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호

한국교회와 수도원운동

11/19/14   소기범

숭실대학교독어독문과 (B.A) 졸업
장로회신학대학원 교역학 석사 (M. Div.)
시카고 신학교 조직신학으로 석사 (M.A.) 과정을 마친후
“ 지크데리다의 철학으로 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유명모의 합리성 연구 ” 로 철학박사 (Ph.D) 학위 취득

작년 한 학기 동안 나는 한국에 머무르면서 한국교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매주 한국의 다양한 교회를 순방하며 한국교회의 영성과 목회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내 마음을 가장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은 성장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의 모습이었다. 화려한 교회의 외형을 치장하기에 급급하고, 모든 목회적 관심은 교회성장에 맞추어져 있었다. 한국교회의 영성 또한 이러한 성장주의의 한 방편이 되었다. 곧 한국교회는 영성을 하나의 '최신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면서 '교회 성장'을 이루는 또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하는 현실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개혁되어야 할 모습들과 영성에 대한 오해를 염두에 둘 때, 이제 살펴보려고 하는 수도원운동이 한국교회에 갖는 의미는 실로 지대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세상적인 성공과 안락을 떠나서 하나님 사랑의 은혜만을 올곧게 추구하고자 했던 수도원운동은 한국교회의 올바른 영성 회복을 위해 절실하게 요청되는 모습이다. 본 글에서는 수도원운동의 역사 속의 세 인물과 그들의 중요한 영성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한국교회에 수도원운동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

기독교 역사가 4세기를 맞이하였을 때, 새롭게 태동된 한 운동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도원주의(monasticism)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등지의 사막에서 독거생활을 한 교부들의 등장이었다. 어느 종교에든지 제도권 종교지도자들에게 깊은 영성과 더불어 비판과 도전을 동시에 제공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인데, 초대 사막의 교부들이 바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제도권 교회의 인정을 받으면서도 항상 제도권 교회와 거리를 갖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후에 기독교 역사 속에 전개된 수도원운동은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항상 시대의 영성과 개혁을 선도하는 자리를 지키게 된다.

이 사막의 교부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사막으로 들어가 홀로 살아가면서 (혹은 공동체를 이루어서) 오직 하나님 안에만 거하기 위한 다양한 영적인 실험을 행했던 사람들이다. 사막의 교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수도승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성 안토니(St. Anthony or Anthony the Great, 약 251-356)이다. 안토니는 그의 나이 약 18세에 "가서 너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복음서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여 수행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사막의 교부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소유를 모두 팔아 사막으로 나아가 홀로 거하는 단순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이들의 이러한 신념은 "하나님께 귀기울이기 위해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르기 위해 금식하는" 거룩한 가난(holy poverty)으로 이어졌다. 가난 속에 거하는 가운데 수도승의 마음은 다른 것에 나뉘어짐이 없이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비로소 살아 숨쉬게 된다. 그래서 안토니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물고기가 물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면 죽게 되듯이, 수도승들이 그들만의 처소 밖에서 지내며 세상의 사람들과 오래 시간을 보내게 되면, 내적인 평화의 깊이를 잃게 된다. 따라서 마치 물고기가 바다를 향하여 가듯이, 우리는 모두 우리만의 처소로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밖에서 오래 머무르면 우리의 내적인 민감성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안토니는 하나님 안에만 머물기 위하여 세상의 것들과 단절하는 거룩한 가난을 실천하며 살아간 사람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에 수도원운동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가난의 삶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성장을 향해 발버둥 치며, 내적으로는 세력 다툼을 통해 부와 명예, 권력을 축적해 가는 한국교회는 수도원운동이 전해주는 가난의 삶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도원운동이 보여주듯이 한국교회가 복음서에 나타난 우리 주님의 가난과 청빈의 삶을 실천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때, 한국교회는 그 회복의 물꼬를 트게 될 것이다.

