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미지와 기도
07/21/14
고영민

고려대학교 졸업, 사학 전공(문학사, B.A) 장로회 신학 대학원 졸업,
목회학 전공(교역학 석사, M.Div.) 캐나다 토론토 대학,
영성신학 전공(신학석사,S.T.M.)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졸업,
영성신학/영성지도자과정 전공(목회학 박사, D.Min)
토론토영락교회 부목사(영성 및 성인교육담당)
이 글은 제가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쓴 목회학 박사 논문, 'A Critical Study of Images of God and Practice of Prayer in the Korean Protestant Church'(2003)을 토대로 해서 좀 더 쉽게 이야기체로 쓴 글입니다.
1. 하나님 이미지와 기도 생활
1997년 이후 저는 일대일로 또는 그룹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를 하였습니다. 젊은이들도 있었고, 신학생들도 있었고, 연세가 육십 이상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신 분들도 있었고,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은 주로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한국 이민자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저에게 영성지도를 받은 사람 중에는 몇 명의 미국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길게는 일 년, 어떤 분들은 육 개월, 어떤 분들은 삼사 주, 다양한 기간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을 깊이 만나면서 저는 그들의 영성생활, 특히 기도생활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영성 지도자(Spiritual Director)로서 이런 저의 경험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 근본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이미지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미국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사실은 그들에게 본격적으로 '렉치오 디비나', '복음성 관상기도'와 같은 사귐의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더욱 강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저는 유학을 와서 영성을 공부하고 새로운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익힌 후에, 사귐 중심의 새로운 방식의 기도를 교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기도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가다가 기도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이 단순히 지금까지 하지 않던 낯선 기도를 배우는 데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니,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였습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로는 사랑의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가슴으로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무서운 하나님을 고백하였습니다. 마틴 부버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관계어입니다. 하나님은 '그것'(It)이 아니라, '당신'(You)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당신'(Eternal You)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만남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슴으로 만나는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 의해서 형성된 하나님에 대한 그림, 한국의 유교적인 문화가 만들어낸 하나님에 대한 그림, 관계(Relationship)지향 보다는 업적(Performance)지향적인 한국 교회 문화 속에서 형성된 하나님에 대한 그림은 '무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서 그 기준에 우리가 도달하기를 원하시는 엄격한 분으로 하나님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랑, 이 한 마디 외에 다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경험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경험과 문화에 의해서 잘못 형성된 하나님 이미지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때에 큰 장애가 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본격적으로 맺으려고 할 때에 관계를 좌우하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 머리로 아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림의 컬러가 관계의 컬러를 결정합니다. 어두운 색깔의 하나님 그림을 가진 사람은 관계의 그림도 어둡게 그려집니다. 무서운 하나님 이미지를 가진 사람에게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라기보다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무섭지만 힘이 센 분으로부터 얻어가지고 오는 일방적인 간구의 시간일 뿐입니다. 무서운 하나님 이미지는 간구형 기도를 드리는 데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교제형 기도를 나누는 데는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으로 무섭게 느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눈다든지 친교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야 합니다.
2. 가장 큰 기도의 장애물은 하나님 이미지이다.
하워드 라이스(Howard Rice)는 장로교 전통을 가진 영성학자입니다. 그는 제가 영성지도자 과정과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던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의 교수였습니다. 그는 40년 전에 장로교 신학교 안에 최초로 영성센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개혁교회 전통에서 영성을 실험하고 연구한 유명한 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 <개혁주의 영성>(Reformed Spirituality)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음의 말은 영성지도자로서 그의 오랜 경험과 신학교 교수로서 많은 연구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20세기에 기도에 있어서 주요한 장애물(the chief hinderance to prayer)은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distorted image of God)입니다.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반적 관계(companionship)를 가지지 못하게 만듭니다."
