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생활 여정의 한토막
11/17/14
박윤수

전 서울대학교,Johns Hopkins 대학 초빙교수 역임
전 Office of Naval Research 물리학자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 졸업. Univ. of Alberta 석사
Univ. of Cincinnati 박사, 전북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워싱톤감리교회 장로
저는 지난 84년 동안, "믿는 자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고린도후서 5장의 말씀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마가복음의 12장의 말씀을 제 개인 신앙의 모토(motto)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들을 통해서 자연히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믿음과 실천이 조화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그 믿음이 과연 참되다면, 그는 교회봉사 뿐만 아니라 사회봉사와 사회정의에도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들 때문에 저는 "우리자신을 위해서 한 것들은 우리와 같이 죽어 버리지만 남을 위해서 또 세계를 위해서 한 일들은 영원히 남고 불멸하다"라고 했던 Albert Pine의 말을 참 좋아합니다. 또 "하나님께 가장 수용될 수 있는 봉사는 이웃에게 선행을 하는 것이다"라고 한 Benjamin Franklin 의 말도 좋아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믿는다 해도, 그 믿음이 균형을 잃으면 또한 치우치면 자칫 습관이 되기 쉽고 태만해지기 쉽습니다. 매주일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자만할 수 없습니다. 그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인가가 더 필요합니다. 그것은 매 주일 듣는 목사님의 설교 속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항상 돌아보면서, 우리가 전해 들은 복음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삶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의 우리 믿는 자의 책임을 인식하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균형잡힌 신앙 생활을 견지하는 데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항상 나와 같이 한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서 84년을 신앙생활을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김영봉 목사님이 인도하셨던 영성 일기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서, 한가지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지난 84년간 신앙생할을 하면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살아왔으니 지금껏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영성일기에 대해 배우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서 듣고 나니, 내가 지금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 과연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많은 열심을 내지 못한 것이 저의 삶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보이는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열심을 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언제나 제 곁에서 동행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느 간호사가 쓴 이런 이야기가 있어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아침 8시 30분쯤 되었을까? 80 대의 노신사가 엄지 손가락의 봉합사를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그는 9시에 약속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노신사를 체크하고 의자에 앉으시라고 권했다. 아직 의사들이 출근하기 전이어서 그를 돌보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시계를 연신 들여다 보며 초조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직접 돌봐 드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나는 노신사의 상처를 치료하며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서두르시는 걸 보니, 혹시 다른 병원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으신가 보죠?"라고 물으니, 노신사는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는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인의 건강상태를 물으니, "아내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부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며, "어르신이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시면, 부인께서 언짢아하시나 보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신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뇨,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지 5년이나 됐는 걸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부인이 선생님을 알아보시지 못하는데도 매일 아침마다 요양원에 가신단 말입니까?" 노신사는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몰라보지만, 난 아직 그녀를 알아본다오."
노신사가 치료를 받고 병원을 떠난 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야 했다. 내 인생을 걸고 찾아 왔던 '사랑의 모델'을 드디어 발견했다는 기쁨에, 내 팔뚝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적인 것도 로맨틱한 것도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는 앞선 글에서 소개한 그 노신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몰라보는 그 아내의 모습은 마치 저 자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은 이미 곁에 오셔서 나와 늘 동행하고 계셨지만 그 사실을 모른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의 신앙생활 여정의 한토막
저의 부모님은 일찍이 이북 평안남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독실한 장로와 권사셨습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을 도운 탓으로 옥고를 치루게 되었고요, 그 후에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경북 김천에 정착하셨습니다. 경북 김천에서의 저의 어린시절은 부모님의 신앙생활의 영향을 받아, 마치 저의 전 삶이 교회생활에 푹 젖어 있는 듯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참고로 제 어머님은 김천 황금동장로교회에서 여선교회장을 18년 동안 연속으로 장기집권 하셨던 분이셨으니 온 가족이 얼마나 신앙생활에 열심이었겠습니까? 그런 독실한 신앙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저희 형제 4남 3녀는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행가도, 함부로 부르지도 못했고요, 찬송가나 학교에서 배운 동요만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형제끼리 화투도 치지 못했습니다. 저의 어릴적 삶을 돌이켜 볼 때, 생각나는 것은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지도자들과 선배, 그리고 신앙의 친구들이 전부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을 때, 저는 중학교 4학년 이였습니다. 그때는 고등학교 제도가 아직 시작되기 전이라, 4년제 중학교를 마치고 나면, 대학 예과에 응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희망은 현 서울 대학교의 모체인 경성대학 예과에 입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골중학교에서 경성대학 예과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척 힘든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응시하여 경성대학 예과에 드디어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골 중학교에서 경성대학에 입학한 저는 김천 여학생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방학 때 김천에 내려가면 경성대학의 망토를 걸치고 김천 여자 중학교를 한 바귀 돌곤 했읍니다. 그런데 김천 여고 출신을 만나지 않고 이화여고 출신을 만났습니다.
