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9호

구약의 영성(6) 바벨론 포로기의 영성: 에스겔을 중심으로

11/19/14   하홍표

부산대학교 상과졸업 , Harvard University 신학석사 , Drew University 에서 구약학 박사를 (Ph.D.) 취득하였고 , 해외한인장로회 (KPCA) 뉴저지노회 소속인 높은뜻교회에서 부목사로 현재 섬기고 있다 .

바벨론 포로기의 영성을 다루면서 에스겔과 이사야(40-55장)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그들의 영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에스겔을 중심으로 한 제사장 그룹의 영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하도록 하자.
그 이유는 포로기 전체를 살펴볼 때 포로기의 초반기에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겔을 중심으로 형성된 포로기의 영성은 포로기에 태어난 2세들이 아닌 포로기 1세들로 형성된 영성이기 때문이다. 즉 포로기의 영성을 형성한 구성원들의 차이에서 먼저 에스겔을 다루는 것이 더 순서적으로 맞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포로라는 민족적인 위기를 만들어 내었던 자신들의 조상들의 믿음과 영성을 그대로 이어 받지 않고 70년의 포로기간을 통해 새로운 영성을 형성하였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에스겔은 제사장 전통을 가진 예언자로서 주전 597년 포로가 되었다(겔 1:2). 바벨론 포로에서 그의 목소리는 희망과 회복의 소리를 전달한다. 특히 포로기의 암흑상태에서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가에 대한 철저한 진단에 따른 처방을 제시한다. 그의 관심은 회복이 주어질 때 이스라엘이 감당해야 할 미래에 있어 자신들이 정비해야 할 부분들을 세밀하게 제시하는 것이었다(에스겔 40-48장).
성전에 관한 예언은 주전 573년에 주어진 것으로(겔40: 1) 시작하여 국가재건의 시기에 구체화 될 것으로 실제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포로라는 암흑의 시기를 거쳐 동료 포로민들에게 미래를 투시하는 기능을 더욱 담당하게 된다.
특히 이들 포로민들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정한 것들 중 하나인 성전에 관한 진술에서 그의 영성을 바라보게 된다. 에스겔의 주 관심이 성전에 쏠리고 있는 점은 그의 제사장적 관심의 발로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성전의 파괴와 국가의 멸망이라는 사건 앞에 반성과 회개를 통한 개혁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듯, 포로기 전의 많은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유다의 잘못을 지적 했다(사 1:10이하; 예레미야 2-5장, 17장). 그들이 포로로 잡혀 온 후 70년의 포로기를 거치는 동안 자신들의 잘못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을 것이며, 더구나 성전에서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개혁의 중심을 성전으로 삼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곳에서부터 썩기 시작했고 냄새가 났었고 악의 근원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적 받은 바 있던 곳에서 그의 영성은 출발한다(에스겔8-11장).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바로 그곳에서 출발하였다는 강한 인식을 발산하게 된다.
특히 에스겔이 중심이 된 제사장 집단이 자발적으로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개혁을 추진하는 구심세력으로 등장한다는데 매우 의미를 가진다. 특별히 그들은 포로가 만들어낸 상황에서 왕실직무를 상실하고 성전에서 제의활동을 멈추게 되면서 더 이상 국가가 주도하는 제의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오히려 포로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자신들의 제사장 직분은 매우 독특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감당하는 자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 소명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된다. 비록 자신들은 실패를 했지만 새로운 시작에서는 실패를 방지하는 제도와 개혁을 이들 스스로가 찾아내기를 바라는 몸부림에 대한 하늘로부터의 응답인 것이다.