라이스 교수에 의하면,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God's transcendence)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장로교 전통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초월성과 내재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전적으로 다는 존재이십니다. 우리위에 계시며, 우리가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 속으로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을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하늘은 어떤 공간을 말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초월자이심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하늘과 땅의 간격처럼, 넘을 수 없는 절대간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며, 의로우신 분이시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내 곁에 계시며,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두 팔 벌리고 달려가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시며, 우리가 달려갈 때마다 우리의 죄악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안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모순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을 절묘하게 하나로 묶으시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나치게 '하늘에 계신' 이 부분만을 강조한다는 것이 라이스 교수의 주장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반적인 친교를 나누지 못하고, 일방적인 상명하복의 관계만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도시간에 하나님과 친밀하게 기도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도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교제가 되지 못한다는 분석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용서하지 않는 재판관'(unforgiving judge)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이미지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분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할 분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무의식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무서운 하나님 이미지는 우리의 깊은 기도를 방해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동반적 관계(companionship)를 가지는 사귐의 기도를 하는 데 결정적인 방해물이 됩니다. 성인이 되어서 개발된 머릿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보다는 어린 시절에 가슴속에 형성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더 강하게 작용을 하기 때문에 기도생활을 하는 데 실질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결국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는 우리의 기도생활을 뒤틀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라이스 교수는 하나님과 친밀하게(with intimacy), 열정적으로(with enthusiasm) 기도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이미지에서 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를 끊임없이 치유 받고, 하나님 이미지에서 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에서도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이미지를 바꾸니 기도가 바뀌었다
하나님 이미지와 기도생활의 상관성을 연구한 임상적인 연구가 많이 있습니다. 두 가지 대표적인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윌리엄 파커와 일레인 데어(William R. Parker and Elanine St. Johns Dare)는 기도치료그룹(Prayer Therapy Group)을 만들었습니다. 이 그룹은 4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구성원은 가정주부, 공장 노동자, 목장주인, 교사, 비즈니스맨, 예술가, 목회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습니다. 45명 한 사람, 한 사람씩 주의 깊게 인터뷰한 후에 전체를 각각 15명씩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연구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무섭고 거리가 먼 하나님 이미지(feared and distant images of God)를 가진 사람들은 기도생활에서 진전이 아주 느렸습니다. 기도에 대한 태도, 기도의 내용 등 모든 실험에서 어두운 하나님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밝은 하나님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보다 부정적인 결과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한편 네델란드의 목회신학자인 한스 지메린크(Hans Siemerink)는 하나님 이미지와 기도생활의 상관성을 연구하기 위해서 임상적인 실험을 하였습니다. 두 개의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그룹은 '실험기도 그룹'(an experimental prayer group)이고, 다른 하나는 '통제기도 그룹'(a control prayer group)입니다. 전자는 연구자에 의해서 교육과 치유를 받은 그룹이고, 후자는 전혀 받지 않는 그룹을 말합니다. '실험기도 그룹'은 8주간 2시간씩 매주 모여서 목회자의 지도하에 하나님 이미지와 기도에 관한 상담과 교육과정을 밟았습니다. 설문조사를 통해서 나타난 바에 따르면, '실험기도 그룹'과 '통제기도 그룹'과는 하나님 이미지와 기도에서 아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은 가까이 계신 분,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분,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분으로 전이해를 가지고 기도에 들어간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 사이에는 기도의 내용과 방식이 현격하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실험기도 그룹'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중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으나, '통제기도 그룹'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결국 이 연구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How we see God)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느냐(How we pray)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나의 영성 실험 이야기: '하나님과 친구하기'
