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와 바울의 영성
11/19/14
소기범

장로회신학대학원 교역학 석사 (M. Div.)
시카고 신학교 조직신학으로 석사 (M.A.) 과정을 마친후
“ 지크데리다의 철학으로 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유명모의 합리성 연구 ” 로 철학박사 (Ph.D) 학위 취득
미국에서 이민목회를 하면서 ‘ 이민교회와 그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는 질문과 고민을 늘 하게 됩니다 . 미국에 있는 한인이민교회는 분명 한국교회와 다르지만 , 그 차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목회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 본 글에서는 ‘ 이민교회가 지향해야 할 영성의 모습 ‘ 을 살펴봄을 통해 바른 이민목회를 위한 단초를 제공해 보고자 합니다 . 이민교회의 영성을 묵상하기 위해 바울의 영성에서 통찰력을 얻어보고자 합니다 . ( 바울의 영성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PAM 4 호에 실린 저자의 글 “ 한국교회와 바울의 영성 ”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이민자릐 삶을 살았던 바을의 영성 은 미국에서 한인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 바울의 영성에서 배우기전에 먼저 미국에 있는 이민교회에 대한 간단한 밑그림을 그려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민교외와 한국교회
몇 년 전 , 미국을 방문한 서울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의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 한국에서 방문한 이 대형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에서 부목사를 하다기 미국의 이민교회 목회하면서 고전하거 있는 한 목사님에게 “ 아니 , 이민교회 하나 목회 못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 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합니다 . 이민교회 목사님들이 들으면 망연자실할 말입니다 . 아마도 이 목사님은 한국의 그큰 교회에사 다양한 목회 프로그램과 많은 성도들을 관리하던 자신의 부목사가 이렇게 몇명 안 되는 작은 교회에서 고전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 이 분의 용감한 발언에는 사실 더 큰 문제가 숨어있습니다 .
이 서울의 대형교회 목사님의 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숨은 의미가 하나 담겨있습니다 . 그것은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마치 모교회와 지교회의 관계와 같다는 것입니다 . 한국에 있는 교회는 신앙의 뿌리 , 고향과 같은 교회이고 , 이민교회는 이 뿌리에서 나와 미국에 자리를 잡은 가지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 이러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한국의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의 브랜치를 해외에 창설하고 , 이민교회 목화자들 가운데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목회전략을 무분별적으오 모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 이민교회는 한국교회라는 모교회에서 나온 지교회에 불과한 것입니까 ? 아닙니다 . 이민교회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땅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 한국교회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한국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듯이 , 미국의 이민교회는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미국에서 이민자들과 1.5 세 , 2 세를 대상으로 목회하는 교회입니다 .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그 문화적인 상황이나 특수성이 전혀 다른 교회입니다 . 이것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교회의 목회를 수출하려는 한국의 교회나 , 혹은 성장이라는 단순한 목표를 위해 한국의 목회전략과 목회자를 직수입하려는 단순한 목표를 위해 한국의 목회전략과 목회자를 직수입하려고 하는 미국의 이민교회는 결국은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는 그 상황과 문화에 맞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이 있습니다 .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
창조적인 중간인
그렇다면 이민교회가 발견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 이 질문을 숙고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민자들이 가진 삶의 특징을 이해해야 합니다 . 그 특징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 중간인 ‘ 의 삶입니다 . 미국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은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 중간 ‘( 혹은 ‘ 사이 between’)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 가끔한국에 방문해 보면 , ‘ 아 이제 내 생각과 삶의 방식이 한국사람들과 많이 달라졌구나 .’ 하는 것을 절감합니다 . 그렇다고 미국에 사는 삶이 미국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 미국에서 한국적 신학을 설파했던 이정용 교수는 이러한 이민자의 특수성을 ‘ 중간인의 삶 ‘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이민자는 두 문화의 중간에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 그래서 양쪽 모두의 문화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어는 문화에도 완전히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
중간인은 사실 설움을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 한국으로부터 떠나 삶의 뿌리를 옮겨 오는 경험을 거친 후 , 이제는 한국의 문화와도 거리가 생긴 생소한 마음의 아림을 안고 살아갑니다 . 미국에서는 여전히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 주변부에 머무르게 됩니다 . 1 세대 이민자들은 대부분 영어도 수월하지 않고 , 직업 또한 힘든 일을 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그 도달픔은 배가 됩니다 . 게다가 때때로 겪게 되는 인종차별은 이 사회에서 이민자의 위치가 주변부에 있다는 것은 절감하게 합니다 .
