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5호 (Mar. 2012)

디도서를 통하여 배우는 영성훈련

11/19/14   한규삼

PAM 신학 자문위원 / 뉴저지초대교회 담임목사
고려대 법대 / 칼빈신학대학원 (M. Div. Th. M.), 신약학 전공
하바드대학 신학부 (Th. M.), 기독교의 기원 전공
토론토대학 (Th. D.), 신약한 전공 / 웨스트 민스터 신학대학원 , 해석학 연구
클레어몬트 대학내 Institute of Antiquity and Christianity, Visiting Scholar
International Theological Sminary, 신약학 교수 .

도서 이해가기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바로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 어떤 교회의 신앙의 모습은 그 지역의 상황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 교회가 지역 사회 및 그 시대의 문화를 거슬거서 보배와 같은 복음을 보전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 성경의 수많은 부분들은 우리들이 이런영성을 갖추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저는 디도서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 갖추고 있어야 할 영성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

디도서의 배경이 되고 있는 주후 60 년 후반 그레데섬의 문화와 상황은 이 시대 우리의 교회가 속한 및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 디도서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그레데의 교우들은 영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고 , 여전히 자기 멋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 불신자로 살아가던 시절의 때를 벗지 못했던 것입니다 . 이런 모습은 그 지역의 문화 환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 그래서 섬은 원래 아덴의 영향권에 있었는데 , 로마기 점령한 이후 급속도로 로마화 되면서 사회의 구조에 변화가 오고 새로운 문화가 형성됩니다 . 자원과 환경이 너무 좋은 평이었기에 , 사람들은 편하고 세속적이며 , 서로를 속이고 거짓을 쉽게 받아서 되는대로 살려는 풍토가 만연하기 시작했습니다 .[1]

바울은 주후 60 년대 중후반에 이 섬을 선교합니다 . 로마에서 약 2 년간 감금생활을 한 후 풀려나서 그는 제일 먼저 스페인 전도를 했던 것같습니다 . 스페인 사역을 마치고 바울은 선교팀을 이끌고 그레데를 방문하여 놀랍도록 성공적으로 선교를 했었던 같습니다 . 얼마 후 바울은 함께 하던 팀 멤버였던 디도를 남겨두고 에베소지역을 거쳐서 마게도니야로 갑니다 .( 딤전 1:3).

시간이 좀 더 흘러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다가 옴을 깨닫고 두 번째 로마로 들어갑니다 . 첫 번째는 죄수로 갔지만 , 두 번째는 동역자들과 함께 자원해서 들어갑니다 . 바울은 마지막 입성과 같은 로마행의 동반자로 디도를 택합니다 . 디도서는 그레데에 머물게 한 디도에게 사역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편지이며 , 아울러 함께 로마에 들어갈 계획을 알리고 그레데를 떠나 그에게로 올 것을 알리는 편지입니다 .

따라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섬 선교의 첫 단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지도자들을 잘 세우고 , 성도들이 각각 이르어야 하는 모습에 대해서 강하게 권면합니다 . 이것이 디도서 1-2 장의 내용입니다 . 1 장에서는 감독 / 장로에대해서 권면하고 , 2 장에서는 교회 안의 성도들을 나이로 나누어서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필요한 영성의 모습에 대해서 교훈합니다 . 시실 그레데에 엄청난 부흥이 있었지만 , 또한 위험의 요소가 함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 거짓 선지자들이 복음을 교묘히 바꾸고 있었습니다 . 이들은 ‘ 상한 복음 ‘ 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 세속에 푹 물들어 살던 그레데 사람들은 오히려 이들의 가르침에 솔깃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데에 만큼 교회를 지키는데고 관심이 있었습니다 . 거직 가르침 , ‘ 상한 복음 ‘ 그리고 세속쥐의는 바울이 눈물을 흘리면서 경계하던 복음의 주된 적이었습니다 . ( 참고 행 20:28-31). 그레데 섬에도 이런 도전이 아주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더우기 드레데에는 독특한 여성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 원래 그레데 문화의 근원인 아덴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높지 못했습니다 . 상대적으로 로마의 여성들은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그레데가 로마화 되면서 여성들에게 괄목상대할 만한 자유와 자기 멋대러 살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2] 디도서를 쓸 때 , 그레데 섬에는 로마화 된 신 여성들로 인해 생긴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3]