한편 포로기의 영성을 형성한 에스겔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살았던 전 시대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구원예언을 향해 나아가는 1-39장은 이스라엘이 다윗 왕정의 노선을 따라 회복될 것이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겔 34:23; 37:22-25). 에스겔은 왕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고 왕의 존재가 미래의 이스라엘 회복시기에도 그 정당성을 계속 유지시키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포로기 이전의 시대와 비교할 때 왕정은 매우 축소된 모습임에 틀림없다. 한편, 환상을 통해 보여진 예루살렘 성전의 부정한 모습들에 대한 고발(에스겔 8-11장)과 왕들과 관리들과 부자들의 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들은 그의 개혁적인 영성의 면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포로기 에스겔의 영성은 전통과 개혁이라는 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에스겔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영성이 전통과 개혁이라는 두 기둥을 세우며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더 다이나믹한 힘을 발휘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성이라고 말할 때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있지만 믿음의 전통에서 내려오는 핵심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태도를 인식시키고 있다.
에스겔 영성 가운데 중요한 것은 '거룩'의 개념이다. '거룩'은 세속과 구별과 부정으로부터 보호를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에스겔로 하여금 성과 속의 구분을 잊어버린 제사장들을 강하게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게 만들었고(겔22: 26), 거룩과 부정을 구별하는 기본적인 제사장 구분법을 유지시키게 된다(겔42: 20). 이런 통찰은 에스겔의 영성에 포괄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첫 번째 결과는 성소에 대한 이해와 성전건축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루살렘 성소를 제의의 장소로만 보는 것을 넘어 영광 중에 있는 여호와의 보좌로 보게 된다(겔43: 7). 자연스럽게 세속화된 성전에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의 부재(에스겔 8-11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강조하게 되고(겔43: 1-12), 장차 성전이 모든 신성모독의 행위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하는 제도로서 발전하게 된다(에스겔40-48장). 이것은 나라를 상실한 포로민들에게 자신들이 왜 이런 처지가 되었는가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통해 다시 하나님께서 성전을 자신의 처소로 삼도록 하는 해답으로 제시된다.
이런 에스겔의 영성에 있어 '거룩'에 대한 강조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 바로 성전환상이다(겔 40:1-43:12). 요새 형식의 구조를 가진 성전은 사면으로(260m) 이루어진 높은 외부 경계 벽은 성전이 매우 거룩한 곳임을 자연스럽게 강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내부도 점차 거룩해지는 세 영역으로 구분되며, 이들은 높아지는 지대와 추가 벽들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일곱 계단을 지나 바깥뜰에 이르고(4-: 22), 다시 여덟 계단을 지나 안뜰에 이르며(40:31, 34, 37), 열 계단을 더 지나 마침내 성전 건물 본체에 다다르게 된다(40:49). 여기서 '거룩'의 의미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 성전과 마찬가지로 성전 역시 다른 세 구역으로 나누어진다(40:48-41:4).
한편, 성전의 거룩함을 보호하기 위한 고도의 보호장치로 부각되는 것은 바로 벽보다 안뜰과 바깥뜰 출입을 통제하는 세 개의 문이다(40:6-27). 이 문들은 이스라엘 성읍들에서 발견되는 문들과 유사한 크기이다. 이 규모는 성전이 요새와 같다는 강한 인상을 주게 된다. 군사적으로 강한 느낌도 동반하지만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거룩한 행위가 위협받지 않도록 세속의 접근을 금지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교회가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하는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너무 제한되고 분리를 강조하는 지나친 면도 부각되지만 결코 세속으로부터의 오염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영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이 더 부각되는 이유는 그들이 나라를 상실했던 사람들이라는 것과 그 원인이 바로 '거룩'을 상실한 원인에서 기인된다.
두 번째 결과는 성전 출입법과 제의 담당자에 대한 규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전의 거룩에서 강조되는 것은 먼저 안뜰과 바깥뜰의 엄격한 구분과 함께 그곳에 출입하는 제사장의 제한도 강화된다. 포로기 이전에는 성전에서 허드렛일을 이방인들에게 전가하였지만(수9: 23; 스2: 43-58), 제단과 성전 건물에서의 일은 사독계열의 제사장들이 독점으로 그 일을 맡게 된다(44:15; 43:19; 48:11). 성전 문지기나 개인 희생제사의 도살은 레위인이 맡게 된다(44:10-14). 안뜰의 제사장과 바깥뜰에 있는 평신도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레위인들이 서게 되었다(44:13).
