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침묵기도
10/16/14
김명세

1991년 공학박사, 토론토 대학 전기공학과
현 Sheridan College 교수 / 현 카나다 본 한인교회 시무장로
내가 처음 침묵기도를 경험하고 침묵기도가 내 신앙생활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약 7년전의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훈련된 믿음과 40대의 자신감으로 무엇이든 손을 대기만 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때. 그 당시 거의 2년동안 간절히 기도하며 소망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의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며 모두가 기도하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마무리 되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내 개인 만을 위한 일도 아니고, 나름대로 헌신적으로 협력하고 있던 젊은이들의 신앙공동체에 관한 일이어서 더욱 실망이 되고 납득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우리들과 함께하신다고 확신했던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의 기도를 저버리시고,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시련을 겪도록 내버려 두시는 걸까 하는 생각에, 더 이상 기도도 나오지 않았고, 실망과 회의로 답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메달리던 주님은 이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런 주님을 찾아가 단 둘만의 시간을 갖고 단판이라도 짓고 싶은 심정으로 내가 찾은 곳은Loyola House라는 예수회(Jesuit) 영성수련원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제공하는 3박4일 침묵수련회에 참여하기로 한 것입니다. 친분이 있는 목사님들 중에 토론토대학에 있는 낙스 장로교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영성을 공부하시던 목사님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기억해 두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크게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은 심정이었을텐데, 왜 하필 침묵수련회를 갈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나의 심정이 얼마나 다급하고 절망적이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해보는 침묵수련회였지만, 평소에도 별로 말이 없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침묵은 별로 그리 어색하거나 힘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침묵은 외적침묵보다도 내적침묵이 더 어려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들려오는 잡음들이 계속 메아리쳐 오는 것은 물론이고, 일의 상황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고 그 공동체를 이런 시련에 처하게 하시는 주님에 대한 원망이 엇갈리면서, 나의 내면은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며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외적침묵을 계속 유지하다보니 점점 내면도 잠잠해지고 정신이 점점 맑아오며 평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며 이틀을 보냈습니다.
3일째 되는 아침. 나의 독방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을 나누시는 장면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일일이 말상대를 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인자한 모습이 나의 묵상 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런 자비로운 주님의 모습은 왜 지금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예수님, 당신의 그 인자하신 모습은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 나는 점점 그런 자비롭고 인자하신 주님의 모습을 내 마음 속에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때는 5월이라 따스한 봄날의 아침햇살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방안을 가득 채워가며 나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나의 마음과 영혼을 안아 주시고 계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묵상이 이어지면서 나의 마음과 영혼은 녹아 내리고, 주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확신이 다시 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가 실망과 근심 때문에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가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의 묵상과 깨달음을 말로 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 때에 느낀 점들을 나는 그 날 이렇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난다. 고요한 집안을 의식하고, 혼자된 두려운 생각이 들어 인기척을 찾아 이 방 저 방 헤메인다. 그러다가, 건너방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친숙한 목소리를 알아듣고 반가운 마음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가 안긴다. 어머니는 항상 내 곁에 있었는데 왜 내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어머니를 의심한 미안한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이 함께 있다."
그 후로 침묵기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되었고, 마침내 침묵기도는 나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영성이 무엇이고 침묵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시작한 일이어서, 부지런히 배울 기회가 있는 대로 배우기에 힘썼습니다. 영성을 공부하시는 목사님들께서 추천해 주시는 책들도 읽어보고, 토론토에 있는 "쥬빌리 영성 연구소"가 주관하는 수련회와 강좌에도 참석합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고 익숙해지기까지 힘이 들었던,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나 '복음관상기도' (Gospel Contemplation)도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말씀묵상과 기도방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대로 침묵수련회에 참여합니다. 바쁜일과 속에서 좀처럼 시간 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년에 2-3번은, 개인적으로 Loyola House를 찾아가거나, 혹은 '쥬빌리 영성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침묵수련회에 참석합니다. 늘 사모하는 김창길목사님과 김에스더목사님께서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 (PAM: Protestant Abbey Mission)를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분들이 더 늘었기 때문입니다. 보내 주시는 계간지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표지 첫장에서 표지 마지막장까지다 읽습니다.
나에게 침묵기도는 주님과 단 둘 만이 보내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잠시 잊어버리고, 내 안에 임재하시는 주님 만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내 마음 속에 쌓인 많은 거짓된 것과 나 자신 만을 위한 이기심들을 걷어내고, 다시 내 안에 계시는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 기쁨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없었던 소리들을 듣는 시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내가 받은 상처들을 직시하여 치유가 일어나며,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Lectio Divina를 통해, 평소에 익숙했던 성경말씀 속에서도 내가 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찾아 묵상을 하는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복음관상기도를 통해 말씀 속에 직접들어가 그 속에 살아계시는 주님과 더 직접적이고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보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의도나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나를 맡기는 침묵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직 기독교 영성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침묵기도가 힘들게 느껴 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생활이 번잡하고 번잡할수록, 내적침묵을 이루고 주님 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더 힘들고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침묵기도가 점점 더 좋아지고, 그 침묵기도를 통해 나와 늘 함께하시는 주님에 대한 확신이 계속되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확신은, 지난 몇 년간 교회 건축의 프로젝트 매니저의 일을 감당하면서, 틈틈히 단기선교를 다녀 오면서, 그리고 이제는 장로의 직분을 맡게 되면서, 나의 마음 속에 섬김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내가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나의 주가 되셔서 이루시는 것들입니다. 내가 주 안에 있고 주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더욱 소망할 것이 있다면, 나의 생활 속에서, 상처와 이기심으로 이그러진 나 자신의 모습보다는, 침묵기도 생활을 통해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형상이 점점 나의 표면으로 나타나며, 날마다 조금씩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