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2호

'깨어나기' 수련회에 다녀와서

11/17/14   김지환

대원외고. Rutgers University (B.S.)
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 (M. Div.)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Th. M.)
뉴저지 장로 교회 부목사
현재 멜본 한인 교회 부목사 (동사목사)

대전역에서 수련회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여섯 분 정도가 함께 탔는데 대부분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어떤 분이 지인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4일 동안 가게 문을 닫고 boot camp 보다 더 혹독한 수련장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데 그렇게 혹독하다고 하는 것일까?"
대전 시내를 지나 약 30분간 달려서 수련회 장소에 도착했다. 수련회장은 산 바로 앞에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현대식 건물이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한옥의 대청마루를 옮겨놓은 듯한 방에서 일찍 도착한 분들과 차를 마셨다. 중고등학생들 세 명이 바로 앞에 앉았는데,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 학생들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수련회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대안학교까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수련회 기간 동안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다 끊게 된다. 핸드폰은 물론이고 지갑, 시계, 반지까지 다 수거해 간다. 심지어 이름도 새로 짓는다. 마음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단어를 합쳐서 내 이름을 '하늘자유' 라고 지었다. 수련회 기간 동안 사람들은 나를 '하늘자유'님 이라고 불렀다. '하늘자유'라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것 같아서 느낌이 무척 신선했다.
수련회를 인도하시는 분은 목사님이시지만 수련회 자체는 기독교적 색깔을 띄지 않는다. 식사 기도도 기독교적으로 하지 않았다. 대신 밥상에 놓여있는 음식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음식의 내용, 모양, 색깔, 어울림, 근원 등을 알아차리는 시간이었다. 식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끼니 때 마다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하셨는데 설명을 듣고 먹으니까 식사의 의미가 달라지는 듯 했다. 단순히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작업이 아닌, 나를 살리기 위해서 세상이 부어준 은혜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변화 되었다.

수련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영적 변화를 위해 디자인된 듯 했다. 평범한 일상의 활동도 영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었다. 식사라는 말을 '진지' (한자어로 '참 진' '알 지') 로 바꾸었다. 청소와 설거지도 '사람 되기'로, 남자는 '언님', 여자는 '눈님', 부엌을 '정지', 사용하는 각 방의 호칭도 다르게 사용하였다. 수련회 스텝들을 "산파"라고 불렀는데, 수련회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탄생을 돕는다는 의미다. 특히 청소와 설거지를 '사람 되기'로 바꾸어 부른 것이 참 좋았다.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지만 반복적이고 귀챦은 일이 되기 쉬운 청소를 통해서 사람이 되는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호칭은 그 안에 많은 의미를 포함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쓰는 여러 가지 용어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고', '회의', '행정' 등은 기업체에서 쓰는 용어인데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 '회장', '부회장' 같은 호칭도 마찬가지고,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등 '님' 자가 들어가는 직분들도 기업체의 '사장님', '전무님' 과 같은 계급이 주는 뉴앙스와 많이 닮아 있다. 세상에서 여과 없이 빌려온 용어들을 교회가 그대로 사용하면서 교회만이 가져야 하는 영적인 색깔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가 영적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기본적인 용어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수련회 프로그램은 크게 '정화' 와 '깨달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감정과 생각의 찌꺼기들을 청소해 내고 그 위에 깨달음의 기초를 쌓아가는 것이다. 정화의 첫 단계는 웃음으로 시작한다. 참석자들이 모두 한 방에 모여 있는 힘을 다해 웃었다. 웃을 일이 없어도 크게 소리를 내서 웃었다.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웃고 나니까 웃음이 크게 나왔다. 웃겨서 웃는다기 보다는 내가 살아가는 꼬락서니가 우수워서 웃게 되었다. 그냥 소리만 내서 웃은 것이 아니라 서로 손뼉을 치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다. 웃기는 일이 없는데도 그렇게 크게 오래 웃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얼마 동안 웃고 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웃음이 울음으로 변한 것이다. 웃으면서 내쉬는 호흡이 복부 깊은 곳으로 옮아가며 이리저리 얽혀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하' 웃음 소리가 '엉엉' 울음소리로 바뀌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참가자 전원이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울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지난 20여 년간 영성 수련회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울게되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기쁨과 슬픔 다음에는 분노가 찾아왔다. 신문지를 찢어가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울에 비치는 스스로의 얼굴을 향해 그 동안 쌓아왔던 화를 토해 냈다. 30대 초반의 남자분과 얼굴을 맞대고 욕을 하였는데, 태어나서 그런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담아 본적은 처음이었다. 그 분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는데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 동안 풀어내지 못한 분노에 대한 서러움의 눈물이었을까… 그 분도 나에게 욕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서로 부둥켜 안고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분노 다음에는 기쁨이 찾아왔다.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낸 후라 그런지 춤이 절로 나왔다. 참가자 전원이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었는데 왠만한 클럽 저리가라 할 정도로 신나는 분위기였다. 신나게 춤을 추니 마음 뿐 아니라 육체도 자유로와 지는 듯 했다.
웃음-울음-분노-기쁨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정화 작업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하였다. 우리 이민자들은 남의 나라에서 사는 것 자체가 마음에 큰 상처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상처를 풀어내지 않고 그대로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교회에서는 이런 상처를 풀어내지 못한다. 마음의 깊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 한 후에 쏠리는 사람들의 편견과 잘못된 시선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근본적인 마음의 상처의 치유가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적 형성은 어렵기 때문이다.

