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9호

PAM의 새 생활 지침 실천수기(3) 하나님과 함께라면…

11/19/14   이신경

총회 신학대학 유아교육과 졸업
현재 뉴저지장로교회 유아부 전도사

얼마전 음식 먹은게 체해서 2. 3일 고생 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있어 체함이란 참으로 끔찍함이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고 운(?)이 좋으면 하루 고생하다 괜찮아지지만 심한 경우에는 3.4일동안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고생할 만큼 해야 몸이 다시 원상 복귀된다. 때론 한달에 한번 때론 두 세달에 한번씩 이런일을 겪고 나면 감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체하고 힘들었던 순간이 지나고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식물이 몸속에서 원활하게 소화되지 못하고 막혀도 이렇게 힘이든데 나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나의 영적 무지와 게으름으로 인해 막혀있던 순간 순간 왜 그리도 민감하지 못했는지 나의 영적 감수성이 이리도 둔감함에 가슴 아팠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살아온 신앙 여정을 다시 한번 돌아 보게 되었다.

1. Something

내 어린 시절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살아 가면서 내게 있어 교회에서의 생활은 내 삶의 한 부분이었다. 집, 학교, 교회가 내 어린 시절의 전부 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주일이면 당연히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모든 예배와 부흥집회 등이 필수셨던 부모님 덕에 교회 문턱이 닿도록 따라 다녀야 했고 거기에다 가정예배는 보너스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왜?"라는 의문없이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밥먹고 학교에 가듯이 그렇게 습관처럼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교회 학교에서 들었던 성경 속의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Super Power를 가진 요즘 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Cool한 사람들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유년 주일학교를 지나면서 나는 예배와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낯설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자리매김 해 가고 있었다.
중등부 고등부 부회장을 거치고 또한 교회를 열심히 섬기시는 부모님 덕에 나는 그래도 교회 내에서 나름 눈에 띄는 아이였다. 그렇게 중, 고등부를 지나면서 내 생각 속의 나는 그래도 나 스스로 뭔가를 할 수있는 자신감이있는 Something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시작하면서 그 당당하던 자신감이 조금은 주춤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한국 교회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고 3이 되면 학교 공부가 소홀해지면 안된다고 대학을 위해 잠시 주일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재수를 하던 그 시절 나는 유치부 교사를 시작했다. 주일예배를 위해 교재 준비와 찬양 준비를 하기위해 토요일 오후 시간을 비워 두어야했고 교사 강습회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다 따라다녔다. 강습회에서 배운 새로운 찬양과 율동은 잊어버릴까봐 집에 돌아와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는지…
유치부 교사를 하면서 내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했고 그로인해 기독교 유아교육을 할 수 있게 된것 같다. 하나님 일에는 거저가 없다는 말을 나는 100% 신뢰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거울보고 수없이 연습했던 공과 준비와 찬양 율동 심지어 할머니와 동생들까지 앉혀 놓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후에야 주일날 아이들 앞에 섰다. 그 결과 대학에서 전공 과목을 하면서 앞에서 Presentation을 할때면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고 교수님들께 과분한 칭찬을 듣곤 했다. 그 당시에 그러한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며 지냈다.
대학을 다니면서 난 여전히 뭔가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은 Something이었다. 신학 대학을 다니다보니 사명감에 불타는 친구들이 많았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 목사 사모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 그들의 미래를 위해 간절히들 기도하고 있었다. 가끔은 그런 그들의 모습이 너무 과한듯 여겨져 "왜 저렇게까지?"라는 의문이 생겼다.그들과 나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대학 4년동안 매일매일의 예배와 신앙 훈련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내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님이 내게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예배와 기도는 몸에 벤 습관이었고 굳이 하나님께 매어 달리지 않아도 육신의 부모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고 계셨기에 조금도 불편한게 없었다.
소박한 꿈이라고 여겼던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전히 교회일에는 내 기준으로 최선을 다하며 지내던 내게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함을 결코 원치 아니하시는 분인것 같다.