그 후에 1948년에는 군정부에서 추진하던 국대안이 성립되어 저는 국립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학부 3학년 때에 6,25 사변이 일어나서 동료들과 교수들이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피난와서 전시대학에 다녔는데요, 당시에 오후가 되면 미군 항만 부대에서 항만장의 보조관으로 취직이 되어 통역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서울에 있을 때에부터 맡아 해오던 서울대학교 기독학생회 회장 일과 강원용 목사님이 돌보시던 전국기독학생회 총무로서의 일에도 열심을 내었습니다. 또 황성수 의원이 인도하시던 전국기독청년회 일도 도와 드렸습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기독교 강좌와 기독교 학생 행사에 쫓아 다녔고, 창경원과 한강이 어디에 붙어있는 줄도 모른 채 공부나 교회행사에만 몰두했었습니다. Emil Brunner, Reinhold Niehbur, Paul Tilich, Karl Barth 등의 유명한 신학자들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찾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카나다 Alberta대학의 기독학생회(Student Christian Movement of Canada)에서 6,25 사변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장학생을 한 명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응시를 했는데 다행히 선발이 되어서 저는 1952년 8월에 유학의 장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카나다 Alberta 대학에서는 원자핵 물리학 석사학위를 마쳤고요, 오하오 주 Cincinnati 대학에서는 고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Dayton, Ohio 미공군 연구소에 취직이 되어 반도체 연구실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데 대해 죄책감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동료와 후배와 과학계를 위해서 봉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험장비와 자료를 한국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또 일년에 한 명씩 제 연구실로 한국의 교수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번은 제 연구실에 20명의 PhD를 채용했는데 그중 한국 과학자를 7명을 채용 했더니 "박 박사는 이곳에 한국 과학 연구소를 설치 하는거야"라는 농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Dayton에 한인 community가 점차 커져, 교민들 사이에 한인교회가 설립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갈망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연합감리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는데요, 저도 이러한 갈망을 가지고 제가 다니던 미국교회 담임목사님에게 부탁하여 Chapel을 빌려 드디어 1971년 9월 19일에 한인교회를 창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개척교회는 분쟁과 상처를 맛보았고, 교회의 분열과 재연합과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그 과정 끝에 데이톤 연합한인감리교회는 그 설립의 주축을 놓게 되었습니다.
이제 84세를 맞이하면서, 제가 정든 고국을 떠난 지도 벌써 61년이 됩니다. 그중 3년은 카나다에서, 1년은 독일 백림대학에서, 3년은 미국 극동 사무국 국장으로 일본에서 생활하였고 2년은 서울 대학에서 1년은 삼성 고문으로 지냈습니다. 돌이켜보니 3년만 한국에서, 나머지 52년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외국에서 보낸 세월이 더 긴 인생이지만 저에게는 한국의 넋이 가슴 깊이 살아있고 모국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충동을 늘 억제 할 수가 없어서, 그런 마음 때문에 매년 annual leave를 이용해서 조국을 방문하고 한국과학발전에 기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가든지 신앙생활을 등한시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강한 믿음이 저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도록 붙잡아주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목사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저도 한 동안 신학교로 갈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말재주를 타고 나지 못한 것 같아서 단념 하였습니다.
이렇듯 저의 지난 생애를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어느 순간도 제 힘으로 스스로 한 일이 없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과연 로마서의 이 말씀은 참된 말씀이었습니다. 로마서 8장 3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끊임 없는 사랑으로 지난 세월 저의 삶을 돌봐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이민 교회의 장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요, 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 이 얼마나 멋있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처한 환경은 별로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태도, 습관, 인품, 성격도 외형적으로 변함없는 고정된 실존인 양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사로잡히면 달라집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시인하고 우리의 전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새창조이고 새인생인 것입니다. 이러한 새창조가 일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고, 이웃과의 진정한 교제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 안에서만 새롭게 사는 소망이 생기고, 그 안에서만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궁극의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인생 궁극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요한복음에 의하면 '영원한 생명'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누리게 될 때 그곳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것이 예배라고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기록되어 있는것 같이,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필요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즉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영생-eternal life의 내용은 예배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드릴 영원한 예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가?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대단히 어렵고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늘 반복 질문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 이민교회가 이제 앞으로 어떠한 장래를 형성해 나가야 할까 하는 것올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건전한 교회관을 갖고 교회봉사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