그레데의 모습을 언뜻 살펴보면 당시 고린도에서 발생하고 있었던 모습과 흡사한 몇 가지 요소를 발견합니다 .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드레데와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던 도시가 고린도란 점입니다 . 두 도시 사이에는 뱃길이 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 고린도와 그레데는 어린 아이 처럼 로마를 쫓아 로마화 되려는 다소 천박해 보이는 노렬을 하고 있었고 , 그 결과 도덕적인 질서나 내면의 깊이를 추구하기 보다는 외형적인 유행쫓기에 급급했습니다 . 특히 그레데는 섬이란 특징 때문데 더 느슨하고 동시에 고집스런 정신이 지배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

“ 바른 교훈 ” 을 통하여 배우는 영성 훈련 ( 딛 2:1)
1.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But as for you, teach what accords with sound doctrine)

바울은 디도에게 ‘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라 ‘ 고 권합니다 . ‘ 바른 교훈 ‘ 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영어 (ESV, NIV, KJV, NAS) 번역은 ‘sound doctrine’ 입니다 . 이는 이미 감독 / 장로에세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 ( 딛 1:9; 참고 딤전 1:10). 바른교훈은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는 윤리적인 행위 (behavior) 와 건강한 신학 (belief) 이 균형잡힌 가르침입니다 . 요즘 기독교인들에게 바른 윤리의식이 결여되었다고 합니다 . 무엇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요 ? 신학이 흔들려서 입니다 .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학이 없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 아울러서 성경해석에 대한 진지한 노력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 성경의 전문가인 목사들이 성경 해석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 설교자와 목양자인 목사들에게 엿보이는 모습은 신학적인 정립이 너무나 허술하다는 것입니다 .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아가도록 올 곧게 세워지는 것과 사회의 변화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냉철하게 해석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모두 건강한 신학에서 비롯됩니다 . ( 본문 표현으로는 ‘ 바른 교훈 ‘). 하나님을 바로 알면 , 바른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 신학의 각 분야에 대해서 균형잡힌 견해를 갖추고 , 신구약 성경을 해석하며 , 이런 성경와 신학의 원리를 삶의 원칙으로 견고하게 옮겨올수 있기 위해서는 3 년 정도의 신학대학원 과정의 수련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 ‘ 말하라 ‘ 는 결국 가르치라인데 , 다른 표현으로는 ‘ 크게 외쳐라 ‘(speak out) 입니다 . 만약 어떤 사람이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있다면 , 그는 무척이나 강한 소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 이런 외침은 중단을 당하거나 관찰이 되거나 할 것입니다 . 스스로 그 외침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바울은 디도에게 ‘ 바른 교훈 ‘ 을 가르치는 일에 집착하라고 명한것에즌 배경이 있습니다 . 1 장 10-16 에 언급된 그릇된 리더들 때문입니다 . 그들의 가르침은 건전한 신학이 없었습니다 . 즉 하나님에 대한 빗나간 이해에서 비롯되기에 윤리적으로도 잘 못된 곳으로 인도합니다 . 어떤 때는 지나친 금욕주의로 어떤때는 방종의 삶으로 이끕니다 . 인간의 죄된 본성은 이런 거짓 가르침에 솔깃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바른 교훈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 우리들 건강하게 하는 윤리와 교리가 조화된 가르침입니다 . 윤리와 교리가 조화된 가르침입니다 . 윤리와 교리는 불가분리적인 것입니다 . 건전한 교리에서 건전한 윤리가 나옵니다 . 그리고 건전한 윤리와 교리는 성도듸 삶과 교회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

늙은 남자를 위한 교훈 ( 딛 2:2)
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듬과 사랑과 인 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Older men are to be sober-minded, dignified, sef-controlled, sound in faith, in love, and in steadfastness [ESV]).

