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1호

꿈을 키우는 어린이들의 나비 박물관 WOW (World of Wings)

11/19/14   이익균

1984년 12월 31일에 미국에 이민 와서 25년간 쥬얼리 사업을 하다가 2012년 12월 뉴저지 티넥에 나비박물관 WOW(world of wings)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 (PAM) 이사
뉴저지장로교회 집사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1984년 12월 31일.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자연의 공해가 비교적 적은 광활한 땅,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제도가 안정된 국가, 인종이나 배경의 차별 없이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 청운의 꿈을 안고 26세 총각의 몸으로 뉴욕 땅을 밟았습니다.
연애하던 사랑하는 여인을 고국에 두고 빨리 자리를 잡으면 데려올 것을 기대하며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첨에 야채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맨해튼 길가에서 쥬얼리 페들러를 통해 시행착오를 하면서 영어를 습득했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고생했던 페들러 시절에 수입은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열심히 뛴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누군가 날 위해 보이지 않는 데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시 낯선 미국 땅이지만 형제가 힘을 합하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편지와 전화로 연애하던 연인이 초청으로 드디어 미국에 도착하여 미국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미국 온지 4년 만에, 29세에 독자적으로 You & I 라는 쥬얼리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또 얼마 후 다빅(Da Big: 모두가 크다는 뜻)이라는 제2의 쥬얼리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나의 어머니 김용례집사는 우리 삼형제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특별히 나의 아내 이정옥집사는 신앙이 돈독해 늘 사업을 위해 뒤에서 기도로 내조하는 조용한 내조자였습니다. 첨에는 함께 맨해튼 가게에 나와 일하다가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는 일과 두 딸의 교육을 위해 집안살림에 전념했습니다. 종종 아내는 직원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해 나갈 때 비싸고 제일 좋은 음식으로 풍성하게 준비하였다고 직원들은 늘 이야기합니다. 아내의 기도와 권유에 따라 제수씨와 함께 우리 가문이 출석하는 뉴저지장로교회에서 2005년 10월 9일 김창길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로부터 서리집사로 조용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먹고 살아 가는 것은 괜찮지만 미국생활이 길어지면서, 두 딸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애써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냥 이대로 살 수는 없었습니다. 내 가족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업을 통해서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2012년 12월 22일, 꿈꾸어 오던 'WOW(나비 박물관)'을 뉴저지 Teaneck에 open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비박물관을 8 개월째 운영하면서 나의 철학과 비전을 글로 써달라는 부탁을 김창길 목사님께 받았습니다. CTS America NYC TV에서 인터뷰 M 프로그램에서 이것을 나눈 적이 있으므로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나의 철학, 나의 비전