하지만 이정용 교수는 이러한 중간인의 삶이 설움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 중간인이 받은 축복은 ‘ 비판적 창조성 ‘ 입니다 . 중간인은 양쪽 문화 모두에 속해 있으면서도 또한 양 쪽 모두에 대해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두 문화를 객관적이고 비판젓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 이러한 비판적 거리로부터 창조적인 생각이 가능합니다 . 한국과 미국사회의 핵심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욕심에 눈이 멀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 이에 대해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부에서 약함과 함께 살아온 중간인들입니다 . 한국이나 혹은 미국 문화가 어떤 특정한 가치와 생각을 편애하며 나아갈 때 , 이에 대한 균형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 또한 양쪽 모드를 알면서도 비판적 창조성을 가진 이민자들입니다 . 이러한 이민자들이 가진 실족적인 정체성에서 나오는 ‘ 비판적 창조성 ‘ 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
바울의 비전
앞서 말한 것처럼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 a Diaspora Jew) 입니다 . 고향인 유대땅을 떠나 당시 로마제국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 곧 바울은 이민자인 것입니다 . 바울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로마헬라문화권 (the Greco-Roman world) 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 바울은 유대문화와 로마헬라문화 모두에 익숙하면서도 이 두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거릴를 두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이중간인의 삶으로부터 바울은 창조적인 비전을 보게 됩니다 .
바울의 비전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메시야로 보았던 예수님이 이방인을 포함하는 ‘ 온 세상의 주 ‘ 라는 사실이었습니다 . 이러한 그의 비전은 몇몇 부분에서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충돌하였습니다 . 갈라디아서 2 장에 소개되는 이방인들의 할례나 식사규례 (Kosher) 에 관한 예루살렘 지도자들과의 논쟁이 그 분명한 예입니다 .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새로 시작된 예수운동을 유대교의 상황에서 이해했습니다 . 그들에게는 유대인이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 문제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새로 예수님을 믿은 이방인들에게 자신들 처럼 유대의 관습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 그만큼 초기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분파처럼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데에 유대인이 되는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 바울의 이러한 생각은 1 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단한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 바울의 이러한 창조적인 생각은 그가 가진 중간인의 정체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 유대인이지만 , 로마헬라문화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바울은 유대문화네 대한 비판적 거리고 부터 이러한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
바울은 비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주님이실 뿐만아니라 , 피조물을 포함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 바울의 종말론은 로마서에 나타나듯이 유대인과 헬라인은 물론이거니와 신음하는 피조물까지도 고대하는 구원 ( 롬 8 장 ) 을 강조합니다 .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이야기하는 ‘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 계 21:5) 입니다 . 따라서 바울의 교회관을 한 마디로 말하면 ‘ 세상을 위한 교회 ‘ 입니다 . 교회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없이 불러 모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 세상의 구원을 향해 힘써 가는 공동체입니다 .
이민교회의 비전
이민교회의 비전은 바울처럼 ‘ 세상을 향한 교회 ‘ 가 되어야 합니다 . 그리고 이것은 중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이민교회가 비교적 수월하게 감당할 수 있는 비전입니다 . 왜냐하면 이민교회는 문화와 세상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실존적으로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두 문화 사이를 살아가는 한인이민교회들은 두 문화를 모두 끌어 안는 훈련을 통해 세상 전체를 끌어 안는 하나님의 비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이와 더불어 중간인이 가진 ‘ 비판적 창조성 ‘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요즘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이민교회가 가진 비판적 창조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 지금의 한국교회는 성장주의의 폐해로 인해 대형화 , 물질화 , 세속화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 하지만 미국의 이민교회는 그 작은 규모와 한계로 인해 적어도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조금 더 자유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 이민교회들은 자신들의 영세함과 연약함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 이 연약함을 극복하여 대형교회로 성장하려는 맹 목적인 목표를 세워서도 안 됩니다 . 오히려 이민교회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는 진정한 교회상을 세우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준 ‘ 약하고자 하는 용기 ‘(courage to be weak) 로 대변되는 영성의 모습은 대형화된 한국교회보다는 연약함을 자랑하는 이민교회에서 보다 수월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이민교회가 보여 줄 ‘ 세상을 위한 교회 ‘, ‘ 약함의 영성 ‘ 은 한국교회와 미국교회 모두를 건강하게 할 중간인의 사명인 것입니다 .
