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2호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느끼며

11/17/14   류재길

뉴저지장로교회 안수집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수료
대림산업(주) 근무
J5 Brothers Inc. 대표이사 역임
현, EZ Bank Card Services 대표이사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음악,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정서가 세계인의 정서를 사로잡고 있는 듯하다.

고국을 떠나 사는 이민자들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그래서 한국적으로 사는 일이나 한국적 정서를 지키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중히 여겨지기도 한다. 한인들의 이민역사는 이제 백년을 넘겼다. 한 세기를 지나 온 것이다. 이민 백 년의 역사를 가지면서 한인들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 냈다. 한인 2세, 3세들은 법조계, 의료인,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며 성장하고 있다. 모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문화선진국으로의 발돋음도 치열해 작금의 한류 열풍에 모두가 놀랄 뿐이다.
그런 열풍에 힘을 입었다고나 할까. 얼마 전 뉴욕에서 극단 '검은 돌'이 창단되었다. 극단 '검은 돌'은 창단 공연으로 김동리 선생의 소설 '을화'를 공연했다. 올해는 한국이 자랑하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탄생 백 주년이 되는 해이다. 본국에서는 그를 기리는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뉴욕근방에는 공연 예술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예술인들이 살고 있어 나름대로 예술 혼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특히 연극은 공연의 특성상 제약이 많아 미주 동포들이 시도해 보기 어려운 분야로 여겨지던 차에 극단 '검은 돌'이 창단된 것이다.
극단 '검은 돌'은 베테랑 연출가 이승규 선생이 이 지역의 공연 예술인들과 뜻을 모아 창단되었다. 창단 작품으로 김동리 선생의 '을화'를 선뵌 것은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향토색 짙은 토속 정서와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흔히 겪는 종교적 대립의 첨예함이 이 시대를 사는 동포들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을화'는 영화나 뮤지컬로 공연이 되기는 했지만 연극으로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원작을 극작가 고영범 선생이 각색했다. 배우들은 한국에서 연극을 해오다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 다수였고 일부는 연극, 영화를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이 참여했다. 무대 감독, 무대 미술, 조명, 소품, 사진 등 모든 스태프들이 재능 기부로 헌신해 줬다.
기독교가 전해지면서 유입되는 서구문명의 정착과정에 크고 작은 갈등들은 숱하게 있어왔다. 처절하게 충돌하는 종교적 신념, 피할 수 없는 어머니와 아들의 간극이 명연출자 이승규 선생을 만나 무대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연극 '을화'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김동리 선생은 단편 <무녀도>를 작가 자신이 장편 <을화>로 개작했다. 소설 속의 '을화'는 여성으로서 기구한 삶을 살다가 무녀의 길을 걷게 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을화는 이웃 청년과의 불장난으로 영술이라는 아들을 낳고 동네에서 쫓겨난다. 그 과정에서 무당이 되고 아들 영술이를 불자(佛者)로 키우기 위해 절로 보낸다. 영술이는 그러나 불교에 회의를 느끼고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다. 영술은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인 우상숭배자인 어머니를 전도해야하는 사명감을 갖고 십여 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온다. 마을에는 현대식 교육을 위한 학교를 지으려는 기독교인 박장로는 을화가 사는 신당을 헐고 그 곳에 학교를 지으려고 한다. 거처할 곳을 주겠다는 박장로의 배려가 있긴 하지만, 을화에게 다시는 신당을 짓지 말라는 조건을 내건다. 을화는 기독교 때문에 종교적 신념과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을화의 더 큰 문제는 친아들 영술과의 갈등이다.
모자간의 갈등은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증오가 아니라 서로가 믿는 믿음의 대상에 대한 투쟁의 과정을 통해 증폭된다. 어머니 을화는 아들을 미워한다기보다 아들을 붙들고 있다고 여기는 예수신을 몰아내야 하는 것이고 아들 영술은 어머니에게 들어가 있다고 여기는 마귀를 몰아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한 투철한 신념으로 무장한 두 신앙인이 사랑하는 존재를 장악하는 존재들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을화의 공격 대상은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고 영술의 타도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라 신령님으로 일컬어지는 우상들이다. 그러나 정작 서로에게 공격을 받고 상처를 입는 자들을 그들 스스로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충돌이 빚어지는 것이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다른 신념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관계인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 충돌할 때 비극은 필연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영술은 성경책을 불태우는 어머니를 말리다 예수귀신으로 착각한 어미의 칼에 맞아 숨진다. 많은 경우 신앙적 신념은 이데올로기적 신념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한다. 작가 김동리는 무속인 어머니와 기독인인 아들 사이의 갈등국면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으며 냉철한 객관성과 균형 잡힌 관점은 어느 한쪽의 손도 들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치열하게 대립하는 두 신념 사이에서 인간 본질에 대한 작가적 성찰을 엿보게 한다. 깊이 있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혼돈스럽지만 정연하게 신념과 인간의 문제를 사색하고 있는 듯하다.
문학은 해결책을 내놓는 모범답안은 아니다. 다만 인간 내면의 갈등구조를 표출해 줌으로써 우리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1930년대 경주 어느 마을의 이야기이다. 이 후로 기독교는 숱한 갈등과 핍박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백 만 기독교인 시대를 열어왔다. 처참한 갈등의 역사를 통해 기독교는 뿌리가 깊어졌고 최다 선교사 파송국으로 까지 성장했다. 이 연극은 성극도 아니고 기독교적 관점에서만 바라본 연극도 아니다. 그러나 '을화'가 문학성에만 기댄 공연이라기보다 많은 동포 기독인들이 기독교 정착과정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흘린 피의 역사를 잠깐이라도 엿볼 수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컷다. 기획자의 한 사람으로 문학성도 훼손되지 않고 기독교 역사의 지난했던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길 바랐을 뿐이며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기독인들이 자기성찰과 함께 신앙의 재무장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동포사회에는 숨겨진 기량 있는 공연예술인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열정이 뜨겁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은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 분야가 되어 있다. 이민자들의 현실 상황이 극단을 꾸려가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을화' 공연을 계기로 많은 예술인들의 공연 공간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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