춤을 추면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는 춤을 추는 교회가 성장할 것이다" 춤을 출 수 있으려면 자유하여야 한다. 마음의 자유 뿐만이 아니라 몸의 자유도 필요하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이런 자유를 갈망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로 부터의 상처, 현재의 공허함에서 자유롭게 싶은데 교회에 가도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여러 가지 전통과 교리에 억압되기 쉽다. 그래서 앞으로는 춤을 추는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예배 시간에 온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이 주신 기쁨 가운데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정의 찌꺼기를 어느 정도 걷어낸 후에 생각의 세계로 들어갔다. 각자 상처받은 일, 화가 난 일을 나눈 후에 그 일이 정말 화가 날 일인가를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 것이 화가 날 일입니까?" 라는 질문을 계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스텝들이 묻고,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자기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 가 화날 일입니까?" 라는 질문을 계속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그것이 화가 날 일이 아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화가 난 이유는 그 일 때문이 아니라 나의 생각 때문이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생각이 멈추고 하늘이 열리는 감동을 겸험하게 된다.
수련회의 클라이막스 중에 하나는 심리치료 극이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안고 오는데, 그 문제가 있는 사람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물론 실제 인물과 함께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사람과 비슷한 외모와 연령대에 있는 사람을 참가자 가운데 골라서 함께 무대에 오른다. 참가자는 (가상의) 문제의 인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끝나면 참가자와 문제의 인물은 입장을 바꾼다. 이번에는 참가자가 문제의 인물의 입장에서 자신을 향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문제의 인물이라면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차례 입장을 바꾸어서 대화를 하게 되면 참가자는 마음 속에 쌓였던 이야기들을 다 꺼내놓게 되고 자연스럽게 치유가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심리치료 극을 보는 사람들까지 다 눈물바다가 되어서 모두가 치유가 되는 감동의 순간이 된다.
아무리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해도 삶에 대한 기본적인 열정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수련회 마지막 밤은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고 불태우는 시간을 갖는다. 이 글을 읽고 수련회에 참석할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 마치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 줄 때 결론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 것 처럼, 이 부분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미리 알고 가면 효과가 반감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수련회의 마지막 순서는 '경축' 이었다. 말 그대로 새롭게 깨어난 참가자들을 축하하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이미 수련회를 경험한 사람들의 권유로 오게 되는데, 참가자들에게 권유했던 사람들이 이 순서에 참석해서 함께 축하한다. 그들 중에는 남편, 아내, 부모는 물론이고 친척, 이웃, 회사 동료도 포함된다. 수련회를 소개해 준 사람들 앞에서 몇 가지 발표를 한 후, 참가자들은 그들과 대면하게 된다. 수련회에 보낸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과 갈등 관계 속에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상처의 치유를 경험한 참가자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갈등 관계 속에 있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신을 보낸 사람들과 포옹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도 함께 힐링을 경험한다.

'경축' 순서에서도 거의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흥겹게 춤을 춘다. 중고등부 학생들로부터 중장년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하여 신나게 춤을 추는데,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인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춤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경이로웠다. 많은 이민자들이 세대간 단절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는데, 언어의 소통은 불편해도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지는 않을까. 춤추고 노래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갈 필요 없이 교회에서 모든 세대가 함께 모여 흥겨운 춤과 음악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련회의 마지막은 전 기수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서 마련한 만찬으로 끝난다. 이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하늘을 날을 듯 상쾌하다. 3박 4일 동안 정들었던 참가자들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기분… 수련회를 끝나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설레임… 이 때야 말로 깨어나기 의식이 절정에 이른다.
수련회 3박 4일이 정말 빠르게 지났다. 이제 수련회가 끝난 지 약 2주가 지났고, 다음 기수를 위한 수련회가 이미 시작되었다. 수련회가 끝난 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생각으로부터의 자유함이다. 물론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나를 얽매고 있던 여러 가지 생각의 올무들이 헐거워졌음을 느낀다. 아직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풀어나가야 하겠지만 어쨌든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낸 느낌이다. 또한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래도 세상에 이런 빛의 씨앗들이 아직 많다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이번 수련회를 경험하면서 두 가지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겼다. 하나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치유 사역이다. 많은 교회들이 교세 부풀리기에만 관심이 있지 성도 하나 하나에 대한 영적인 관심과 치유로의 인도에는 관심이 거의 없다. 그런데 교민들의 social hub 역할까지 감당하는 이민 교회에서 성도들이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면서 치유의 길로 나아가기는 사실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감정의 치유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따라서 교회가 택할 수 있는 옵션 중에 하나는 감정적 치유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과 협력하여 사역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협력 사업에 교회의 많은 시간적, 물질적 자원을 투자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들이 기존의 비지니스 모델, 양적 성장 위주의 모델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또 하나는 한국 사람들의 독특한 감정 구조이다. 한국 사람들은 한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도 발산하지 못하고 쌓아 놓기만 해서 형성된 한, 자신도 모르게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한의 정서를 풀기 위해서는 서양에서부터 시작된 영성 형성 모델이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서양의 영성 형성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침묵인데, 침묵으로만 해소할 수 없는 한국 사람들 특유의 한의 정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침묵과 동시에 감정을 토해내는 정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는 침묵과 감정의 발산 중에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지 양쪽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인들의 영적 형성을 위해서는 침묵과 감정의 발산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영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깨어나기' 수련회.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3박4일 동안 함께 한 참석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들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짐을 안고 함께 떠났던 마음으로의 여행.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었다. 갑자기 어느 유행가의 제목이 떠오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우리는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그 때를 기약하며 오늘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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