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4호 (Dec. 2013)

영성과 문화(1)-영성의 시대적 사명

04/22/15   최정훈

PAM 신한자문위원
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B.A. 종교학과 )
Claremont School of Tehology(M.A.)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M. Div.)
Yale University( S. T. M.)
Edinburgh University(Ph.D., 영성신학 )
현재 레노바레 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선교 Conference 를 인도 한 적이있다 . 그 Conference 기간 중 서로의 친교와 휴식을 위해 하루 반나절을 할애하여 구경도 하고 또 중간 중간 바다 위에 배를 정박시켜 놓고 내려서 수영도 하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특히 배 안에서 장기 자랑을 갖는 시간이 있었다 . 그 시간에 여러 선교사님들이 왕년의 노래솜씨를 뽐내며 흘러간 노리들을 아주 잘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들 혹시 선교사의길 잘못 들어 오신 것 아닌가 ?( 웃음 ) 하면서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 선교사님들께서 한참 흥겹게 지나간 조래를 부르시는 것을 들으며 자연히 우리 conference 를 같이 인도한 목사님들 끼리 모여서 우리시대에 힛트친 노래 또는 우행했던 노래들이 무엇이며 어느 가수를 좋아했는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

이 세상에 유행가가 있다 . 또 유행어라는 것이 있다 . 그 뿐 아니라 유행하는 옷이 있고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 , 유행하는 음식 , 운동 , 건축 스타일 , 심지어 유행하는 사상 문화도 있다 . 무엇이든지 유행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 유행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하나의 흐름을 의미한다 . 또 그것은 대중성을 의미한다 . 대중의 필요나 인기를 의미한다 . 그러므로 그것을 요약하면 유행이란 곧 대중성의 흐름을 의미한다 . 또한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기에 그 시대의 방향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 또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기에 변화성을 내포하고 있다 . 이런 유행의 흐름과 방향 또한 변화란 무엇보다 또한 그 시대 대중의 심리와 사상의 변화와방향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그러므로 유행 속에서 우리는 그 시대의 정신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그것이 노래이든지 , 옷이든지 무엇이든지 모든 유행들은 그 시대정신의 다양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 즉 유행 속에서 그 시대의 사상 과 문화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러면 이 시대의 대중과 역사 혹 문화의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또는 무엇을 통해 읽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 미국의 유명한 가수 , Pop 의 황제라는 별명을 가진 Miachel Jackson 가수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날 TV 와 뉴스는 보도 하기를 그 장례식을 “ 세계의 장례식 ” 이라고 보도했다 . 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TV 와 인터넷을 통해 그 장례식에 참여 했다고 보도했다 . 왜 그런가 ? 그 이유는 그가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른 가수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 단순히 유명하고 인기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 아니 그보다 그가 유명한 가수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 그 이유는 그가 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기 때문이다 . 즉 그가 유명한 가수가 된 이유가 일반가수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

그러면 그가 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음악의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일반 음악가들이 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의 paradigm 을 만들어 놓은 능력의 소유자라는 의미로도 해석 할 수 있다 . 그러나 그의 음악이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린 것은 단순히 그의 음악이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 새로운 음악은 항상 쏟아져 나온다 . 그 보다는 바로 그의 새로운 음악의 장르가 단순히 새로운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의 새로운 음악의 장르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감성을 touch 했기 때문이다 . 즉 그가 만든 새로운 음악의 장르와 이 시대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감성의 장르가 맞았다는 의미이다 . 즉 그의 재능이 단순히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능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 그의 뛰어남은 그의 음악이 이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의 문화코드와 검성코드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 즉 그가 뚸어난 가수가 된 것은 이시대 젊은이들의 내면적 욕구를 새로운 음악의 장르를 통해 적절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먼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감성 즉 그들의 음악적 장르의 특성과 그 흐름을 바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의 음악적 천재성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그의 탁월한 재능은 바로 상대방 속에 있는 것을 바로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에 맞는 음악을 창출시킨데에 있는 것이다 . 다르게 표현한다면 이시대 젊은이들의 음악적 혹 감성적 변화의 핵심을 바로 짚었다는 의미이다 . 즉 무의식 속에 감춰진 대중의 특히 젊은이들의 음악적 감성과 코드의 변화의 핵심과 그의 음악이 하모니를 이룬 것이다 . 즉 그의 음악적 천재성이 단순히 음악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혼과 하모니를 이루는데 있었던 것이다 .