지금까지 저의 이론적 연구와 임상적 관찰을 바탕으로 해서, 저는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를 치유하는 '하나님과 친구하기' (Becoming a Friend of God)라는 영성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 영성프로그램은 저의 목회학 박사논문을 위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처음에는 만들어졌으나, 그 이후 여러 차례 각각 다른 대상을 상대로 진행되면서,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 졌습니다. '하나님과 친구하기'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그룹 영성지도'(Group Spiritual Direction)의 원리와 방식을 따라서 모임을 구성하고 진행하였습니다.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라는 개념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직도 낯선 개념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영성분야에서 '영성지도'만큼 가장 급속도로 대중성을 얻어가면서 주목을 받는 분야는 없을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갈망과 욕구는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출판되는 기독교 서적과 개최되는 세미나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주제는 단연 영성분야입니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욕구는 그 이전의 것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강하게 원하는 것은 영적 경험(spiritual experience)입니다. 그것도 집단적이며 획일적인 영적인 경험이 아니라, 개성화된 하나님 경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느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표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영적 경험보다는 직접 자신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자신의 하나님 경험(experience of God)을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유롭게 나누기를 원합니다. 일방적인 가르침(Teaching)보다는 쌍방적으로 함께 나누는 것(Sharing)을 더 좋아합니다. 에디 깁스라는 영국출신의 학자는 '미래 교회'(Next Church)라는 책에서 이러한 현대 교회의 흐름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 현대인들은 예배 방식도 '보는 예배'에서 '느끼는 예배'로, 교육 방식도 '대중적 교육'에서 '개인적 멘토링'으로, 목회자에 대한 기대도 '대중적 설교가'에서 '영적 지도자'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영성지도가 새로운 목회 분야로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유진 피터슨은 영성지도를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a new paradigm of ministry)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개신교회 목회자의 주요한 관심은 영혼을 돌보는 일(caring souls)이 아니라, 교회를 운영하는 일(running the church)에 있다고 합니다. 점차로 목회자가 영혼을 돌보는 영적 인도자(spiritual guide)라기 보다 회사를 운영하는 바쁜 회사 회장(CEO)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는 지적을 합니다. 그에 따르면 영성지도가 교회의 핵심적 기능으로 목회자의 중심적 역할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진정한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영성지도는 학자에 따라서 영적 전통에 따라서 각각 정의될 수 있습니다. 긴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서 하면, 영성지도는 한 마디로 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는 관계(interpersonal helping relationship)를 말합니다. 이 관계의 초점은 서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임재와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게 해주고, 더 잘 반응하도록 도와주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더 통전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영성지도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지도를 다음의 네 가지 동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기(attending), 반응하기(responding), 성장하기(growing) 그리고 살아가기(living)
저는 일대일 영성지도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지만, 목사로서 교회에서 목회사역의 일환으로 영성지도를 할 때에는 대부분 그룹 영성지도를 합니다. 그 이유는 개신교인들은 이미 성경공부나 구역 모임등과 같은 그룹 모임에 대한 경험이 이미 있어서, 일대일 영성지도보다는 그룹 영성지도를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성지도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 속에서 일대일 영성지도는 지극히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영적 혜택을 주지만, 그룹으로 했을 때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대일로 영성지도를 했을 때에 개 교회에 상황에서는 비밀보장과 교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위험성이 수반되는 것도 그룹 영성지도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룹 영성지도가 좋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각자의 영적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를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영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성령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반응하면서 영성지도 모임 전체가 하나의 깊은 기도가 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5. '하나님과 친구하기'에서 일어난 일들
'하나님과 친구하기' 모임에는 연령과 교회 직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이 모임에 들어오는 사람은 하나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자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영적 경험을 기꺼이 형제자매들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보통 한 그룹이 5명을 넘지 않으며,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그룹을 구성합니다. 이 모임의 목적은 자신들 안에 있는 하나님 이미지를 발견하고, 성경에 나타난 다양하고 풍성한 하나님 이미지를 배워서, 내 안에 있는 왜곡된 하나님 이미지에서 자유케 되어서,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모임의 앞부분에서는 하나님 이미지에 대한 강의나 성경공부가 있으나, 모임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참가자 각자가 새로운 기도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나누는 것에 더 많은 초점을 두게 됩니다. 모임은 경우에 따라서 6주 또는 12주로 진행되며, 매 모임마다 촛불을 켜서 이 모임이 성령님의 임재 속에 이루어지는 영성모임을 참가자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참가자에 따라서 이 모임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평가가 나옵니다. 그러나 참가자 절대 다수는 이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새로운 이해를 가지게 되며, 하나님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모임을 통해서 모임의 이름대로 '하나님과 친구하기'로 들어가기 위한 결정적인 계기를 많은 사람들이 마련합니다. 특별히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못한 '렉치오 디비나', '복음서 관상기도'와 같은 묵상기도, 관상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찾게 됩니다.