늙은 남자란 당시의 기준으로는 적어도 40 이 넘은 사람들입니다 . 어쩌면 50 이나 60 으로 접어든 사람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 어쩌면 50 이나 60 으로 접어든 사람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 하지만 육체적 나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리더의 자리에 있는 나이 들 성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 앞서 언급된 감독 / 장로와 동일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 감독 / 장로는 나이로 보면 이 그룹에 속합니다 . 감독 / 장로는 특별한 부르심을 따라 세원진 직분이며 늙은 남자는 나이에 근거한 그룹입니다 . 예를들어 시무 장로인 남자성도가 나이에 맞는 남전도회의 회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

바울은 남성 리더들 ( 늙은남자 ) 를 위한 교훈에서 네 가지 덕목을 제시합니다 . 남성리더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야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개역 개정 번역으로는 ‘ 절제 ,’ 경건 ‘,’ 신중함 ‘,’ 온전함 ‘ 입니다 . 마지막 요소인 온전함에 세 개의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 , ‘ 믿음 , 사랑 , 인내로 이룬 오전함입니다 . 아쉬운 것은 우리 말 번역의 어휘 선택이 원어를 그다지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디도서 1:8 에서 감독에게 요구하는 덕목으로 ‘ 신중하며 , 외로우며 , 거룩하며 , 절제하며 ‘ 가 있었는데 , 우리 말로는 같은 단어이나 원어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 남성리더에게 요구되었던 ‘ 절제 ‘ 는 욕구를 잘 다스리는 ‘self-control’ 의 개념이 아닙니다 . 문자적으로는 정신이 맑은 상태를 (sober minded) 유지하는 것인데 , 술에 취함으로 마음이 풀어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 우리에게 잘 이해되는 의미로 바꾸어 보면 , 항상 정신 깨어 있음을 가리킵니다 . 두 번째인 ‘ 경건 ‘ 도 거룩 혹은 딛 1:1 의 경건함과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 원어인 ‘ 셈노스 semnos’ 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정도로 잘 다듬어짖 행실을 갖춘 사람이란 뜻입니다 . (worthy of respect). 경망하지 않고 진지한 모습이 그 핵심에 있습니다 . 존경 받는 사람들은 중요한 일에 대해서 언제나 진지합니다 . 그들이 가진 유머난 격식 없는 모습도 중심에 있는 진리와 본질적인 것에 대한 진지함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 리더는 중요한 일에 대해서 ‘ 순전한 진지함 ‘ 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 세 번째 덕목인 ‘ 신중함 ‘ 은 감독에게 요구된 것과 일치합니다 . 분별력이란 의미입니다 .

남성리더에게 준 교훈의 하일라이트는 네 번째인 ‘ 온전함 ‘ 에 있습니다 . 하지만 온전함이란 우리 말의 번역도 많이 아쉽습니다 . 원어로는 바로 앞절에 있는 ‘ 바른 교훈 ‘ 이 바른과 같은 말입니다 . 영어 번역으로는 모두 ‘sound’ 로 되어 있습니다 . (ESV, KJV, NAS, NIV), 바울은 바른 교훈을 가르치게 되면 , 그 교훈을 받은 리더들이 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 바르다는 말은 도덕인 ‘ 옳음 ‘ 을 넘어서 모든 면에 건강하고 견고한 상태를 말합니다 .

어떻게 이런 건강함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 딛 2:2 은 ‘ 믿음 , 사랑 , 인내 ‘ 를 통해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 믿음 , 사랑 , 인내를 “ 통하여 ” 이것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열매를 맺는 상태가 건강함 / 온전함입니다 .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참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물입니다 .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인데 , 이를 통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확인하는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 성도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 반응합니다 . 반대로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 사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을 위한 희생적인 섬김입니다 . 이것을 통하여 사랑은 행위가 외더 우리의 눈에 보이게 됩니다 .[4] 따라서 사랑과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 한편 , 인내는 소망과 뗄 수 없는 짝입니다 . 소망은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 이런 미래에 대한 확신과 기다림이 곧 인내입니다 . 따라서 믿음 , 사랑 , 인내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건강함에 이르게 됩니다 . 그러므로 건강함 ( 온전함 ) 은 크리스천의 3 대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이 균형있게 실천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