위의 사실에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유행 속에서 그 시대의 대중성의 흐름이나 변화를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그 속에서 대중의 욕구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의 요구이기에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 칠 수는 없는 것이다 . 물론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단순히 대중이라는 즉 숫자적으로 다수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 대중의 사상 혹 흐름을 무시 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그것이 곧 그 시대의 현주소임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 대중들의 요구나 반응들이 옳든지 틀리든지를 떠나 그 현주소를 모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시대의 사명을 놓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동시에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곧 그 시대에의 문화나 또는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동시에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곧 그 시대에의 문화나 또는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무엇보다 그러한 대중들의 욕구는 곧 대중들의 무의식의 표현이며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어떤 집단이나 군중이든지 그 군증들의 무의식적 표현과 욕구 속에는 종교적 욕구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러므로 결국 대중들의 유행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속에는 종교적 욕구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그 대중의 욕구는 곧 정교적 욕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그리고 이런 대중의 종교적 욕구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향해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새로운 역사적 계시와 심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이런 의미에서 대중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종교적 욕구는 하나님의 계시와 심판의 싸인 (Sign) 인 것이다 .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와 심판은 역사의 흐름 속에 곧 그 시대의 대중의 무의식에 담겨진 심리적 역사의 흐름 속에 곧 그 시대의 대중의 무의식에 담겨진 심리적 욕구와 문화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그 시대 대중의 유행과 문화를 단순히 문화적인 혹 유행의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그 시대의 종교적 특성과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 또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세상을 향하신 관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즉 유행이란 단순히 그 시대의 대중의 관심일 뿐 아니라 곧 하나님이 그 시대를 향한 관심이기도 하다 . 이것은 동시에 종교와 문화의 필연적 연결성을 의미하며 동시에 종교가 이 세상에 대한 문화를 통한 사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 신학자 Paul Tillich 의 말대로 종교는 문화의뿌리요 문화는 종교의 꽃이기 때문이다 .

여기에서 먼저 무의식의 세계가 왜 우리의 영성과 어떤관계가 있는지 나중에 더 상세히 다루겠으나 잠시 살리고 넘어 가고자 한다 . 무의식이라는 용어 자체가 심리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사실에 있어서는 무의식의 세계는 곧 영의 세계다 . 무의식의 상태가 곧 영의 상태다 . 무의식 곳에는 의식의 세계와 단어가 뜻하는 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공존하지만 동시에 그 곳은 각 개인의 영혼이 거하는 자리다 .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그 실제적 상태와 상황을 보면 한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영이라는 서로 각각 다른 세 개의 개처가 함께 존재하는 곳 혹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므로 그 단어 사용에 있어서 어디에 촛점과 중점을 두는가에 의해 그 단어 사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 사실 그 무의식이라는 단어가 세상의 일반 심리학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을 뿐 성경은 이미 그 사실을 영혼 혹은 영 이라는 단어를 통해 일찍이 말씀하고 있었다 .