이런 구분은 거룩함의 정도에 따라 다른 일들을 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 보다 오히려 교회 내에서 맡은 직분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듯하다. 이렇게 활동하는 장소와 책임영역의 차이는 교회 내에서 서로 다른 봉사의 영역과 책임을 충실히 다하는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구분의 배후의 동기에는 성전의 거룩성을 지키고 가능한 모든 부정의 가능성을 배제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개신교 수도원 운동이 오늘날 교회들의 예배의 영성으로 가르쳐야 할 부분일 것이다. 지속적인 세상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세상 일을 맡아 하는 것보다 더 전문적인 평신도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것으로 해석되면 좋을 듯싶다. 거룩성의 정도가 낮은 일이라 평신도가 감당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전문성을 살려 세상과 교회를 잘 이어주고 더 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소개된 일반성도들의 정체성(만인제사장)과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일반인들이 제의에 구경꾼만으로 관람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측면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진정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예배는 드려지지만 참가자가 아닌 구경꾼으로 관람만 하다 오는 면을 지적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제사장들을 일반인들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배제하는 모습은 예배가 그만큼 중요하고 신령과 거룩으로 드려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결과는 제의를 국가의 감독과 권력으로 완전히 분리시키는 정치적인 개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포로후기 실시되는 제의는 더 이상 과거의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것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된다. 이런 개혁정신은 먼저 성전 구조와 제의에서의 왕의 역할 축소를 볼 수 있다.
옛 예루살렘 성전이 왕궁과 연결됨으로 우상숭배의 온실로 작용했던 점을 고려한듯하다. 왕궁과 성전의 근접성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겔43:8). 이런 이유로 인해 에스겔 성전 비전은 완전히 왕궁으로부터 성전을 분리시키는 방안이 제시된다.
성전을 왕궁으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문제를 한가지 지적한다. 에스겔43: 7, 9절에서 '시체'로 번역된 페게르( )가 '비석'을 의미할 경우 이런 기념비들이 성전의 거룩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간주한다. 왕들은 자신들의 명성과 국가권력의 증대를 위해 성전을 오용했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으로 하는 것을 잃어버릴 때, 사람들의 이름이 나게 되고 자신들이 목회에서 이루어 놓은 것을 자랑하려는 것을 억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
에스겔의 개혁적인 영성은 성전이 왕의 소유물이 아니듯 누군가에 의해 지배 받는 듯한 느낌을 배제시킨다. 이런 노력은 새 성전의 건축은 왕이 중심이 되어 건축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지어져야만 한다는 점이다(겔43: 10). 이민자의 교회의 약점으로 드러나는 점이고 배워야 할 영성인 것이다. 누군가가 헌신하였다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인간의 욕심이 제거되는 이민교회의 영성이 필요한 것이다. 누가 그 건물을 소유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임재와 그분의 영광(카보드: )이 드러나는(겔 43:1-5)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네 번째 결과는 종교적인 개혁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권력의 중앙집중을 막고자 왕실소유지와 수도권 지역의 분리에 영향을 미친다. 다윗 이후 예루살렘은 왕실 사유 재산이며 왕들의 핵심 권력 기반으로 활용되었던 병폐를 막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새로운 수도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땅 남쪽에 있는 왕실 소유바깥 지역에 건설하였다(겔45: 6; 48:15-18). 그리하여 새 수도는 제사장들의 영역 안에 있는 성전으로부터 1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들로 불리는 12개의 문들을 가짐으로 축소된 형태이긴 하지만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게 된다(겔48: 3-34).