바울이 그레데에 있던 디도에게 ‘ 건강함 ‘ 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을 ‘ 병든자 (diseased)’ 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교훈에서 ‘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 ‘ 고 하십니다 . 못된 나무란 병든 (diseased) 나무입니다 . ( 마 7:15-2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healthy [ESV]) 나무와 나쁜 (diseased [ESV]) 나무는 그 열매로 알리라고 하신 교훈 또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는 명령에 대한 설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 ( 마 7:15)

장로들에게 요구된 영성 – 신중하며 , 외로우며 , 거룩하며 , 절제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교회의 남성 리더들에게 있어야 하는 영성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 그 과정에서 이것이 감독 / 장로들에게 요구되는 것과 유삼함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 원래 디도서의 순서는 감독 / 장로에게 요구되는 영성이 먼저 다루어지고 이어서 남성리더 ( 늙은 남자 ) 에 대한 것입니다 . 따라서 잠시 지면을 할애하며 장로에 대한 사항인 딛 1:8 를 살펴 보겠습니다 . “[ 감독은 ] 오직 자그네를 잘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햐며 .” 여기 기록된 이 네가지 영성의 조건은 그리스와 헬라 시대의 4 네가지 주덕 (cardinal virtues) 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 [5] 신중함 , 외로움 , 절제함은 각각 4 가지의 주된 덕인 ‘prudence, justice, temperance’ 에 해당합니다 . 따라서 이런 영성의 조건을 리더에게 기대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객관성있는 요구였을 것입니다 . 이 네 가지 존건 중에서 우리가 살펴볼 석은 신중함과 절제함의 차이점입니다 . 원어를 엄밀하게 따져보면 , 신중함 (sophron) 은 생각하는 습관이며 또 결과를 예견하며 행동하는 것이라면 , 절재함 (egkrates) 은 대체로 식욕을 포함하여 육체적인 욕구에 관한 것이라고 구분할수 있습니다 . [6] 전통적인 영어 번역에서 신중함은 sober 로 절제함은 temperate 로 했는데 (KJV). 현대어 번역에서 전자는 self-controlled 로 후자는 discipline 으로 합니다 . (ESV,NIV). 좀더 생가해 볼 것은 ‘ 절제 ‘ 를 마지막에 두었는데 , 이는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 ( 갈 5:23). 따라서 헬라 사람들이 널리 인정하고 존중하던 4 가지 주된 덕은 크리스천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결과로 나타나는 덕목 / 성품이란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 [7]

경건함은 지식의 영역입니다 .

이제 마지막으로 영성을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경건함에 대해서 디도서를 통해서 배워 보겠습니다 .( 딛 1:1). 경건함은 신앙생활에서 보배와 같습니다 . 나에게 경건함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면 나는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 경건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또한 그 분을 무척이나 사랑하게 합니다 . 사람은 원래 두려움이 생기면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집니다 . 그런데 경건함에서 생긴 두려움은 두려움의 대상을 사모하게 되며 오히려 가까이 가고 싶은 열망을 낳습니다 . 경건함은 우쾌함과 반대된 개념이 아닙니다 . 오히려 경건함과 유쾌함은 연걸된 것입니다 .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유쾌하게 살 수 있습니다 .

딛 1:1 읠 경건함은 원어로 유세베이아 (eusebeia) 입니다 .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주로 목회서신에 집중해서 쓰이고 있고 , 베드로 전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이외에는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 행 3:12). 신약성경과 성경 밖의 문헌에서 ‘ 경건함 ‘ 이란 단어를 쓰임새를 살피면 크게 세 가지의 의미로 함축됩니다 . 첫째 , 경건함은 인간이 하나님께 빛으로 지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인간에게 빛처럼 청구하시는 것이 드다지 많지 않는데 , 그 대표적인 것이 ‘ 경건함 ( 유세베이야 )’ 입니다 .[8] 둘째 의미는 신앙의 외부로 드러날 때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 ( 벧후 1:3; 딤후 3:5). 셋째 신앙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열매입니다 . 그리고 이 건강함으로 반드시 형제에 대한 사랑을 일으킵니다 . ( 벧후 1:6-7). 요약하면 경건함은 신앙생활의 내면과 외면 모두에게 일치하게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신앙의 필수적 요건이며 ,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찾으시며 그들안팎에서 보길 원하시는 성도의 본질입니다 .