그리고 이 세가지 요소가 함께 머물러 있기에 서로 따로 독립적으로 거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간에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거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간에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거하는 곳이다 . 이 말은 곧 각 개인의 영혼이 자신의 의식이나 무의식에 의해 영향을 닫고 도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들에 의해 형성되며 반대로 한 개인의 의시과 무의식 역시 그 개인의 영혼에 의해 영향을 받고 동시에 형성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 개인의 의식 속에서 그 개인의 무의식의 상태를 읽을 수 있으며 동시에 그 개인의 의식 속에서 그 개인의 영혼과 그 영의 상태 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한 개인의 영은 단순히 영혼만이 아니다 . 죽 가개인의 영혼 이라는 독립된 개체가 분명히 존재 하지만 그 영혼은 단순히 여이라는 개체만 홀로 서있는 또 홀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실체 일수 없다는 사실이다 .

그러고 이미 위에서 잠시 언급 했듯이 우리의 무의식은 그것이 개인의 것이든 대중의 것이든 상관없이 그것이 곧 영의 세계이기에 그것은 곧 그 개인이나 집단의 종교적 속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독교적 혹은 복음적 영성의 사명이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바로 그 영성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독교 영성이 무엇인지를 바로 배우고 이해 해야 하는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

무의식 혹은 영혼에 관하여 여기서 한가지 더 알아야 하는 사실은 우리 각 개인의 무의식은 그가 속한 사회나 단체의 집단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 이미 그 사실을 칼 융 이라는 심리학자가 말했다 .

바로 여기에 로마서 12 장 2 절의 말씀 곧 이시대를 읽어야 하는 사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음을 명령하는 말씀인것이다 . 로마서 12: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아니다 . 오히려 이 세대를 구원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하며 동시에 이세상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어두움 속의 빛이다 . 즉 우리는 빛이 빛 되게 위해 어두움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드 어두움의 실체를 바로 읽어야 한다 .

이것은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다 . 영화나 소설도 마찬가지다 . 소위 힛트쳤다는 말을 한다 . 어떻게 힛트를 칠 수 있는가 ? 힛트를 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 물론 여러 가지 이유와 방법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곧 그 시대 대중의 내면적 흐름이나 정신적 욕구 내지는 문화의 특성의 정확히 일고 그것에 맞는 작품을 만듦으로 힛트를 칠 수 있는 것이다 . 그리고 힛트를 친다는 의미는 단순히 대중의 인기를 얻어 내는 것만이 아닌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 그리고 또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는 것 은 그것으로 인해 일종의 새로운 문화 양식을 만듣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바로 이런 사실들을 지나간 수많은 역사 곳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 즉 그 분야의 새로운 Paradigm 을 만드는 것이다 .

영성이 유행어가 된 이유는 ?