특히 새 수도의 이름이 '야웨삼마'(겔48: 35 '야웨께서 거기에 계신다')로 부르며, 더 이상 야웨께서 왕실 성소 안에 계시며 국가 권력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상쇄시키고 있다. 오히려 야웨가 백성들 한 가운데 머무시며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보편적인 임재를 강조하고 있다(겔37: 27).
이런 개혁적인 에스겔의 영성은 국가의 멸망이(주전 587년)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형식과 왕권의 권력남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오늘 날 교권의 강화와 목회자의 권력남용은 우리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것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 비리의 산실이 교회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앞으로의 사회개혁과 사회윤리의 기초를 놓는 영성이 교회로부터 흘러 나와야 할 것이다.
마지막 결과는 요르단 서쪽 땅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새로이 분배하는 것에 대한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정학적 현실을 무시하며 매우 도식적이고 이상주의적 땅의 분배를 기술한 사실은 바로 왕정 이전의 이스라엘 지파공동체가 누렸던 평등체제로 된 통일된 민족에 대한 이상을 되살리려는 노력 또한 보게 된다. 이는 에스겔의 영성이 개혁적 성향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전의 시기의 이상적인 이스라엘의 평등주의적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요단 서편의 땅(겔47: 13-20)을 모든 지파에게 체계적으로 공평하게 배정하면서 이스라엘은 지파중심으로 재편되고, 모든 지파들은 동일한 규모의 땅을 차지하며, 양도할 수 없는 조상 전래의 유산인 땅을 분배 받게 된다(겔47: 13). 왕정이 시작되고 재산규모의 차이가 자신들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을 제거시키고 특정지파가 다른 지파의 땅보다 많지 않는 평등을 모토로 하고 있다. 재산의 동등한 분배는 더 이상 군주의 어떤 토지수여 행위에 의해서도 훼방 받지 않는 모습을 갖추게 된다(겔46: 16-18)
모든 가족 집단은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국가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계를 유지하려는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다. 그 배후에는 분명 평등사회에 대한 국가이전시대의 이상형이 그려지고 있다. 이 토지개혁의 목적은 포로기 이후 새롭게 시작될 공동체가 감수해야 할 심한 경제적, 사회적 균열을 방지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이런 일련의 에스겔의 영성을 살펴보면서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인 개혁의 측면을 모두 담고 있고 삶과 신앙을 분리시키지 않는 영성을 에스겔은 추구하였던 것이다. 포로기를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추진하는 그들에게 있어 왕정시기를 거치면서 잘못 되었던 제도와 관습을 제거하는 동시에 왕정이전의 이스라엘이 누렸던 부족중심의 평등구조적인 이상들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진지한 노력들도 게으르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제사장 중심적인 개혁이라는 비난도 나올 수 있지만, 그의 영성은 제의적인 관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과 세속적인 영역에도 관여하는 개혁을 시도한다. 신앙을 국가권력과 혼합시키려는 행위를 철저히 배격하고, 일반 백성들이 왕실의 중앙 권력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그들의 평등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균형 잡힌 사회를 유지시키는 방향도 모색하게 된다. 한마디로 종교, 정치, 사회라는 삶 전체에 대한 반성과 새로움을 시도하는 영성이 에스겔로부터 들려 온다.

개신교 수도원 운동에서 일으키는 영성이 교회와 세상으로 흘러 가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성은 하나님과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한 개인의 삶 전체와 그가 서 있는 자리까지도 영향을 미쳐야 할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샘은 유다 광야와 사해가 유다에 끼쳤던 단점들을 기적적으로 보안해 주었듯이(겔47: 1-2), 교회가 세상의 무너진 부분을 보완해 주는 영성이 이 시대에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에스겔의 영성이 포로민들에게 희망으로 부각되었듯, 21세기의 혼란한 영적 환경 속에서 개신교 수도원의 영성이 지친 현대인들을 일으켜 세울 것을 믿는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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