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가정 자녀를 위한 기독목회 상담적 접근: 감정억압으로 인한 무력감을 중심으로
11/17/14
오화철

2012년 5월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앤 울라노프 교수
(Dr. Ann Ulanov) 의 지도아래 정신의학과 종교 (Psychiatry and Religion) 분야에서 (Ph.D.) 학위를 마쳤고, 2012년 9월부터 연세대학교 상담센터에서 전임상담사로 일하며, 연세대, 이화여대, 명지대에출강
사람은 빛을 상상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직면함으로써 참다운 빛을 경험할 수 있다"
-칼 융-
1. 들어가며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수치심, 죄책감 등으로 인해서,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면서 감정을 억압하는 경우가 있다. 특별히 유년시절에 부모의 사별, 이혼, 별거 등의 이유로 아버지나 어머니를 일찍 상실한 아이들의 경우는 자신의 상황을 주변에 솔직히 공개하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을 억압하게 되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무력감과 자신에 대한 부적절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 할 수 없지만, 종종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내담자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 가정내에서의 억압적 구조 그리고 학교내에서의 차별적 경험을 통해서, 내담자가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게 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한부모 가정 자녀들의 감정 억압에 대한 기독목회적인 관점과 여러 상담적 접근을 통해서, 그들의 감정억압에 대한 치유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사례: 한부모 가정의 발생과 상황
과거에는 사별, 별거, 이혼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한부모가정이 생겨났지만, 요즘 한국의 이혼율이 급증하는 시대가 되면서 한부모가정의 80% 가 이혼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혼은 사별 혹은 별거와는 달리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심리적 불안을 안겨주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부모가 헤어진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부모의 갈등과 불안이 자녀에게는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 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갈등 원인이 자녀들에게 있다는 죄책감을 갖게 하고 자신을 비난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상담현장에서 만났던 내담자 A의 경우, 부모의 이혼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발생했다고 생각해서 부모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모에게 헤어지지 말라고 애원했던 사례도 있었다. 자아구조가 연약한 유년기 아동의 경우, 부모의 갈등을 자신의 문제로 동일시하며 부모의 문제를 아동의 문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경우, 내담자 B의 경우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했는데, 어머니 혹은 외할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초등학생이었던 내담자에게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던 안타까운 기억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자녀들이 위축될 것을 염려한 어머니는 자녀에게 아버지가 언젠가는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투명한 희망의 메시지를 줌으로써 자녀가 아버지의 무덤조차 가지 못하게 했던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망을 막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한부모가정의 자녀가 된 내담자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아버지가 마치 살아서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부재를 친구들에게 알릴 수 없었던 당시의 심정을 내담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저희가 위축되지 말라고 그러셨던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왜 그러셨는지... 어머니는 그러면서, 할머니를 무척 원망했어요. 아니 저주했어요. 할머니가 아버지를 죽음의 길로 몰아세웠다고 그러셨어요. 힘든 일을 하게 해서 사고를 당하게 했다는 거예요. 사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아요. 아버지는 늘 바빴고 그래서 아버지가 간절히 보고 싶거나 하지는 않아요. 단지, 학교에 가서도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계신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어느날, 아버지 없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는데, 저는 손들지 않았어요. 그냥 들 수가 없었어요.(눈물을 닦으며...)