중요한 것은 영적 세계도 이런 면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 음악이나 소설 , 옷뿐만 아니다 . 특히 기도교복음 역시 이세상에 복음으로 영적 의미에 힛트를 쳐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바로 그 이세상이란 곧 세상의 문화를 의미한다 . 복음은 세상의 빛이며 그 빛은 구체적으로 문화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복음이 문화에까지 접근하지 못하거나 또는 문화를 통해 복음이 전달되지 못하면 그것은 마치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결과르 가져오기 때문이다 .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문화의 성격이 어떤 것이지를 더 구체적으로 알고 넘어갈 필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 문화를 아는 것이 곧 내 자신을 아는 길이고 내 자신뿐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 , 내 신앙 , 복음을 아는 길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인간을 문화적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 문화적 존재란 단순히 문화를 소유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 문화적 존재라는 의미는 문화를 소유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 문화적 존재라는 의미는 문화가 중요한 인간 삶의 매개체라는 의미이다 . 문화가 인간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인간이 성장하고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능과 동시에 목적이 된다는 의미이다 . 즉 문화란 인간에게 그가 속한 사회난 국가 등 그 외에 삶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서 문화적이라는 의미다 . 즉 문화란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과 아주 밀접히 연결된 실체이기 때문이다 . 이것이 바로 영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문화가 왜 중요하며 또한 영성과 문화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기독교영성과 문화에 있어서 공통되는 점은 양쪽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됨을 총체적으로 실현 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 Paul Tillch 교수의 말대로 문화는 종교의 꽃과 같은 것이다 . 꽃이란 씨앗의 본래의 기능과 잠재적 요소들이 가장 총제적으로 나타난 실체이다 . 그러므로 문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기능 등이 가장 총제적으로 성취된 실체인 것이다 . 즉 종교의 영역은 단순히 영혼만을 책임지거나 다루는 사명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문화를 바꾸고 창조해 가야하는 문화사명이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그 문화 사명 속에 종교가 철학화 되며 추상적 공중누각이 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종교는 단순히 문화를 구원할 뿐 아니라 동시에 문화를 통해 구원받고 보다 더 완전해지는 것이다 . 주님의 말씀에 너희는 “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 라고 말씀하셨다 .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세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그 세상 속에는 당연히 문화가 포함 되는 것이며 그러기에 신앙인은 영혼을 인도하는 자일뿐 아니라 동시에 문화를 인도하는 자 이어야 한다 .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 가운데에 씨앗 뿌리는 비유의 말씀이 있다 . 그 씨앗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 그리고 씨앗을뿌릴 때에 그 씨앗을 받는 여러 종류의 밭 곧 땅의 종류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 그리고 그 땅의 종류에 따라 그 땅의 상태가 가가 다름을 말씀하신다 . 그리고 각각의 상태가 다른 그 땅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각 사람의 마음상태가 다름을 의미한다 . 그런데 그 말씀이라고 하는 씨앗은 종류가 하나이지만 그 말씀이라는 씨앗을 받아 들이는 땅의 상태에 따라 즉 그 말씀의 씨앗이 어디에 떨어졌는가에 의해 가가의 결과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 즉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거기에 생명력이 있고 거기에 구원의 능력을 포함하고 있어도 그 씨앗의 운명과 결과는 그 씨앗을 받는 땅의 조건과 상태에 의해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

이 비유에서 말씀하시는 땅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그 씨앗을 받는 각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지만 그 땅이란 각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동시에 말씀을 받는 모든 상황 을 의미한다 . 말씀이 전해지는 국가 말씀이 전해지는 상황 ( 전쟁 , 기근 , 재난 , 안정 , 죽음 , 성공 , 실패 ) 등등 여러 상황이 포함된 것을 의미한다 . 즉 말씀은 그것이 전파되는 그곳의 상황이나 문화에 의해 결정 지어진다는 사실이다 . 씨앗에는 씨앗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 씨앗에는 씨앗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 씨앗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그런 씨앗의 유일성이나 독특함도 그 씨앗이 뿌려진 땅의 상태에 의해 바꾸어 진다는 이야기다 .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첫째는 씨앗자체가 그 씨앗이 만나는 토양의 성격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즉 씨앗의 속성에는 씨앗 스스로가 아닌 땅에 의하여 씨앗의 잠재적 속성과 기능이 나타나는 잠재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둘째는 씨앗과 마찬가지로 땅 역시 씨앗의 잠재된 기능들을 나타내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위의 사실에서 우리는 말씀과 그것을 듣는 자의 상관 관계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것이다 . 이것이 바로 영성과 문화의 관계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말씀자체를 이해하는 말씀자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말씀이 증거되고 전해지는 장소와 상황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임을 알아야 한다 .

흥미있는 사실은 오늘날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 인이나 영성이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 심지어 영성이란 단어의 사용은 이미 일반기업이나 일반 세상 직장이나 사회에서 까지 일상용어가 되었다 . 그 이유는 무엇일까 ? 그들은 그냥 아무 의미도 모르고 단순히 유행어로만 사용하는 것일까 ? 위에서 이미 언급 한대로 무엇인가 유행 한다는 것은 곧 그것의 대중성을 의미한다 . 그리고 대중성이란 곧 그시대의 흐름을 의미한다 . 그 시대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대중의 필요와 욕구를 의미한다 . 그리고 대중의 욕구를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것으로만 보면 안 된다 . 그러한 대중들의 욕구는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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