다음은 이 모임의 참가자들이 모임을 마친 후에 설문지에 남긴 글입니다.
"이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좀 더 가까운 분으로 느껴졌습니다."(20대 여성) "나는 지금까지 30년 이상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오랜 기간 이야기한 적은 처음입니다."(50대 여성) "이 모임은 나의 하나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결정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룹 영성지도가 처음에는 불편하고 낯설었지만, 점점 지날수록 편안하고 도움이 되었습니다."(40대 남자) "새로운 기도를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일방적인 관계에서 대화적인 관계로 기도가 갈 것 같습니다."(40대 남자) "이제 하나님을 좀 더 편안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50대 남자) "침묵으로 드리는 묵상기도, 관상기도가 나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기도와 성찰을 통해서 나의 자질구레한 일상사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20대 남자)
6. 하나님의 친구가 된 어느 집사님 이야기
글을 맺으면서 앞에 제가 제시한 이론과 경험의 좋은 예로서 '하나님과 친구하기' 이 모임에서 만난 한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분은 의사로서 교회 안에서는 모든 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헌금, 봉사, 예배,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얼굴은 항상 한 편에 어두운 구석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긴장감이 늘 얼굴에서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과 친구하기' 모임에 처음 오셨을 때에도 그의 얼굴에서는 하나님과 친구할 생각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경직된 얼굴이었습니다. 두 번째 모임에서 나는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에게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그 때에 이 분이 대뜸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코치와 같습니다. 항상 '더 빨리' '더 높이'를 외치면서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도록 촉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집사님은 늘 이 코치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더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 자유과 기쁨 속에서 주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자기가 설정해 놓은 높은 기준에서 보니깐 다른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자꾸 정죄하는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가족과 주위 교우들에게도 깐깐한 분으로 비쳐졌습니다. 더 영적 나눔을 가지면서 나는 왜 이 분이 하나님을 코치로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아버지는 교회 장로님으로서. 아주 원리 원칙대로 신앙 생활하는 그런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강하게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특별히 장남인 자신에게 더욱 강하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분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학시절 그의 표현대로 하면 잠시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게 된 C.S. 루이스(C.S. Lewis)의 책에 감명을 받고 다시 신앙의 삶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돌아온 이후에도 자신의 방탕한 삶이 쉽게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죄를 씻는 마음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과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 분이 가진 코치 하나님 이미지는 육신의 아버지가 심어준 그림이라는 것을 저는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이 이 분에게는 치유의 시작이었습니다. 계속적으로 하나님 이미지와 관련한 강의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많은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작고 좁은 하나님 이미지를 버리고, 더 넓고 풍성한 하나님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머리의 변화는 모임의 후반부로 오면서 가슴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새로운 기도경험을 통해서 그의 가슴에 사랑의 하나님이 깊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복음서 관상기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자기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 속에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은 코치의 엄격한 눈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애로운 눈으로 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풀밭에 누워서 이야기하고 뛰노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인 것을 가슴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멀리 계신 무서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다정한 하나님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게 되자, 그 분의 얼굴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도 점차 기쁨과 자유 속에서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주위 사람들에게도 따뜻하고 넉넉하게 대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는 오랜 세월 끝에 드디어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