]
오므로 왕조의 종교정책 역시 그들이 추진하던 외교정책의 맥락에서 주변국가와 맺은 협정을 염두에 두고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 그래서 아합은 ( 주전 870-851 년 ) 자신의아내인 시돈 여인 이세벨을 위해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짓는다 ( 왕상 16:32; 왕하 10:8). 이 신전이 왕후를 위한 사적인 것 이상을 넘어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가진 백성들을 바알 신앙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 왕하 10: 18-29). 이제 이스라엘 내에 바알 숭배와 여호와 신안의 공존이 [4] 정당화 되게 되었고 가나안의 토착신앙인 바알과 아세라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통 적 신앙을 근원적으로 파괴했으며 오므리 왕조의 족요정책은 이스라엘 종교를 다신교의 형태로 변행시키는 죄를 짓게 된다 .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인 저항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기대하지만 당시 그 거센 혼합주의 파도를 막아낼 힘이 없었던 것이다 . 엘리야가 중심이 된 이 저항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신앙의 영역에서 저항의식을 불러일으키고 개인에서 출발하여 후에 집단을 형성하는 모습으로 발전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5]
이세벨은 두로로부터 상당히 많은 바알 예언자들을 데려와 구고로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 왕상 18:19). 야웨 신양을 멸절시키려는 바알 종교 세력에 의해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고 , 여호와를 위한 제단들은 훼파되었고 신실한 예언자들은 지하로 숨어 들게 되었다 . ( 왕상 18:4) 자신들을 인도해 줄 종교적 지도자들을 잃은 백성들은 바알 신앙과 여호와 신앙의 “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 하고 있었다 ( 왕상 18:21). 모두가 숨고 잡히고 죽는 위험한 환경에서 “ 하나님의 말씀 ” 을 전하기 위해 엘리야은 홀로 위기의 때에 등장하게 된다 .
비록 국가가 바알 숭배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지는 않았다 할지라고 , 아합 왕가는 바알종교의 공존을 허용하고 방해하니 않는 태도를 보였다 . 거대한 국가가 바알 숭배를 정당화 시키는 달걀로 바위를 깨뜨리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이 왕의 권력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모두가 마음 속으로는 생각을 하면서도 입 밖으로 외치지 못했고 , 국가 주도의 종교 혼합주의에 맞서 싸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
심지어 반대 세력들은 홀로 타락한 왕권에 맞서 싸우는 엘리야를 향해 ‘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자 ‘[6] 라는 오명을 씌운다 . 그러나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요 ( 왕상 18:37, 39), 바알은 무기력한 거짓 신에 지나지 않음을 갈멜산에서 입중하게 된다 ( 왕상 18:21-40).
왕정 초기에 다윗에 의해 갈멜 지역을 자신의 왕국 속에 포함시킨 후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건축하게 된다 .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두로에 그 지역을 팔았을 때 ( 왕상 9:11) 야웨 신앙의 제단을 두로의 바알 제의로 대체가 일어났고 역사 속에 묻히게 된다 .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오직 엘리야가 그 제단이 파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왕상 18:30 하 ), 그러므로 바알 우상숭배자들과 갈멜산의 싸움은 다시 그곳을 하나님께로 되돌리려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무너진 단의 수축은 곧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신앙의 회복의 몸부림이었고 바알 종교에 대한 참된 신앙을 가진 홀로 선 저항운동으로 자리매김 된다 .
엘리야는 놀라운 갈멜산의 승리로 일시적인 백성들의 지지에도 불고하고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일종의 지지 집단을 가지지 못했고 ( 왕상 17-18 장 ), 조직화된 집단의 배경 밖에서 활동하는 고독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게 된다 .[7] 사회적 지지기반의 결여는 바로 개인의 생존 위협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갈멜산의 승리를 뒤로하고 호렙산으로 도망쳐 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여기서부터 엘리야의 진정한 수도원 생활이 시작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사십 주 사십 야의 금식의 여정을 ( 왕상 19:8) 마친 후 드디어 호렙산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그가 거할 으신처를 발견하게 된다 . 숨어 있는 에리야에게 하나님이 질문하였을 대 그는 자기 백성이 언약을 버리고 여호와의 단을 헐며 , 남은 모든 예언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 산으로 도망쳐 왔다고 불평을 한다 ( 왕상 19:10, 14), 열왕기상 17-18 장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엘리야의 생애 중 가장 어려운 때 터져 나온 대답이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할 수 없기에 그분이 친히 나타나셔서 (‘ 하나님의 현현 ‘) 그가 수행해 나갈 모든 일들을 위해 하나님의 지지를 보여주는 비전의 시간이 바로 호렙산에서 보낸 개인적인 수도 ( 원 ) 생활이었다 .