이렇듯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듣지 못한 초등학생이었던 내담자는 유년 시절 내내 어머니와 할머니를 향한 분노와 좌절감으로 지냈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아버지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지 못했던 내담자는 주변 친구들의 관심이 두려워서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에서도 소외되고 위축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자신의 힘들고 불편한 감정을 솔직히 나누지 못하고 억압하며 초중고 시절을 보냈던 내담자는 어느새 자신감이 떨어지고 무력감을 호소하는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담자를 오랜 시간동안 무력감에 시달리게 했던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 것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지 않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책임도 있을 수 있고, 학교에서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힘들어 하는 학생을 특별히 배려하는 섬세한 돌봄이 필요했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딸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고 오히려 남성을 비난하며, 결혼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까지 하며, 사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어머니가 겪어야 했을 사회적 편견도 중요한 환경적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3. 감정 억압에 대한 이해
억압은 심리적인 방어기제이다. 정신분석 분야에서 방어를 분류할 때, 1차 방어와 2차 방어로 나누어서 접근하는데, 1차 방어의 경우는 무의식적이고 비언어적으로 발생하는 방어이며, 통제가 어려운 자연발생적인 방어라고 볼 수 있다. 투사, 부인, 철수, 해리, 원시적이상화 등이 그러한 방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2차 방어는 사회적이고 언어적이며 의식적인 통제가 가능한 방어라고 볼 수 있다. 억압은 2차 방어에서 대표적인 방어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방어이다. 억압 외에도 퇴행, 격리, 합리화, 주지화, 행동화, 치환, 동일시 등의 다양한 2차 방어들이 존재하고 있다. 위와 같이 억압이라는 방어는 내담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택하는 의식적이고 사회적인 방어이다. 그런 면에서 감정 억압은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절제하면서 견디는 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억압이란 방어는 프로이드(S. Freud)의 정의에 의하면, 의식에 담아두기 불편한 것들을 무의식 세계로 집어넣는 의도적인 작업이라는 면에서, 언젠가 무의식에 잠겨있던 그 불편한 감정들이 다시 의식의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무의식에 존재하는 내용이라도 언젠가는 의식의 세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이 유년시절에 한쪽 부모의 상실 경험을 통해서 겪은 수치심과 죄책감은 내담자의 의도적인 방어인 감정 억압을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로 쫓아 버리긴 했지만, 그것은 영구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목회상담학자인 앤 울라노프(Ann Ulanov)는 무의식의 세계에 무엇을 밀어넣는 작업은 마치 바닷가에서 플라스틱 공을 물밑에 넣은 상태에서 버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처음에는 공의 부력에 맞서서 의도적인 힘으로 공을 물아래에 밀어 넣어서 있도록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을 밀어넣는 힘이 소진되고 언젠가는 그 공을 놓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공은 물밑에서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설사 그 공을 아주 오랜 시간 물밑에 있도록 유지할 수 있을지라도, 그 공을 잡고 있는 팔의 일부가 수면 밑에 존재하며, 공을 잡고 있는 주체는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그 공을 잡고 있는 일에 소모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바꿔 말하면, 감정억압의 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감정을 무의식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엄청난 의식적(conscious)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으며,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결핍되어지고, 결국 삶은 무력감과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감정억압으로 인해서 애도의 실패라는 측면도 살펴볼 수 있다. 애도란,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그 슬픔의 감정을 충분히 대면하고 표현함으로써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그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드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대상의 상실이란 냉혹한 현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어서 슬퍼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프로이드(S. Freud)에게 있어서, 건강한 애도과정의 목표는 잃어버린 대상을 향하여 투여되었던 (cathected) 리비도를 점진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계속해서 상실한 대상을 향하여 과도하게 정신적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것이 바로 우울증 이라고 프로이드는 진단했다. 소중한 대상을 잃어버린 후에 적절한 애도를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감정의 왜곡된 표현이나 상실에 대한 현실적인 무감각, 성격의 급격한 변화와 병리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내담자 B는, 어린 시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서 늘 무기력하고 상실감에 사로잡혀 사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을 경우에 내담자는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고, 소중한 사람이 죽은 이유를 자신의 실수와 잘못으로 귀착시키는 경우가 많다. 내담자 B의 경우, 초중고 시절 내내 위축된 학창시절을 보냈고 결국 20대에 들어서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무력감에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동안 해오던 감정억압과 애도의 실패로 인해서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되어 있는 상태였다. 결국 깊은 무력감과 자신감 결여로 발전하면서 상담센타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20대중반부터 원인 모를 무력감에 시달린 내담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라구요.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대학원 진학준비가 만만치 않은 거에요. 그래서, 이러저런 다른 일들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금세 지쳤는지 아무 의욕이 없어졌어요. 그냥 힘이 없고 자신이 없어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점점 모르겠고....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내담자는 무력감을 호소하고 자신감 결핍으로 인해서 불안해 했지만, 동시에 내담자는 자기주도적인 삶에 무척 관심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담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싶지 않고 자신이 직접 어떤 큰 사업을 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래서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고, 결혼 같은 제도가 인생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면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4. 자기주도적인 삶을 향한 열망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이 힘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억압을 한다면, 그것은 어떤 점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방어기제가 될 것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억압이라는 2차방어는 언어적이고 이성적인 방어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의식적으로 하는 방어에 해당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내담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방어는 최적의 방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내담자를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오랜 세월동안 사용했던 기존의 방어가 최초에 자신을 보호하는 정신적 기제가 되었지만, 점차 자신과 타인에게 아픔과 고통을 배가시키는 방어가 되어간다면 이제 그 방어보다 좀 더 나은 방어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내담자 B의 경우, 자신의 수치심을 가리고자 자신의 힘든 감정을 친구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오랜 세월을 지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억압의 기제가 내담자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고 불편해진 것이다. 일대일로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지만, 공개석상에서 발표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사람들 앞에서 개진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자신의 생각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야 될 때, 그 순간 내담자 B가 느꼈던 감정은 불편함과 무력감이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이 친근감을 갖고 다가오는 것이 내담자 B에게는 늘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대학시절 연애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어느 순간부터 결혼하자고 얘기를 꺼내면서 불편한 감정이 생겨나게 되었고 급격히 관계가 멀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미 내담자 B의 어머니가 남편과의 사별경험을 통해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내담자에게 심어준 것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동시에, 타인이 내 인생에 깊이 관여한다고 느낄 때, 인생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1년이 지나면서 자꾸 결혼하자고 하고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고 하는데, 그냥 불안했어요. 왠지 그 사람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할 것 같은 걱정이 들었어요.