WOW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와 배움의 공간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entertainment 가 있는 어린이 배움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비 박물관은 천여 마리의 나비가 살아서 날아다니는 것을 직접 볼 수 있고, 나비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박제된 나비들을 통해 그 종류와 이름들을 외울 수 있는 등 자연과 나비에 관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도마뱀과 아기자기한 작은 동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파충류 전시관' , 상상력과 재미를 더해주는 '테마별 공간들' , 폐품과 산과 들에 굴러다니는 자연 속의 돌, 나무 등을 이용하여 상상과 응용력을 줄 수 있도록 재미있게 꾸며져 있고, 동화 속 같은 환상적인 '놀이 공간' 과 온 가족이 하나 되어 즐길 수 있는 최첨단 오락시설도 갖춰 놓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마음 자세로 정성스럽게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많은 상상력을 부여해 줄 수 있도록 꾸며 보았습니다. 박물관이지만 지루하지 않는 박물관, 살아 움직이는 작은 것들을 체험하며 배우며 부모와 함께 하루를 즐길 수 있고 또 다음에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나비 박물관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다른 공간으로 발길을 옮겨보면 돌, 생일, 회합, 회갑잔치 등을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연회장이 마련되어 있고, 가족 나들이를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도 새롭고 예쁘게 꾸며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 놀며 배우고 꿈을 키우는 가족놀이 문화공간 종합 엔터테인먼트 입니다.
학교 다닐 때 나비를 조금 접하게 되었고, 나비를 집중 수집하는 나비박사 친구와 인연을 갖게 되면서 나비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정에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슬픔을 극복하면서 특별히 어린이를 사랑하여 입양까지도 계획했던 아내가 좋아했던 아이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위해 나비의 세계를 구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슬프고 괴로운 시간을 버티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 갈 수 있는 그들만을 위한 공간을 나비와 연관시켜 나비 박물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커스텀 쥬얼리와 나비 박물관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싸지 않고 자랑스럽지 않지만 감각적인 영역과 꼼꼼해야 하는 쥬얼리 사업의 특성이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림과 예술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예술가 흉내를 낼 수 있어야 되는, 많은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내포하고 예술적 의미를 줄 수 있는 커스텀 쥬얼리 사업과 연결되어 있어 나비 박물관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비는 아름다움이며 상상력 그 자체입니다. 변화무쌍한 색깔은 다양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특별히 나비만 좋아해서 이 일을 한 것은 아니고 어린이들을 나비보다 더 좋아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나비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도 나비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비도 좋아합니다.
'WOW'가 추구하는 비전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즐기는 곳, 행복하지 않은 가정이 행복해 지는 곳, 화난 어린이들이 웃고 가는 곳,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곳, 배우면서 즐기고 즐기면서 배우며 상상력을 키우는 곳, 아픔과 슬픔이 치유되는 곳, 하루종일 막 웃다가 가는 곳, 가면서 꿈도 살짝 넣어 가는 곳, 그런 'WOW'가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처음 야채가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주인의 배려로 그 가게 앞에서 장사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분 때문에 미국에서 멋진 삶을 사는 법,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온 이유를 알게 해 준 그 분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렇게 길거리 장사에서 길거리 쥬얼리 장사로부터 여기까지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어려운 시기보다 재미있는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 일 할 때는 축지법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재미나게 일하는 방법, 일 자체를 즐겼다고 할까요. 야채를 진열할 때도 보다 예쁘게, 싱싱하고 기발하게 진열하여 보는 사람들이 즐겁고 기분 좋아하는 것이 더 즐거웠습니다. 돈에 관심을 쏟기 보다 멋지고 즐겁게 일하는 게 더 좋았습니다. 땀을 흘리는 노동이 아니라 땀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사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정의!
자신에게 정의로워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주는 정의, 내 스스로에게 떳떳한 정의를 가져야 합니다. 정의롭지 못하면 불안해 집니다. 떳떳하게 흘리는 땀은 가치 있고 그 땀 속에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정의가 흘러야 합니다. 떳떳하고 용기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중요합니다. 성공과 돈만을 추구하면 그것들은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돈 보다 나 자신에 대한 충족, 내 가족에 대한 충족, 나는 잘 지키지 못했지만 가족과 나를 지키려는 정의로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꿈은 심는 것입니다. 모두가 꿈을 품고 이민길에 오릅니다. 성공추구를 돈과 학력과 배움과 한 순간의 행운에서만 찾기보다 자신에게 충실하고 가족과 함께 심어가는 꿈, 그렇지 않으면 가져갈 꿈은 없습니다. 정의롭게 흘리는 땀은 달고 맛있고 아름다운 땀입니다. 그 땀의 맛을 아는 젊은이들이 되십시오.

한국에 대한 자부심도 심어 주고 싶습니다.

박물관내에 한국적 소품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한국에 대한 애정과 정서를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 앞에 기를 다는 3개의 봉을 만든 것도 한국국기를 달고 싶은 마음에서 였는데 두개만 달고 아직 한국국기를 달지 못해 하나가 비어 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부족한 점도 많고, 문제점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인도 이국땅에 와서 한국인들끼리 경쟁하는 비지니스를 넘어서서 미주류사회에 도전하고 미국에 사는 모든 다인종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개발, 문화활동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한국의 자존심과 꿈을 미주류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뭔가 새로운 것을 이루어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사업이라면 이런 박물관을 위시하여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일찍이 미국에 와서 정말 열심히 살아 온 사람들, 소위 특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새로이 도전하고 이루어 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비박물관을 하기 위해 건물을 구입하고 나비박물관을 꾸미고 타운의 허락을 받기 까지 3년 동안 그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버티어 낼 수 있었는지, 그 많은 난관을 뚫고 나간 끈기와 성실성, 그 열정과 도전정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질문을 받곤 합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첫째는 나를 위해서, 나비박물관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의 기도와 기대가 참고, 버티고, 도전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두번째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가정교육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아니하는 열정과 도전정신,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참고 버티며 평생을 사셨고 저의 어머님은 동네에서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들어 꾸준하게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자녀들에게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삶을 통해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들어도 버티고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하려는 노력,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그런 한국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런 분들이 우리 한국인의 자부심과 위상을 높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나비박물관의 전경은 이 책의 맨 뒷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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