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의 역사
10/16/14
고영민

고려대학교 졸업, 사학 전공(문학사, B.A) 장로회 신학 대학원 졸업,
목회학 전공(교역학 석사, M.Div.) 캐나다 토론토 대학,
영성신학 전공(신학석사,S.T.M.)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졸업,
영성신학/영성지도자과정 전공(목회학 박사, D.Min)
토론토영락교회 부목사(영성 및 성인교육담당)
들어가는 말
라틴어로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거룩한 독서, 영적 독서 또는 성독(聖讀)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렉치오 디비나'를 '말씀으로 기도하기'라고 정의하고, 줄여서 '말씀기도'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려운 라틴어를 피하기 위함도 있고, 카톨릭적이라는 선입관을 불식시키기 위함도 있다. 문헌에 따르면 장로교 창시자 칼빈 역시 그의 개인 경건 생활에서 렉치오 디비나를 자신의 기본 방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렉치오 디비나는 카톨릭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경과 초대교회 그리고 사막의 교부들과 오랜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둔 뿌리 오래된 기도방법이다. 이미 한국교회에서는 렉치오 디비나가 큐티(QT)라는 형식으로 소개되어 지난 수십 년 간 실천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관심을 받고 있는 렉치오 디비나는 큐티보다는 고전적인 형태의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주로 해왔던 묵상 방법인 큐티는 '관찰-해석-적용'의 3단계의 과정을 통해서, 주로 삶의 적용에 강조점을 두는 방법이다.'렉치오 디비나'는 '읽기(lectio)-묵상(meditatio)-기도(oratio)-관상(contemplatio)' 의 4단계의 과정을 통해서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자발적인 기도를 드리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고요한 쉼을 얻는 기도 방법이다. 렉치오 디비나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을 두며, 이 교제를 통해서 더 깊은 삶의 변화를 추구한다. 의도적으로 삶의 적용을 하지 않아도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깊은 친밀감을 형성하면 내면과 삶의 실질적인 변화가 오기에 적용보다 교제에 초점을 더 두고, 더 깊은 삶의 변화, 더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렉치오 디비나의 목표라고 볼 수 있다.
몸 말
렉치오 디비나가 성경과 교회 역사에 뿌리를 둔 기도 방법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도 방법이지만,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최근에 부각된 기도 방법이기에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시작으로 해서, 성경과 교회의 역사 속에서 렉치오 디비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구약 성경의 쉐마
렉치오 디비나의 뿌리는 성경이다. 비록 성경 안에 어떤 틀이나 형식을 가진 렉치오 디비나의 직접적인 실천은 보이지 않지만, 렉치오 디비나의 전통을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렉시오 디비나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성경적 기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듣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것을 백성들이 귀를 기울여 듣는 구약성경의 쉐마(들으라 이스라엘)에서 우리는 렉치오 디비나의 원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2. 포로기의 유대교
렉치오 디비나의 실질적인 뿌리는 포로기 시대의 유대교에 두고 있다.(B.C. 6) 포로기 시대에는 제사도 성전도 없는 시대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의 중심에 있었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한 장소가 바로 '회당'(Synagogue)이다. 회당에 모이는 목적은 오직 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함이다. 다른 말로 하면, 회당은 '공적인 렉치오 디비나'(public Lectio Divina)를 위한 장소이다. 느헤미야 시대에 온 이스라엘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을 때에, 에스라 선지자가 높은 단위에 올라가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모세의 율법을 읽고, 레위 사람들이 통역하며 그 뜻을 밝혀 주었다.(느8:8-9)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감동을 받아서 우는 장면에서 우리는 공적 레치오 디비나의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이후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되어서 더 이상 성전이 존재하지 않아서, 제사와 예전이 사라진 후에도 유대교가 역사 속에 남아서 박해 속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오직 하나 계속해서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을 살게 해 주었다.