결국 내담자 B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오랜 세월 억압해 온 후유증으로 대인관계를 맺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게 되었고, 특별히 아버지의 사별을 목격한 자녀로서, 결혼생활에 대한 두려운 감정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장녀로서 홀어머니를 떠나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깊은 불안을 보이고 있었다.
5. 감정억압에 대한 기독목회적/상담적 접근
1) 작용적 신학과 고백적 신학을 통해서
앞서 밝힌 것처럼 감정억압은 수면 위에 떠오르는 본래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직면하지 않고 무의식으로 돌려보내는 정신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래의 감정을 직면하지 않고 잠시라도 외면하는 것은 불편한 감정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유년시절에 한부모가정의 자녀가 된 여성 내담자 B의 경우 결혼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남성에 대한 불편한 감정, 어린 시절에 잠시 교회를 다녔지만 결국 신앙생활을 포기한 배경을 고백했는데, 어쩌면 내담자 B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직면하고 그 감정의 비합리적인 면을 개선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감정억압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권수영이 한국에 처음 소개한 보스톤대학의 목회신학자였던 머얼 조단(Merle Jordan)의 작용적 신학과 고백적 신학을 통해서 우리 내담자가 직면하고 벗어나야 할 우상적 감정을 살펴볼 수 있다. 스톤(Stone) 과 듀크(Duke) 같은 미국의 학자들은 모든 내담자들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름대로 발달시키는 일종의 신학자라고 이해했다. 물론 평신도 혹은 목회자에 따라서 신학적 이해에 대한 성격과 특징의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발전시킨다고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담자들은 자신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작용적 신학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작용적 신학은 내담자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신학이다. 입술로는 신적인 대상을 향해서 긍정적인 언어와 개념을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가슴에서 느껴지는 작용적 신학은 내담자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내담자 B가 바로 그런 점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신앙과 삶에 관한 이야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 경우가 된다. 무엇보다, 내담자 B는 사별로 고통당했던 어머니을 보면서, 남성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불안감을 오랜 세월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 남성들과 잘 어울릴 수 는 있지만, 실제 내담자가 경험하는 남성의 이미지는 불신과 고통의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내담자는 그러한 실제 가슴속에 남아있던 우상적 이미지의 남성적 이해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자기주도적인 삶과 자아정체성을 회복해가면서, 남성들이 내담자의 삶에 좋은 대상으로서 긍정적 기여를 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어놓을 수 있다면, 언젠가 유년기에 떠나간 아버지의 불안한 모습이 더 이상 다른 남성들에게 투사되지 않고, 병적인 남성에 대한 이미지가 사라지고, 남성을 바라보는 건강한 눈을 길러갈 수 있을 것이다. 중단했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논리로 바라볼 수 있다.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닐 때,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내담자는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에 대한 처벌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이미지는 내담자로 하여금 결국 신앙을 포기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벌하고 벌주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버리고, 이제는 삶의 힘이 되어주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거룩한 이미지를 통해서 하나님과 타인을 신뢰하고 자신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자아정체감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피학성(자기패배적) 성격(Masochistic personality) 면에서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은 사회적 편견과 주변의 시선에 예민해지면서, 자신의 본래적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고통을 감수하면서 해결하려는 특성을 보인다. 마치 많은 여성들이 구타를 당하면서도 가해자 남편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구타를 견딤으로써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경우와 같다. 이렇게 자신이 고통을 감수하고 견디게 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신념이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이유를 볼 때, 피학적인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표현하지 않는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가고, 혹은 어쩌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신념이 존재할 수도 있다. 미국 럿거스(Rutgers) 대학의 낸시 맥윌리암스(Nancy McWilliams)는 그러한 내담자의 피학적인 의도는 실은 굉장히 사랑받고 싶은 열망의 반대적 표현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무의식적 소망이 내담자의 정신역동안에 자리잡고 있다고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피학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겉으로는 고통을 감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설명할 수 있다.