경건함은 감성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영역에 있습니다 . 딛 1:1 은 경건함이 지식에서 옺다고 지적합니다 . 진리의 지식을 알고 , 깨닫고 , 묵상하여 실천할 때 경건함이 자연 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신앙이 요동하고 , 늘 제자리에 있어 세상에서 별로 구별되지 않은 것은 경건함의 부족 때문입니다 .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 “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 딤전 4:8). 경건한 사람은 경솔하지 않으며 , 천박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자신을 절제합니다 . 디도서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수많은 교훈들은 결국 “ 경건함 ‘ 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우리를 경건하도록 돕는 특별한 진리의 지식이 있다면 어떤것일까요 ? 한 가지 예수님이 주신 요한복음 15 장 2-4 절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 “ 무릇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긋하게 하시느니라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 제가 이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경건함의 결과는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 십자가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건이며 , 복음이 하나님 임재안으로의 초청입니다 .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며 ,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며 , 말씀을 생명으로 붙들고 사는 성도들이 얻는 최상의 유익입니다 . 성경에는 수많은 진리의 지식들이 있습니다 . 그리고 이것을 찾아서 묵상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경건함에 도달합니다 .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이런 경건함에 이르도록 ‘ 진리의 지식 ‘ 을 안내해 주는 사역자들 두셧습니다 . 이들은 바울의 역할을 뒤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9]

맺는 

이제가지 우리는 디도서의 작은 부분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교회리더들의 영성에 대한 요구를 살펴봄으로 이 시대교회를 힘써 섬기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영성의 모습으로 삼았습니다 . 특별히 당시 그레데의 정황과 우리가 속한 사회의 모습에 많은 유사점이 있어서 디도서 1 장 1 절 , 8 절 그리고 2 장 1-2 절의 교훈이 흥미롭고 유익합니다 . 또 디도서는 바울이 자신의 선교 여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다소 급박한 마을을 담아 쓴 편지임으로 그의 교훈에 강렬함이 묻어 나옵니다 . 우리가 각각 섬기는 교회에 1 세기에 드레데에 있었던 부흥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그리고 그 부흥은 깊이 잇는 영성이 잘 뿌리내린 기초 위에 일어나야 합니다 . 이 시대에 영성있는 부흥이 있기를 갈망합니다 .

[1] George W. Knight III, The Pastoral Epistles, NIGCT (Grand Rapids: Eerdmans, 1992) pp. 9-10
[2] Bruce Winter, Roman Wives, Roman Widows: The Appearance of New Women and the Pauline Communities, Grand Rapids: Eedrmans, 2003, pp 141-44, 152
[3] 로마시대의 여성들은 식사에 동참했지만 , 식사후 대화 / 토론이 시작되면 식탁을 떠나는 것이 예법이었습니다 . 그런데 소위 로마의 신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식사 후 대화나 토론에도 참여 하기 시작했습니다 . 어쩌면 딤전 2:8-15 말씀은 이런 특정 상황을 배경에 두고 선포된 교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 (P. Towner, The Letter to Timothy and Titus[Grand Rapids: Eerdmans, 2006] p714).
[4] P. Towner, The Goal of Our Instruction, JSNTSS 34,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1989, pp165-66.
[5] 영어로는 prudence( 신중함 / 분별력 ), justice, fortitude( 용기 ), temperance 입니다 . Prudence 는 정신과 생각 그리고 마음에 관한 것이며 , temperance 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
[6]Towner, p 690.
[7] 하지만 로마 천주교의 학자들은 ‘ 용기 ‘ 가 유일하게 성령이 주는 은사로서의 주덕 (cardinal virtue) 라고 합니다 . (Scott P Richert, About.com, “Catholicism”)
[8] Walter Bauer, A Greek 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9, p.326)
[9] 만약 나에게 이런 진리를 지식을 몇 가지 더 제안하라고 한다면 , ‘ 종말과 심판 ‘ 에 관한 것을 꼽을 것이다 . 그리고 경건함과 친한 개념이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 속사람이 하나님의 경외하면 , 그 사람의 생활 모습에은 경건함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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