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목과 치유를 위한 새이름 짓기
04/22/15
오화철

연세대학교 대학원 (Th. M. 기독교윤리학 전공 )
밴더빌트 신학대학원 (M. Div.)
현재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박사과정중
(Ph.D. candidate in Psychiatry and Religion)
현재 해외한인장로회 (KPCA) 뉴저지노회 소속 목사
I. 들어가며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의 본질에는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한 열정이 들어있다 . 그것은 변화를 향한 도전이고 , 사물과 사람 그리고 세상을 이름짓고 싶어하는 인간의 열망을 보여준다 .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런 가능성과 재능을 이미 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 창세기 2 장 19 절을 보면 ,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해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 라고 기록하고 있다 . 이 성경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담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것들을 명명할 수 있는 (naming) 능력을 갖도록 해주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 동시에 , 아담이 이름지은대로 모든 생물들의 이름이 결정되는 것을 신뢰화는 창조주의 인간을 향한 믿음을 엿볼수 있다 .
II. 새이름 : 역설적 / 주체적 선택
새롭게 이름지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창조주에게서 부여받은 특별한 재능이다 . 정신과 의사요 , 상담학자인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 은 그의 저서 Man’s Search for Meaing(1984) 에서 인간의 역설적 의도 (Paradoxical Intention) 를 통한 새로운 이름짓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 프랭클에게 있어서 역설적 의도는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며 , 새롭게 접근하고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 예를 들면 ,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경우에 , 불면증 자체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고 , 불면증을 받아들이라고 상담하는 것이다 . 불면증이 느껴지면 , 정반대로 최대한 깨어있도록 노력하라고 권면한다 , 왜냐하면 , 지금 불면증환자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명증 자체가 아니라 불면증으로 인한 걱정 (Anxiety) 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 오히려 불면증을 피하지 말고 최대한 깨어있는 노력을 통해서 불면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 프랭클은 인체는 최소한의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므로 , 걱정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이 되면 인체는 잠이 들게 되어있음을 상기시킨다 . 어떤 점에서 , 프랭클은 환자로 하여금 불면증을 불면증으로 이름짖지 말고 , 불면증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로 이름짓도록 환자를 격려한다 . 그럼 점에서 사람이 인식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말은 중요한 마음치료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 성경 잠언 6:2 에서도 “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 라고 기록하고 있다 . 이것은 그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행위와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성경구절이다 .
어떤 점에서 , 한국 기독교는 이미 한국문화를 통해서 기독교를 새롭게 이름짓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줬다 . 그것은 우리 한민족 고유의 문화와 기독교가 만나서 상생하고 , 창조적인 신앙과 교회문화를 만들어냈으며 유래없는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 그런 면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미 기독교의 새로운 이름짓기에 도전과 노력을 해오고 있는 신앙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인의 문화와 심성안에서 기독교를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토착화하여 발전시키는 역량이 우리안에 내재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객체와 타자의 창조적 수용을 고려할 때 ,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준 인물이다 . 실제로 프로이트의 많은 저서들은 기독교에 많은 도전을 줌으로써 기독교를 건강하게 만들어줬다는 의견도 있다 . 예를 들면 , 프로이트는 철학자 니체의 영항을 받아서 , 계보학적이고 초인사상 (Superman theory) 적인 인간이해를 갖고 있다 . 프로이드의 가장 큰 명제는 “ 인간은 현실에 직면 (face) 해야 하고 현실을 발전 (improve) 시킬 수 있다 ” 는 것이다 . 또한 종교에 대한 인간의 가장 큰 열망은 소원성취 (wish fulfillment)” 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The Future of an Illusion, 1927) 이 사실은 신의 존재유무를 노하는 것이 아니라 , 인간안에 현상과 사물을 대면하고 직접 이름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 만약 인간이 그런 자신의 능력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 만약 인간이 그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 , 인간은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 잡혀 허상을 쫒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창조주가 주신 능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이름짓는 것이 아니라 , 되려 , 세상의 지배를 받고 세상을 숭배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프로으트는 허상 (Illusion) 에 사로잡혀 살지말고 ,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명명할 것을 주장한다 . 이것은 마치 ,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생물들을 아담앞으로 가지고 와서 어떻게 이름짓는가를 지켜보고 , 그 아담의 이름짓기에 따라 생물들의 이름이 결정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 사물은 대면하고 그 본질을 파악하여 이름지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허상에 사로잡혀서 ,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고 , 이름짓지 못한다면 내 안의 창조적 이름짓기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그런 점에 있어서 , 기독교인들에게 현실을 직시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 아울러 종교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왜곡하지 말고 , 종교를 통해서 세상을 직면하고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 만약 새로운 이름짓기에 실패한다면 인간은 여전히 혼돈의 시간을 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
새롭게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객체와의 주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 창조주가 아담에게 생물들을 데리고 와서 이름 을 지으라고 부탁한 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 생물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라는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 그 관계는 수동적인 관계가아니라 적그적인 관계요 , 먼저 이름을 부여하는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 심리학자 융은 그런 점에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융은 “ 좋은 질문은 이미 절반 이상의 해답을 갖고 있다 ” 고 까지 말한다 . 그만큼 우리가 사물과 현상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고 질문하면서 , 새롭게 이름지어가는 과정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다 . 질문은 현상을 새롭게 명명하고 (naming)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요하며 되려 답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
III. 새이름 : 조화와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
현대 기도교인들의 가장 힘들고 아픈 부분은 어디인가 ? 신앙은 있지만 마음을 잘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무제가 아닐까 싶다 .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 여전히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살고 , 때론 너무 미래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현상 , 그래서 단 한번도 현재를 살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에 아프고 힘든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경우를 본다 . 정신분석과 상담의 중요한 본질은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의 시간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 프로이트의 경우는 사람이 일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담의 최종목표라고 했지만 , 결국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면 , 사랑도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현재를 누릴 줄 아는 것이 정신건강의 바탕이라고 볼수 있다 . 왜냐하면 ,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고 , 현재가 미래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 과거도 미래도 늘 현재가 그 본질이다 .