내담자 B의 경우, 내담자의 어머니의 말대로, 어쩌면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르니 아버지 무덤에 갈 필요 없다고 하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 무덤에 가서 추모행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실현하기 위해서, 마치 아버지가 살아계신 듯 행동했던 내담자 B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깊은 불안감과 무력감이라는 고통의 댓가를 치러야만 했다. 만약 피학적인 성격의 한부모가정 자녀가 감정억압을 오랜 세월동안 해왔다면, 상담가는 내담자가 갖고 있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노출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통제욕구와 강렬한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생겨난 무의식적 신념이 감정억압을 유지해온 신념이었다면, 이제는 상담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 신념의 비합리성을 직면하고, 어떻게 그런 신념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신념이 가지는 비합리성을 생각하면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신념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피학적인 신념의 가장 핵심정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주목을 받고 싶은 깊은 욕구는 내담자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사회구성원들의 협력과 이해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는 포괄적인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해를 내담자가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인 측면이긴 하지만, 사회적 편견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부모가 키운 자식은 무엇인가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다는 낡은 시각을 버리고, 한부모의 자녀이면서도 얼마든지 양부모가 키운 자녀 못지 않게 온전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담자 B가 결혼을 미루고, 자기 사업을 잘해서, 홀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는 부담감은 한부모자녀이지만 양부모가정의 자녀 못지 않게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이기 위한 절실한 노력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주목받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을 지라도, 한부모자녀로서의 노력하는 삶을 추구하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건강한 피학증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건강한 피학증은 사람에게 책임감과 성실을 부여하는 중요한 정신역동이 될 수도 있다.
3) 자기심리학적(self psychological) 접근
자기심리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나르시즘(Narcissism)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서 자기애적인 내담자를 치료하는 데 새로운 장을 제시한 상담학자로 볼 수 있다. 초창기 프로이드(S. Freud)가 자기애를 연구하던 시절에는 자기애적 환자들이 자신에게 집중한 상태에서 상담에 필요한 전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프로이드는 자기애적인 내담자의 상담적 치료가 가능하지 않다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인즈 코헛은 자기애적인 내담자들도 나름대로 자기애적인 전이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며, 거울전이, 쌍둥이 전이, 이상화 전이 등을 소개하고 있다. 결국 자기애적인 내담자들은 적절한 자기대상(selfobject) 경험을 통해서 자기애적 전이와 함께 자신의 내적인 문제를 좋은 대상과의 자기대상 경험을 통해서 치유할 수 있는 것으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하게 되었다.
내담자 B의 경우처럼, 남편과 갑작스럽게 사별하고 권력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딸은 유년기에 아버지의 부재라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적절한 자기대상 경험의 결핍을 경험했을 것이다.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황은숙은 남아들이 좀 더 비행을 보이는 이유는 아버지와 헤어져 살 경우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고 아버지라는 성역할 모델이 없기에 느끼는 좌절감이 더 크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남자 아이의 경우 유년시절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게 될 경우, 적절한 자기대상 경험의 결핍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가면서 끝없이 자기대상을 향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 대상을 찾아나서게 되는 자기애적 성격 조직을 갖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자기애적인 내담자들은 주로 사용하는 방어가 이상화와 평가절하이다. 자기애적인 내담자들은 상담가를 신속히 이상화 하지만, 동시에 상담가의 불완전함을 발견할 경우, 상담자에 대한 불평과 실망을 표현하는 평가절하도 잘 일어난다. 그러나, 어떤 경우 상담시간을 마치고 나서 타인에게는 상담자가 내담자를 적절하게 잘 상담해준다고 칭찬하는 모순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종종 자기애적인 내담자들은 거대 자기(grandiose self)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위축된 현실과 정반대로 과장된 자신의 꿈과 미래에 도취해서 자신에 대한 전능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상담가들은 그들의 거대적 자기에 반응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고전 정신분석에서는 프로이드가 사용했던 내담자를 향한 저항(resistance)과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을 통해서 내담자의 무의식을 조절하고 마음껏 무의식의 생각을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리도록 하는 방법이었지만, 자기심리학에서는 내담자의 주관적 경험을 전적으로 상담가가 경험하듯이 받아들이는 대리적 통찰(vicarious introspection)을 통한 깊은 공감(empathy)을 강조한다. 현재 드러나는 과대적인 자기의 모습을 상담가가 계속 공감해줄 때, 어느 순간 내담자는 위축된 자기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취약한 자기구조가 드러나는 순간이 어쩌면 가장 자기주도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될 수 도 있다.
