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2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11/17/14   박희주

Bethel Grove Bible Church 출석
1997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졸업
2002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이학 석사
2002 - 2007 주식회사 이랜드 푸마 코리아 사업부 근무
20011 Ph.D. in Human Science at Oklahoma State University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인간과학 박사 - 기능성 의복 디자인 전공)
2012 - 현재 Assistant professor at the Dept. of Fiber Science and Apparel Design, Cornell University
코넬 대학교 섬유공학 의류디자인 학과 교수

우리의 정체성

크리스찬이라는 단어는 '예수를 닮은 사람' 이라는 의미로, 로마제국의 박해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예수의 제자로 살았던, 그리고 아름답게 서로를 섬기며 사랑을 실천했던 초대교회의 교인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 (고후 5:20)' 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적 약함으로 인해 사실상 교회와 일터, 가정에서, 그 신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날마다 우리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성령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예수님의 대사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하는 존재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어느 학자가 일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현대의 기독교인을 묘사하는 단어'를 조사했을 때, 1위를 차지한 단어가 '위선'이었다는 이야기를 주일 예배 설교에서 들었습니다. 크리스찬으로서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사회의 많은 곳에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열심히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일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인식이 우리사회에 폭넓게 퍼져있을까요? 단지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라거나, 혹은 우리가 박해를 받는다고 단정하기에는 무언가 불편한 구석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개독교'라고 비꼬기도 하고, "기독교 역시 별로 다르지 않군요…"라는 실망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과연 직장과 교회, 일터 그리고 가정에서 크리스찬으로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하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실망한다는 것은 기대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기대'가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 다 자격이 없는 자임에도,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가득한 존재임에도 예수님의 대사로서 살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우리는 일주일의 6일을 일터와 가정에서 보냅니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의 우리의 삶도 중요하지만 교회 밖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역시 우리가 크리스찬으로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안과 밖에서 사랑과 화목을 도모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상 세상 사람들보다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더 많이 자제하고, 더 노력하고, 때로는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크리스찬으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데에는 매일 매일 결정의 순간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크리스찬이기에 약간 편법을 쓰거나 또는 적당히 타협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곧이 곧대로 규정대로 그리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하다 보면 때로는 미련하다, 융통성이 없다는 비난도 받습니다. 또한 비효율적인 것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비지니스에서 손해가 될 줄 알면서도 그리고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줄 알면서도 정직하게 처리하려고 애쓸 때, 그런 우리를 보시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우리 자녀에게, 우리의 직장 동료에게, 우리의 삶이 위선으로 보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의 어떤 유명한 기독교 기업은 정직하게 세금을 신고하고 연말이 되면 자사 수익의 10%를 (사회환원을 실현하는 십일조의 의미로서)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데에 내놓는 경영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편, 어떤 기독교 기업은 자사의 경영 경비 절감을 위해서 특별히 인건비와 직원복지 절감을 위해 많은 직원을 계약직으로 고용하고 나중에는 대량해고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법을 어긴 불법행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언론에서 실망의 목소리를 보도했음을 기억합니다. 왜 실망했을까요?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평화, 사랑의 불씨가 되어 주리라는 기대가 기독교 기업이니 그래도 세상의 다른 기업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말것",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기쁘게 고난에 참예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세상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회사를 경영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려면, 결정의 순간 순간 손해와 지연, 때로 조롱을 감수할 용기가,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거나 못본척 하지 않고 공의를 세우기 위해 때로 비난과 관계의 어려움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에 시기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큰 마음이 악인이 성공할 때에도 또는 내가 억울하게 손해를 보거나 핍박을 받을지라도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희생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영광과 기쁨만이 아닌,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크리스찬으로서 바르게 살기 위해 "고난에 참예 (사도바울의 권면)"하는 것 역시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며, 또한 지금도 많은 선교사님들이 목숨을 걸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세계각국에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할 때 그리고 기득권으로서의 신분과 지위를 버리고 돌에 맞고 옥에 갇히면서도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던 사도바울의 삶을 묵상할 때 과연 나는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서 크리스찬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나, 성공, 하나님

크리스찬으로서 나 중심으로 사느냐, 하나님 중심으로 사느냐는 순간 순간 우리의 말과 행동, 결정에서 나타납니다. 하나의 예로써 축구 선수들의 골 세레모니는 두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레모니를 개발하고, 어떤 이는 가족에게, 어떤 이는 관중에게 가장 먼저 감격과 기쁨의 몸짓을 전합니다. 모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찬 선수들의 세레모니는 이와 아주 상반됩니다. 크리스찬 축구 선수들은 골을 넣고 나서 환호하는 수천명의 관중을 잠시 뒤로 하고, 가장 먼저 잔디밭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하고, 그 이후에 동료 선수들과 관중들과 기쁨을 나눕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이 끝나고 많은 한국 선수들이 감격과 기쁨을 나누며 운동장을 누빌 때 세 명의 크리스찬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서로 모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도, 그리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로마시민권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공과 행복을 원하지만 때로 우리 삶에 아픔과 고난과 실패의 쓰라림이 찾아 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의 약함으로 인해 고난 가운데 감사하기란 성령님의 은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자주 불평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로 인해 믿음없이 좌절하고 실망하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생각할 때 광야에서 믿음과 감사없이 불평하던 이스라엘 민족과 다를 바가 없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이렇게 감사가 부족한 저의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도전을 자주 받습니다. 한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의 한 여자 역도 선수는 역도선수로서 노장의 나이에 부상까지 겹쳐서 메달 획득이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보다 훨씬 젊고 체력적으로도 우위에 있는 타국 선수들과 경쟁하는 모습도 참 아름다웠지만 저는 그 선수가 매달 획득에 실패한 순간에 보인 행동에서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3차 시도에서 실패해 동메달 획득이 좌절된 바로 그 순간, 그 선수는 자신의 실망감을 표현하는 대신에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들어올리지 못한 역기를 붙잡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자에게만 박수와 찬사를 보내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Resume 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 블로그, 그리고 심지어 Social networking website 에까지 스스로 홍보하라고 조언합니다. 나의 성공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네크워킹을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도 말합니다. 크리스찬인 우리에게 세상적인 성공이 얼마나 중요한가, 어떻게 사는 것이 크리스찬답게 사는 것인지, 말씀 가운데에서 자주 돌아보지 않으면 표류하기 쉽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이 성공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원했던 성공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성경에 근거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의지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다가 돈과 권력, 명예, 지위 등이 생기면 결국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로 변하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우상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성경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다니엘은 포로의 신분, 그 사회에서Minority 의 신분으로 왕의 정사를 도왔지만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왕을 두려워 하기보다 하나님을 두려워 했기에 왕의 음식을 먹지 않고 절하지 않는 결단을 했습니다. 사자굴과 풀무불에 던져지는 순간에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안위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에스더 역시 포로의 신분에서 어렵게 왕후가 되었지만 자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는 마음으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마무리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그러나 매일매일 넘어지는 사람임을 말씀 드립니다. 우리의 약함을 그 분 앞에서 고백하고, 매 순간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시고, 약한 우리를 그분의 도구로 써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것이 학력일수도, 경제적, 사회적 또는 정치적인 힘이나 우위일 수도, 또는 관계의 주도권일 수도 있습니다. 종종 그렇게만 된다면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잘 할 수 있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것, 소유의 집착, 겉으로 보이는 겉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영향력을 가졌느냐와 관계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준비가 된다면, 우리의 속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성장한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매 순간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약함으로 매일 매일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크리스찬 (예수를 닮은 자)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을 살기로 매순간 다짐하고 결단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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