3. 신약성경
회당 예배 전통을 이어 받은 초대교회에서도 역시 말씀의 예전은 예배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여기서 말씀은 물론 구약 성경을 의미한다.) 오늘날 예배 속에서 말씀의 예전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근거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말씀 예전은 유대교의 회당 예배의 전통을 따라서 '공적인 렉치오 디비나'(Pulbic Lectio Divina)형태였다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과 나사렛, 그리고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행하신 일에서 우리는 회당의 공적인 렉시오 디비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누가복음 4장에 나사렛에 오신 예수님께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의 말씀 두루마리를 펼쳐 읽으셨다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이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을 다 읽으신 후에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4:21)."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은 "오늘"로 현재화된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4. 초대교회
예배 안에서 말씀의 전례로 행해진 공적인 렉치오 디비나가 그 후에 '개인적인 렉치오 디비나'(Private Lectio Divina)의 방식으로 발전되고 실천되었다. 이 개인적인 렉시오 디비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탁월한 길로서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운동을 확산시킨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185-254)이다. 오리겐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분이시기에,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신자의 영성생활에서 부수적 도구가 아니라 근본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요한 크리소스톰(347-407)은 렉치오 디비나를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의 가정에서도 실천하라고 권고한다."집에 돌아가거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펼쳐들고 교회에서 들은 말씀을 다시 반복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서 상을 두 개 마련하십시오. 하나는 음식상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의 식탁입니다. 남편은 교회에서 들은 말씀을 다시 읽으십시오."이 때를 전후해서 성경읽기가 영적 훈련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제롬(St. Jerome, 342-420), 바실(St. Basil, 330-379)에 이르러서 교회와 수도원에서 '렉치오 디비나'가 가장 기본적인 영성 훈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제롬은 최초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사람으로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길로서 성경 암송을 강조하였다.
5. 수도원 전통
교회역사를 살펴볼 때, 렉치오 디비나는 수도원의 환경에서 꽃을 피웠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Apophthegmata)에는 여타의 독서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도, 성경 독서만은 예외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이 내포하는 가르침과 윤리적 교훈들을 배우기 위해서 성경 독서를 강조하였다. 이집트의 은수자 성 안토니(251-356)는 성경의 한 구절도 빼지 않고 외울 만큼 성서 말씀을 주의 깊게 읽었다고 전해진다. 인쇄술이 발달되기 이전의 초기 수도자들은 성경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 성경을 소유하고,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끊임없이 읽고, 암송하는 방법으로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배웠다. 이들에게 있어서 렉치오 디비나는 삶을 인도하는 구체적인 수행이었다. 수도생활에서 늘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성 파코미오(292-346)는 수도원 지원자들에게 수도생활을 배우기 이전에 며칠 문간에 머물면서 주님의 기도와 시편을 암기할 것을 요구했다. 동방 수도 전통을 서방에 알려 준 요한 카시안(365-433)도 성경을 매우 중요시하여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의 중심에 무엇보다도 성경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6.베네딕트(St. Benedict, 480-550)
오늘날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렉치오 디비나를 체계화하고 규범으로 만든 중요한 인물이 바로 베네딕트이다.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서 젊어서 문학 공부에 열중하였으나 이 모든 것의 허무함을 느끼고 부와 명예와 지식 모두 버리고 고요한 곳으로 들어가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거룩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수도원에서 했던 기도의 방법은 한마디로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성경 한 구절 읽고, 그 뜻을 묵상하고 그리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는 방법이다. '읽기' (Reading)-묵상(Meditaing)-기도(Praying) 바로 이것이 베네딕트 묵상법이다. 후에 베네딕트는 수도회를 창건하고 '규칙'(The Rule)을 만들어서 렉치오 디비나를 수도승의 의무로 규정하였다.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서 렉치오 디비나를 위해 정해진 시간을 일과표에 명시했는데, 가령 여름철(부활절부터 10월 1일까지)에는 제1시부터 제4시까지의 노동이 끝나면 제4시부터 제6시까지 렉치오 디비나의 수행을 하라고 권한다(규칙 48,4). 베네딕도는 성서만 아니라 다른 교부들의 저서들도 렉치오 디비나를 위하여 수도자들에게 추천하였으나 그 무엇보다도 성경이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 자료였다.