2. Nothing

결혼과 함께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한 미국으로 나의 삶의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육신의 부모에게 기대고 있는 나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려 주고 싶으셨던것 같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가정 예배 때 친정 아버지께서 읽어 주신 말씀이 창세기 28:15 말씀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그리도 의지했던 육신의 부모님을 떠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꿈속의 세상처럼 여겨졌던 미국에서의 생활은 결코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다. 당장 언어에서 오는 어려움과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야 했다. 또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한 가정을 꾸미어 가는 과정에는 서로를 양보해야 하는 조율이 필요했다.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나 중심으로 살아왔던 삶이 남편과 시부모님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삶으로 바뀌어 갔다. 오랫동안 교직에 계셨던 시부모님은 따듯하면서도 자상하신 분이셨고 남편은 착하고 부모님께는 둘도 없는 효자였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은 내게는 힘들게만 느껴지는 새로운 훈련 과정이었다. 나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틈없이 돌아가는 톱니 바퀴처럼 여겨졌다. 그런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내겐 모든게 부담이었다. 순간 내가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하나? 여유없이 바쁘게 일만 하러 온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유일한 기쁨은 주일에 교회에 가는 일이었다. 일 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던지. 한국에 있을 때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 철야 예배, 청년부 예배… 모든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모든게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 미국에 오기 전에 미국에서 다니게 될 교회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열심히 기도했었는데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뉴저지장로교회로 인도에 주셨다. 바쁜 일상생활에 지쳐 가면서 남편과의 관계도 시부모님과의 관계도 날마다 좋지만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은 신앙 문제였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는 내게 남편은 종종 주일은 지키지 못할 수도 있고 몇달 정도 교회 나가지 않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다른건 다 양보해도 주일을 지키지 않음은 양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다투게되고 결국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벽에 부딪쳐가고 있었다. 그 시절 비로소 내 힘으로 뭔가를 할 수있는 Something이 아니라 내 힘으로 어느것 하나도 할 수없는 Nothing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후에야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 했다. 결국 "기도 외에는" 이란 말씀이 피부에 와 닿았다. 비로소 육신의 부모님이 아닌 하나님 앞에 무릎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론 원망으로 때론 간절함으로.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시절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 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하나님 일에는 …때문에라는 변명이나 핑계대지 말고 일을 해야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던 기억이났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믿음의 여정에서 모두의 보폭이 일정하지 않음을 이때 깨달았다. 지금 천천히 가더라도 빨라질 수 있고 빠르게 뛰어 간다해도 넘어질 수 있음을…
늦게 가는 자를 기다려 주는 여유와 빠르게 뛰다가 넘어지는 자를 위로함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동안 해야 할 사랑의 실천이라 여겨졌다. 나는 이 일에 참으로 부족한 자이지만 이 일에 평생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 계시다. 김창길 목사님과 에스더 목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이라 생각한다.
나의 남편이 교회에서 멀어질 때마다 김창길 목사님은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며 권면해 주셨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며 남펀이 교회 생활에 힘들어 할 때마다 믿음의 아버지 역활을 감당해 주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랑으로 저희 가정을 염려해 주시는 목사님은 진정 사랑의 실천자시다. 목사님은 은퇴하시고 이제는 쉬실만도 하신데 더 많은 사람들을 품으시기 위해 이 시대에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위해 수도원 사역을 시작하셨다. 말이 앞서고 행함과 열매가 없는 이시대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믿음의 실천 운동처럼 여겨졌다. 수도원의 다섯가지 실천서를 서약하고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에 힘쓰기로 다짐했었다.

3. Everything

말씀은 힘이었고 기도는 나의 살아가는 소망이었다.
또한 함께 살아 가는 세상에서 남을 생각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선을 행하는 삶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행하신 일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부터 작은 일을 실천해 가기 시작했다.
지난 일년 동안 매일 매일 말씀 묵상을 하기 시작했다. 새해가 되면 신, 구약을 통독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늘 실천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서약은 곧 약속이란 생각에 처음에는 단순히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 어느새 점점 습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일년 동안 감사하게도 성경 일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의례 아침에 성경 읽기는 나의 일과가 되었다. 다른 서약들도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 하는데(100% 지키지는 못 하고 있지만) 나의 가장 취약점은 운동에 있었다. "매일 운동을 하겠습니다"는 지침에 대해 실은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던것 같다. 그래서 2013년도에는 매일은 아니어도 적어도 일 주일에 3번은 지키려고 하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을 때 나는 누군가와 함께여야만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을 때 믿음없는 내게 주셨던 하나님의 선물이 생각났다. 미국에 오기 전에 친정 어머님께서는 정기 검진을 받고 가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정기 검진을 하는 중에 자궁에 혹이 있음이 발견 되었다. 아무 이상이 없으리라는 확신으로 받은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수술 받기를 권유하셨다. 그런데 친정 어머니는 기도해 보고 한 달후에 다시 검사한 후에 결정하기로 하셨다. 그때부터 가정예배 시간에 모든 식구들이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셨다. 한 달 후에 병원에 갔을때 검사 결과는 혹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내게 하나님과 함께하면 Everything 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비록 내가 수술을 해야되는 상황이 되었더라도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계획이였으리라 생각 한다.
하나님과 함께 일때만 가능한 축복이었다.
그동안 내 힘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었다. 그로인해 덧붙여지는 어려움은 참으로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문제를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기로 마음먹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내 주위의 사람들이 변화되기를 바랬는데 하나님은 내가 먼저 변화되기를 바라신다는걸 깨닫게 하셨다.
하박국선지자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기도했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음이. 여호와 한 분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모든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축복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그리고 수도원 사역에 서약한 것들을 지켜 보려고 노력했다. 내 힘과 의지만으로 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다.
지난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단숨에 어려웠던 문제들을 해결해 놓으시진 않으셨다. 겉으로 보기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듯 보이지만 내 마음의 생각들이 변하여 내게 있는 상황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소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신뢰의 마음을 주셨다. 아직도 내 모습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의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모습 이대로를 품으시며 위로해 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 Nothing이 되어서야 그 자리가 하나님으로 채워질때 내가 세상에서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때론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나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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