내담자 B의 경우, 현재 취업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취업보다는 자기 개인사업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이다. 현재는 위축되어 있지만, 자신만의 일을 혼자서 해나간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위약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 순간에도 가장 자기주도적인 삶에 대한 갈망을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하인즈 코헛의 자기심리학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강점은 상담가의 불완전성이 때로는 내담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 어떤 상담가도 한부모 가정에서 고통스럽게 자란 내담자를 완전히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자기심리학에서는 상담가가 내담자에게 의도에 관계없이 적절한 자기노출을 함으로써 자신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필요할 경우 상담가가 내담자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담가의 불완전함을 경험한 내담자는 일시적인 좌절을 경험하지만, 그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좌절이라고 해서 긍정적 좌절(optimal frustration) 이라고 부른다. 내담자의 긍정적 좌절은 결국 상담가에 대한 깊은 의존보다는 내담자 스스로 자기구조를 강화시키게 되는 변형적 내면화(transmuting internalization)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치료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은 오랜 세월의 감정억압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에 집중해 있고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억압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내담자가 될 수 있다. 그런 감정억압은 자기애적인 성격 조직을 형성하게 만들 수 있다. 자기애적인 내담자의 가장 큰 안타까움은 대상에 대한 열망은 강하지만, 깊은 사랑을 하는 데 한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문제에 이미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을 향한 사랑을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열망은 강하지만, 깊은 사랑을 하기 보다는 자기대상 역할을 해주는 대상들이 계속 치환될 수 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한부모가정 자녀들의 삶은 잃어버린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는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자기대상을 회복하고, 자기주도성을 갖기 위해서, 일평생 적절한 자기대상 경험을 향한 여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자기심리학적 통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은 자기대상의 개념이 폭넓게 정의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기심리학은 하인즈 코헛의 후예들인 폴 올스타인(Paul Ornstein)과 어니스트 울프(Earnest Wolf)등에 의하면, 자기대상의 범위를 인간(human object)에게 한정하지 않고, 모든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대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보다는 자기대상관계의 존재여부를 보는 것이다. 즉 사람 뿐만 아니라, 나무, 숲, 학교, 건물, 그림, 음악, 조각작품 등등 모든 것들이 자기애적인 내담자에게 자기대상(selfobject)의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상담가와 내담자 사이라는 공간과 시간만을 치료가 발생하는 장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시간과 공간이 치유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획기적인 관점이다.
특히, 동양적인 사고에서 상담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하는 문화적 특징을 가지는 민족이나 개인에게 자기심리학은 또하나의 치료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부모가정, 탈북자가정, 외국인노동자가정, 장애인가정 등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의 현실에 상담적인 치료에 다양한 채널을 열어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동시에 경제적 시간적인 문제로 상담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내담자들에게는 분명히 희망적인 소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점에서 자기심리학은 치유적 문화상담의 활로를 열어 상담의 일상성과 대중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며
늘어나는 한부모가정과 그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국가의 장래에도 중요한 과제이다. 급증하는 이혼율로 인해서 발생하는 한부모가정과 그 자녀들에 대한 돌봄은 그 사회의 정신건강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다.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이 감정억압으로 인해서 겪는 애도의 실패, 무력감과 불안감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분석할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 감정억압을 통해서 갖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주목함으로써,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이 현실적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직면할 수 있도록 그 비합리적 신념을 노출하고, 그 무의식적 신념을 갖게 된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비합리적 신념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합리적인 신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상담가와 주변 이웃들의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다. 아울러, 감정억압으로 인해서 여전히 갖고 있는 떠나간 부모에 대한 분노와 미움에 집착하지 않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추구할 수 있는 충분히 좋은 대상을 일상에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자기심리학적 통찰은 자기대상으로서 사람과 함께 일상의 모든 사물과 존재에서 자기대상의 경험을 추구할 수 있는 치유관계의 일상성을 열어주고 있다. 아울러, 한부모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 가정내에 존재하는 억압적인 관계, 학교내에서의 한부모자녀에 대한 차별 등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이 이 사회에서 더욱 모범적인 사람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감을 갖고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심리적 접근과 사회적 배려를 통해서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은 감정억압으로 인한 무력감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감정을 소통하고 표현하는 자유롭고 건강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