모세가 시내산 ( 호렙산 ) 에서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엘리야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은 후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죽임으로 야기한 것보다 더 큰 사회적 격변을 불러 일으킬 비전의 시간을 호렙산에서 갖게 된다 .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으로 ( 왕상 19: 15-16) 오므리 가문의 급격한 종말을 가져오고 ,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그의 동역자로 삼게 하실 것을 말씀으로 듣게 된다 ( 왕상 19:16). 도 놀라운 것은 바알 제의를 받아 들이지 않는 칠천 명이 남아있음을 엘리야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다 ( 왕상 19:18). 이처럼 그의 호렙산에서의 수도 ( 원 ) 생활은 누구로 부터 도움을 얻지 못하던 엘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지지를 받고 , 장차 있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권위를 부여 받는 준비 기간이 되었다 .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장소를 비록 홀로 있게 만드는 고독감이 있지만 그곳을 경험하지 않으면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 하는 겁쟁이로 남게 된다 . 그 시간 이후 ( 왕상 19:19) 엘리야는 은둔자가 아닌 활동가로 나서게 되면 오므리 왕조에 도전하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오므리 왕조의 아합왕과 이세벨이 부당하게 나봇의 포도원을 얻는 사건을 일으키자 ‘ 길르앗의 농부출신ㄴ 엘리야는 이제 “ 일어나 내려가서 ”( 왕상 21:18) 그 땅을 착취한 아합에게 왕권의 남용을 비난하고 바알 숭배에 대한 심판을 과감하게 선언한다 ( 왕상 21:19-26)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각 지파 별과 개개인의 기업이 왕권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었다 . 드러나 이세벨 이후 바알 종교에 근거한 두로식 왕권은 개개인의 기업을 탈취하는 폭력을 생사했엇다 . 황이 속임수로 한 사람의 생명을 죽이면서 자신의 얻고자 한 포도밭을 탈취하는 사건은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의 종교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
아합과 이세벨이 신봉한 바알종교는 개개인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 동원되어도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더욱이 힘있는 자의 욕구는 그 누구보다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욕구로 인정하는 종교임을 나타낸다 . 반면 ,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 앞에 인간 개개인의 욕망이 절제되고 , 그것에 철저히 따르는 책임 있는 종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진 세상에 선포 된다 .
지금까지 늘 주변인으로만 활동하던 엘리야가 이제 바알 숭배로 더럽혀진 이스라엘의 신앙을 개혁하기 위한 엿가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허리에 띤 남루하고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 왕하 1:8) 그의 심장 속에는 가장 뜨거운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
그는 홀로 일어섰지만 외롭지 않았고 바알 신앙에 대한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의 회복을 꿈꾸는 자였다 . 그의 홀로 섬은 나중 더 많은 동역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
모세가 출애굽을 한 후 계시를 받은 시내산 ( 호렙산 ) 에서 [8] 선지자 엘리야가 홀로 수도생활을 했다는 것은 단순하고 일시적인 이스라엘의 신앙 위기에서 그저 이상화된 과거의 전통으로 회귀가 아닌 온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생명을 줄 수있는 신앙의 원천으로 되돌리려는 진정한 여호와 신앙을 가진 수도자의 모습이었다 .
[1] E.A. Judge, “The Ealiest Use of Monarchos for ‘Monk’” Jahrbuch fur Antike und Christentum 20 (1977), 72-89.
[2] 다메섹에 그리 멀지 않은 북방에 있는 하맛 부근의 카르카르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아합은 만 명의 보병과 이천 대의 병거를 보냈다 . 앗수르는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하지만 앗수르군은 퇴각하여 7 년 동안 서부지방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함은 그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해석해야할 부분이다 . 그렇지만 장차 앗수르의 정치적 야심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 Pritchard, ANET, 278-79 을 참조
[3] 이에 대한 증거는 두로는 식료품을 이스라엘 의존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농산물의 판로롸 다양한 교역기회들이 이스라엘의 부를 추적하게 만들어 주었다 . 사마리아 왕궁 건축물에 반영되어 있는 고도로 발달된 건축술과 그곳에서 발견된 값비싼 상아 장 식품 ( 왕상 22:39 절에 언급된 ‘ 아합의 상아궁 ‘) 등이다 . 오므리 왕조에 의해 알려진 북 왕국 이스라엘의 국제적 명성은 앗수르 사람들에 의해 북 왕국을 마트 후므리 또는 비트 – 후므리 (‘ 오므리의 땅 또는 오므리의 집 ‘) 로 불렸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 J Finegan, Light from the Ancient Past(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9), 207.
[4] 아합의 자녀들의 이름을 볼 때 아하시야는 “ 야워께서 ( 도움을 주시기 위해 나는 손을 ) 붙잡으셨다 ” 의 뜻이고 , 요람은 “ 야웨께서 높임 받으신다 ” 그리고 아합의 누이인 아달랴는 “ 야웨는 자신의 탁월성을 선포셨다 ‘ 의 뜻으로 모두 야웨신명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5] R. Albertz, 이스라엘 종교사 1( 강성열 역 : 서울 :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 2003), 335.
[6] 개역개정은 “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 ” 로 공동번역은 “ 이스라엘을 망치는 장본인 ” 으로 번역하였다 . 아카르의 의미는 ‘ 혼란에 빠뜨리다 . 방해하다 . 불행을 초래하다 . 파멸시키다 ‘ 는 의미를 고려 할 때 ‘ 이스라엘을 호리는 자 ‘ 로 번역도 가능하다 .
[7] R.R. Wilson,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과 사회 ( 최종진 역 , 서울 : 예찬사 , 1991), 238.
[8] 하나님의 산 ( 출 24:13) 은 시내라는 이름 ( 출 19:18, 20,23) 으로 또는 호렙으로 나타난다 ( 출 3:1; 왕상 1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