7. 개신교 전통
개신교회는 카톨릭교회보다 훨씬 더 성경을 강조하였다. 엔조 비앙키는 종교개혁이후의 렉치오 디비나는 카톨릭교회보다는 개신교회에서 강조되었다고 인정한다. 성경은 개신교 영성과 신학의 뿌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이후 이성과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16세기 인문주의자들은 말씀에 대한 문자적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비판적이고 조직적인 독서방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성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향후 성서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성경을 지성적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읽고 되새김으로써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추구했던 렉치오 디비나 수행으로 부터는 점점 멀어져갔다. 렉치오 디비나는 종교 개혁자인 요한 칼빈과 참된 목자(The Reformed Pastor)를 저술한 리처드 백스터, 그리고 18세기에 경건의 훈련(The Practice of Piety)을 저술한 청교도 영적 저술가 루이스 베일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은 자신의 경건생활에 렉치오 디비나를 기본으로 넣고 실천하였다고 한다.
나가는 말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가 널리 유행하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지난 몇 년 사이 렉시오 디비나에 관련된 여러 권의 서적과 논문들이 출판되었고, 렉치오 디비나를 배우고 실습하는 세미나나 렉치오 디비나에 의한 수련회도 열리고 있다. 필자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말씀기도'라는 이름으로 렉치오 디비나의 4단계로 7단계로 늘려서 전교인이 시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교인들도 점차로 익숙해져서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들을 포함해서 많은 교우들이 이 기도를 통해서 깊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있다. 또한 많은 분들이 기존에 자신들이 했던 큐티 방법보다 더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다고 말을 한다.
한국 교회가 대중적으로 해왔던 큐티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5단계로 진행된다. 1)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 2)성경을 천천히 읽는다. 3)말씀을 묵상한다(다양한 묵상방법들이 소개된다). 4)묵상을 통하여 깨달은 말씀을 삶에 적용한다. 5)결단의 기도를 드린다. 이렇게 보면 한국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큐티가 렉치오 디비나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렉치오 디비나에 있는 관상의 단계가 큐티에서는 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렉시오 디비나에서 관상은 말씀을 맛보는 단계, 즉 말씀 속에 깊이 잠기는 단계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관상은 말씀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며, 그 안에서 안식하는 시간이다. 그분이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도록 우리 자신을 그 분께 완전히 열어드리는 시간이다. 이 관상의 단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함으로, 우리는 보다 깊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뜻에 응답할 수가 있게 된다. 큐티는 삶의 적용(application)에 궁극적인 초점이 있다.
말씀을 읽고, 깨달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목표이다. 반면에 렉치오 디비나는 관상(contemplation)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목표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과 깊은 만남을 통해서 주님과 깊은 친밀감을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서 삶의 깊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렉치오 디비나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큐티와 렉시오 디비나는 궁극적으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큐티 역시 크게 보면 렉시오 디비나의 전통 안에 있는 기도 방법이다. 결국 큐티나 렉치오 디비나 모두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말씀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존재의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큐티를 통하여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는 일에 믿음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여기에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지향하는 렉시오 디비나의 정신이나 실천이 더해진다면 우리의 묵상이나 기도가 보다 깊어지고, 더 깊은 삶의 변화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큐티 대신에 좀 더 고전적이고 원전에 가까운 방법인 렉치오 디비나를 실행 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그러나 렉치오 디비나에 대해서 낯선 느낌이나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렉치오 디비나로 큐티를 대치하지 않더라도 렉치오 디비나의 정신을 큐티 속에 집어서 말씀을 깊은 차원에서 맛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더 집중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나가는 큐티를 실행해 볼 것을 제언하고 싶다. 아무쪼록 한국교회가 렉치오 디비나의 실천과 정신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말씀 가운데 잠기고, 말씀을 맛보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어서, 더 깊은 존재와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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