약한 자나 강한 자나 하나의 공동체로
그렇지만 이민교회에도 수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쉽게 교회가 갈라지고 분열되는 모습입니다 . 아마도 이민자들이 겪고 있는 중간인의 삶의 고달픔때문인지 , 이민교회는 이민자의 삶의 아픔들이 쉽게 표면하되는 장소이고 , 이 표출된 아픔들로 인해 생기는 분쟁을 해결할 능력과 인내심이 때로 부족해 보입니다 . 서로 다른 생각들과 오해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 그 결과는 교회가 쉽게 갈라지고 나뉘어지는 모습입니다 .
하지만 바울은 우리에게 교회 안에서 약한 자나 강한 자나 하나의 예배공동체로 설 것을 촉구합니다 . 바울은 로마서 14 장과 15 장에서 로마교회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의 분쟁을 다룹니다 . 바울이 의미하는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의 분쟁을 다룹니다 . 바울이 의미하는 약한 자는 유대인의 관습에 매여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 곧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대의 절기들을 지키려고 하고 , 유대의 음식규정을 중요시해서 적절한 방식으로 두축되거나 요리되지 못한 고기를 먹게 될까봐아예 채식주의자로 돌아선 사람들과 같은 무리입니다 . ( 롬 14:2,5) 이에 반해 강한 자는 바울처럼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
바울이 이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위대한 점은 어느 한쪽에 편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 바울이 주목하는 것은 누가 옳다 ,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 서로를 대하는 ‘ 태도 ‘ 에 관한 것입니다 . 바울이 두 무리 모두에게 권하는 태도는 세 가지의 모습입니다 . 첫째 , 두 무리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 ( 롬 14:6) 약한 자들도 하나님의 위해서 하는 것이고 자유를 누리는 강한 자도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 이것은 인정할 때 서로를 존중할수 있게 됩니다 . 둘째 ,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 (14:15) 아무리 자신이 하는 행동이 하나님을 위한 것일지라도 이것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에는 자제할 줄 아는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서로 배려하는 마음에서 이루는 평화와 기쁨이 그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 ( 롬 14:17, 19)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처럼 서로 용납하라고 강조합니다 .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 ( 롬 15:7) 그리스도께서 아직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실 정도로 우리를 받으신 것 처럼 우리도 서로를 그렇게 용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엄청난 사랑과 용서를 받은 빚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나와 생각이 다른 그 무리를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고 , 사랑에 빚진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그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함이 마땅합니다 .
바울이 이야기하는 약한 자와 강한 자에 대한 이 모든 조언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 “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이게 하려 하노라 .” ( 롬 15:6) 곧 하나의 예배공동체입니다 . 약한 자나 강한 자나 신앙의 색깔이 어떠하든지 , 삶에 어떤 아픔이 있던지 , 생각의 하이가 어떠하든지 ,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나의 예배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 바울이 강조하는 이러한 ‘ 화평의 영성 ‘ 은 오늘의 이민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성입니다 .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의 자리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위한 이민교회는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마음의 고향 , 하나님의 사랑으로 힘을 북돋아주는 영적 보금자리가 되어야합니다 . 이러한 이민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영성은 창조적인 중간인이라는 실존적인 모습에서 드러내는 ‘ 약함의 영성 ‘, ‘ 세상을 위햔 교회의 사명 ‘, ‘ 화평의 영성 ‘ 입니다 . 이러한 영성을 이루어가는 이민교회를 소망하며 , 바울의 기도가 오늘의 이민교회를 위해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다해 다음의 기도를 드려봅니다 . “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 롬 1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