‘ 현재를 향한 집중 ‘ 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 심리학자 프로이트부터 오늘날에 으리기까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에저지로써 성에너지 (sexual energy) 와 공격에너지 (aggressive energy) 가 논의되고 있다 . 프로이트는 두 에너지가 조화를 이뤄야 가장 이상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했다 . 인간은 두 에너지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실제로 , 두 에너지는 우리의 몸이 살아있는 한 늘 현존하는 에너지이며 , 프로이트의 경우도 그 에너지의 효율적인 승화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 정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 다만 , 그 승화의 가능성이 있는 부분으로 프로이트가 제시하고 있는 분야는 예술영역이다 . 예술을 바꿔 말하면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 인간에게 주어진 두 에너지의 미학적 승화 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 인간이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상실하면 , 동물처럼 본능에 이끌려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 필자가 실제로 , 상담기관에서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 마음에 병이 든 사람들의 특징은 아름아움에 대한 열망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 정신적 아픔과 갈등으로 인해서 세상과 사람들을 더 이상 아름다운 존재들로 명명 (naming) 할 수 잇는 힘을 잃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 그런 환자들은 갖고 있는 성에너지와 공격에너지의 조화가 깨진 상태이고 , 결국 잘못된 성에너지는 성적 무 질서에 사용되고 보람된 일과 성취에 쓰여져야 할 공격에저지는 공동체와 개인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에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성에너지와공격에너지의 잘못된 사용이 사물과 현상을 올바르게 명명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 백치 (The Idiot)” 에 등장하는 어느 왕자의 고백 “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꺼야 (Beauty will save the world)” 라는 말은 현대인 들에게 미학적 승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 어떤 점에서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순종하며 , 하나님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만 , 하나님자체가 이미 얼마나 기독교 신앙에 놀라운 미학을 선사하고 있는지를 간과하기 쉽다 . 절대자의 신성한 아름다움을 통해서 , 문제와 고통이 제거되는 절대적인 회복을 갈망할 뿐 아니라 , 나의 문제가 절대자의 아름다움앞에서 작아지고 새롭게 명명되는 상대적인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 미학적 치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필자는 예전에 미국병원에서 잠시 사역할 당시에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두 종류의 환자를 볼 수 있었다 . 사역했던 병원은 주로 2 차대전 , 한국전 , 베티남전에 참전했던 환자들이 치료받는 VA(Veterans Affairs) 병원으로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진 환자들이 많았다 . 지금도 잊을 수없는 두 명의 환자가 있다 . 우선 마이클 이라고 하는 환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분으로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 와 심장병으로 치료받고 있는 분이었다 . 이 환자는 평생동안 자신의 자녀들에게 한국전 참전의 무용담을 절대 애기하지 않을 만큼 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 그 이유는 1.4 후퇴 당시에 퇴각전투를 하면서 , 어쩔 수 없이 많은 한국 민간인들을 살상하게 됐고 , 평생씻을 수 없는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 두번째 , 환자는 스미스 라고 하는 분으로 2 차대전에 참전했던 노령의 참전 용사였는데 , 말기암으로 투병중인 분이었다 . 이 분은 필자가 병실에 방문할 때면 , 언제나 웃는 얼굴고 인사하며 , 필자를 축복하는 인사말을 건네 곤 했다 . 그 인사말은 Hi Chaplain, live a happy long life!! ( 목사님 , 오래 행복하게 사십시요 ) 였다 . 말기암 환자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밝은 표정으로 , 되려 상대방을 축복하는 그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가 없다 .
두 환자를 돌아보면서 , 명확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 한국전에 참전했던 마이클은 지나간 아픈 기억을 새롭게 이름짓고 (Re-naming) 정리하지 못한 가운데 , 여전히 과거의 기억으로 아파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는 환자였다 . 반면에 , 2 차대전 참전용사였던 스미스는 비록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지만 , 자신의 암울한 현실만을 바라고지 않고 , 상대방을축복하는 역설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줬다 . 자신의 현실을 새롭게 명명하고 (Re-naming) 있는 것이다 . 인생의 마지막에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현실의 벽을 뛰어 넘어서 , 역설적인 삶의 관점과 태도를 통하여 , 삶을 아름답게 마루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어떤 점에서 두 환자 모두 신앙인이었지만 , 한 분은 신앙의 힘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 삶의 아름다운 마루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 현실을 새롭게 이름짓는 모습을 보이지만 , 또 다른 한분은 현실에 굴복하고 좌절하며 , 현실이 주는 이름대로 세상을 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다 .
IV. 맺는 말
창조주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물을 명명하도록 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 하나님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아담을 부르신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 아름다움을 발견한 자만이 , 존재에게 이름을 선물하는 일 (naming) 을 할 수 잇다 . 빅터 프랭클의 역설적 의도 (Paradoxical Intention) 또한 절대고난의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의미생성능력을 일깨워주고 있다 . 이렇게 사물과 현상을 새롭게 이름짓는 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새롭게 이름지으면서 회복과 치유의 내적 능력이 경험될 수 있다 . 창조주 하나님의 미학을 재발견 (re-search) 하고 새롭게 이름지을 때 (re-naming) 치유와 회복의 길이 열릴 줄 믿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