존 카시안

어거스틴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서방교회 영성의 창시자 가운데 하나로 존경 받는 존 카시안(John Cassian, 약 365-435) 은 쇠락해가는 로마를 지켜보며 사회적 불안으로 심려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막의 교부들의 영성을 신앙적인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모두 능통했던 카시안은 15여 년 동안 동방의 이집트를 비롯한 사막의 수도사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기독교영성사에서 카시안의 결정적인 공헌은 그가 사막에서 배운 동방교회의 영성전통을 서방교회에 전해준 데에 있다. 카시안이 전한 동방의 수도원운동은 쇠락해 가는 사회에 대한 '기독교적인 대안'이었다. 하지만 카시안은 단순한 전수자가 아니었다. 그가 일관되게 유지한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는 사막의 영성을 자신만의 체계로 발전시켜 이후 서방교회의 영성에 커다란 토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카시안은 서방교회의 수도원운동의 창시자가 되었지만, 그가 보다 관심을 가진 것은 제도로서의 수도원운동보다 수도원운동이 간직하고 있는 영성적인 삶의 태도였다. 카시안은 이집트 사막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한 농장의 일꾼이 어떤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낸다. 이 귀신들린 사람은 유명한 수도사 요한이 아무리 노력해도 치유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수도사 요한은 도대체 어떻게 평범한 일꾼이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여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이 일꾼은 결혼을 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일꾼은 매일 하루 일과 전후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십일조를 바치고, 또 자기의 소가 다른 사람의 밭을 망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는 사람이었다. 수도사 요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덕목으로는 귀신을 쫓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숨은 어떤 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질문한다. 마침내 그가 발견한 것은 이 일꾼이 원래 수도사가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그 길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지금은 사람들이 모르게 아내를 여동생처럼 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보편적으로 이해되고 있던 결혼과 성에 대한 금욕적인 태도(continence)가 영성생활과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일꾼의 경건성이 세상 속에서 발휘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이 일꾼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가 행하는 덕목들은 바로 수도사의 것이다. 카시안은 제도적인 수도원운동보다는 사막의 교부들이 가르친 대로 하나님 안에만 거하는 삶의 자세를 일관되게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성적 삶의 자세이지, 그것이 수도원 안이든 세상 속에서든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카시안의 이러한 정신은 후에 논의되는 중세의 프란체스코와 같은 탁발수도사(mendicant orders)들로 이어지게 된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의 사역과 세상과 분리된 수도원정신의 조화를 이루어간 사람들이다. 이러한 조화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수도원운동이 추구하는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삶의 정신'을 본받아 살도록 도전하며, 수도원운동은 이러한 정신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영적인 원천으로 그 역할을 수행한다. 성장과 외형주의에 사로잡힌 한국교회를 향해 수도원운동은 이러한 영적인 회복을 촉구하는 영적 보고가 될 수 있다.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마지막으로 살펴볼 중세의 프란체스코(Francis of Assisi 약 1181-1226)는 그 가르침이나 저서 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성인이다. 프란체스코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영성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삶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1181년(혹은 1182년) 이탈리아 아씨시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의류상을 하던 아버지를 통해 어린 시절 부유한 삶을 영위하였다. 세속적인 성공을 꿈꾸며 평범한 삶의 길을 가고 있던 프란체스코는 그의 청년기에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삶으로 전적으로 회심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게 된다. 그의 나이 25세경인 약 1206년 프란체스코는 물질주의로 상징되고 있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복음서의 명령(마태복음 10:7-10)에 감동하여 걸식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후 그가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1226년까지 프란체스코는 복음서에 나타난 가난과 겸손, 평화와 화해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프란체스코는 마음의 변화를 강조한 영성가였다. 그가 20대 초반 회심의 과정 가운데 경험한 한 사건 또한 이 마음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젊은 시절 프란체스코는 당시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병환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프란체스코는 한 나병환자를 만나 자비를 베풀게 되고, 그 일이 있은 즉시 마음의 비통함이 달콤함으로 변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의 의미를 프란체스코는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오는 기쁨인 것이다.
프란체스코는 후에 남긴 글 "진실하고 완전한 기쁨"(True and Perfect Joy)에서 이것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 글에서 프란체스코는 먼저 진정한 기쁨이 아닌 것들을 몇 가지 나열한다. 파리 대학의 대학자들이 프란체스코회에 가입한다거나, 모든 감독과 대주교들, 영국과 프랑스의 왕들까지 프란체스코회에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진정한 기쁨이 아니라고 프란체스코는 말한다. 심지어는 프란체스코의 형제들이 전도를 나가 모든 불신자들을 믿음으로 이끌어 온다고 하더라도 진실하고 완전한 기쁨은 여기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프란체스코는 진실한 기쁨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프란체스코가 어느 겨울 밤 전도를 마치고 먼 길에서 돌아오게 되었다. 겨울의 늦은 밤이라 날씨는 춥고, 손과 발은 진흙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몸의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프란체스코회의 문을 두드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다른 묶을 곳을 찾아보라는 한 형제의 싸늘한 답변뿐이었다. 자신을 프란체스코라고 밝히고 여러 번 사정함에도 불구하고, 문 안의 형제는 계속해서 프란체스코를 타박하며 들여보내기를 거절할 뿐이었다. 이 부분에서 비로소 프란체스코는 완전한 기쁨에 대해서 말한다. "만일 내가 인내를 가지고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면, 진정한 기쁨, 또한 참된 미덕과 영혼의 구원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프란체스코가 겪은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세운 공동체의 형제에게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는 프란체스코는 화를 내어야 마땅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삶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하며, 외부의 상황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은 사람이다. 이 겸손을 가진 사람만이 삶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진정한 기쁨을 소유하게 된다. 프란체스코의 영성은 가난과 평화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의 삶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달콤함이 넘치게 된다. 그것은 겸손한 마음이 프란체스코가 강조하듯이 모든 소유와 집착을 넘어서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그 속에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원운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 겸손한 마음은 대형교회로의 성장을 마음의 은밀한 욕망으로 숨기고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중요한 영적인 덕목이다.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는 성인들은 새로운 기독교인의 삶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성인들은 그 시대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형태와 실천을 통해 새로운 양식의 기독교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인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성인들의 삶을 단순히 모방하기 보다는 그들이 씨름했던 것처럼 성인들의 영성이 현재 자신의 삶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씨름하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에 수도원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새로운 기독교인의 삶과 영성의 모습을 드러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의 수도원운동에서 추구하였던 거룩한 가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살아가기, 겸손한 마음의 가치가 드러나는 기독교인의 삶은 수도원운동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 드러내야 할 중요한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이다.

* 참고문헌
Benedicta Ward,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Cistercian Publications, 1984).
Bernard McGinn, Early Christian Mystics: The Divine Vision of
the Spiritual Masters (Crossroad, 2003).
The Foundations of Mysticism: Origins to the Fifth Century (Crossroad, 1991).
Francis of Assisi, "True and Perfect Joy," in Francis of Assisi:
Early Documents (New City Press, 1999).
John Cassian, Conferences (Paulist Press, 1985)
소기범, "프란체스코 다시 생각하기" 기독교사상 2011년 3월호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234 Tenafly Rd. Englewood NJ 07631
Tel: 201-408-4756, 201-655-0199   Email: estheryskim4@gmail.com
Copyright © Protestant Abbey Mission.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

VISIT COUNT: 129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