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의 부친이며 순교자인 김동철목사님의 전기 형식의 글입니다. 글 제목은 사실은 여기 있는 진리와 구원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방황과 상실 그리고 고독과 피습으로 상처받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 여기 하나님이 함께 서 계시다는 -Immanuel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로 차 있는 글입니다.
이글은 김동철목사님이 51세의 나이로 순교하는 날까지의 생애를 더듬고 거기 연관된 한국 현대사를 함께 그 문맥으로 구성한 독특한 전기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전기만이 진정한 역사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이 전기형식의 글은 사실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아프고 비통하였던 간도이민사의 전기적 대본(臺本)이란 사실을 곧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본서의 구도가 김동철목사님 전기이지만 일단 어떤 사건이든지 중요한 데마가 나타나면 거기 대한 부연 설명이 원줄거리에 버금가는 연쇄기법으로 마무리하는 평행구조로 일관하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06년 김동철목사님이 7세였을 때 간도로 이민가셨는데, 그것이 한국인들의 이민 유랑 의 역사 그 첫날의 서장(序章)입니다. 안수길의 북간도가 여기 버금하려면 혈육의 육성이 첨가되어야 합니다.
이 책에는 그런 육성이 생생하고, 거기 더하여 문맥 퍼스펙티브가 정교와 정밀을 더하고 있습니다. 유민(流民)의 간도 한국인 정황을 그렇게 섬서와 정확으로 그리는 데에 놀랍니다. 경제적 상황, 정치적 실태, 김약연의 교육, 공산주의자들의 만행, 경찰과 그들 인원의 통계수자, 캐나다 선교사들의 선교와 제창병원의 실태, 그런 것들을 엄청난 정확성으로 정밀한 통계 자료를 동원하여 써갔는데, 이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지금까지의 자료집에 치밀성을 더한 것 말고도, 그 숨결을 더하여 My Story로 기울게 한 공적으로도 찬탄의 대상이 됩니다. 더구나 그런 서술은 무성(無聲)영화라든가 환등기(幻燈器)와 같이, 요새는 우리 귓가에 낯설어진, 아득한 옛말들이 다시 떠올라, 그날의 역사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여집니다.
더구나 이 책은 간도와 만주의 기독교회에 대한 역사, 역시(亦是) 묘하게 김동철목사님의 일대기와 전부 한폭으로 겹치기 때문에, 해방이전 만주 한국기독교회사 전부가 절묘하게 거기 따라 체계화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조선기독교회라고 해서 본국교회와 선교사들에게서 독립된 교파연합의 자주적 한국독립교회 형성과정이 실제로 김동철목사님에세서 발기된 사실이 처음 공개됨으로써, 제가 쓴 한국기독교회사가 다음 판에는 수정하여야할 중요한 실록이 발견된 셈이어서, 대단한 수확을 얻은 셈입니다. 이런 형태의 사료적 아말감은 다른 관련연구에서도 구조적 보완을 불가피하게 할 것입니다.
이 책의 다음 부분은 만주에서 그 가족 일가의 한국으로의 귀향과 서소문교회의 창립 그리고 6.25사변과 김동철목사님의 납치 순교가 절절히 씌워지고 있습니다. 월남 과정과 서울에서의 피난생활은 저자가 어린 나이에 직접 겪고 본 것으로 마디마디 살을 베는 듯 몸을 베는 듯합니다. 6.25전란을 겪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저자는 눈물로 적어나갔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남았다는 증언은 회고가 아니라 통곡입니다. 이 세대를 향한 절규가 무언가에 걸려 가슴 안에서만 터지고 출혈하는 신음입니다. 기독교도연맹의 악랄한 모습도 어린 가슴에 지우지 못할 상처로 삭여져 있습니다. 연맹 사무실에서 온 사람에게 김동철목사님이 연행될 때 본 뒷모습이 김창길목사님이 본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집에 아무도 없었을 때입니다. 한번 아버지라고 큰 소리 내 불러보기나 했을 것을, 한번 다시 손이나 흔들어 절이나 꾸벅했을 것을! 그는 얼마나 울었을까. 구속되어 잡혀가 소식 없는 김동철목사님을 찾으려, 갈 데 못갈 데를 연일연야 찾아다니신 그 사모님의 수척하고도 여원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겨레가 그 와중에서 잃어버린 우리 정체를 찾으려, 험한 가시밭을 헤매, 눈망울 깊이 패여 방황하는, 그 모습이라 보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현동 민족보위부를 마지막 찾고, 되돌아서 나와, 아버지의 납북 소식을 어린 자식에게 차마 밝히지 못한 그 어머니의 속내를, 세월 지나고서야 안 저자는, 그 때 왜 눈치 채지 못하였을까 하는 자책 때문에, 비수로 가슴을 가르는 듯한 극통을, 인내로 참아낼 길이 없었습니다.
이 글은 부산에 가서 남은 가족들이 미실회에서 정착하고, 그리고 동아일보의 "아오지의 恨"이린 글에서 김동철목사님의 순교사실이 알려진, 그 시점에서 끊깁니다.
순교는 본래 증언(證言)이라는 뜻입니다. 순교자는 신앙의 순결을 지킨 이들입니다. 그렇게 증언하고 가시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한 가지 증언을 듣습니다. 이 책에 나타난 대로, 순교자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크게 들어쓰신다는 증언입니다. 우리는 김동철목사님의 가계 족보에서 그 자녀후손들의 수없는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다들 대단한 인물들이 되었고, 그것은 이미 3대에 잇대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를 때 “다윗의 자손 예수” 라고 합니다. 그 가문(家門)이 좋았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 신앙의 가문들이 많이 빛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김동철목사님의 가문은 장차 몇십대에 걸쳐 계속 빛날 것입니다.
이 글은 소박한 문체로 우리가슴을 적십니다. 이 책은 그 전기적 진실 때문에 저자와 독자와의 상징적 상호관계를 더욱 밀착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공감의 레벨은 그 문향(文香)과 수사(修辭)의 담백성 때문에 훨씬 그 차원이 높아 거간의 통례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들 과거가 지척이지만, 古今의 간격없이 한 몸으로 체감되는 마음의 거점들을 점철(點綴)해서 엮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새 글들 하나하나가 몸 가까이 와 핏줄되어 당깁니다.
이런 글 써서 그 어버이에 대한 사랑과, 그가 살았던 저 머나먼 이국 간도와 만주의 우리 동포들, 그리고 그 교회들의 척박한 나날들, 해방 후 한국의 분단 현실과, 월남하는 행렬과 그 아픔, 그리고 6.25전란과 교회의 수난, 피난 부산의 잊혀지지 아니하는 소란과 임시 안착, 이런 것들이 김동철목사님의 삶과 순교를 표준시각으로 역사를 편성하여- 한편으로는 한국현대사의 줄기에서 소원해지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역사의 신명기(申命記)로, 그리고 다른 한편, 그런 일들을 몸으로 겪은 이들에게는 이 풍요의 오늘과 콘트라스트를 이루는 그 원근법에 다시 한 번 깊이 잠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교회와 사회 그리고 세계교회가 이 저서를 소장하게 된 것은 이래저래 천혜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 우리들 다 감격하여 이 조촐한 기념세레모니로서나마 그 방불함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이 저술로 전기와 역사를 일향(一向) 통괄한 우리 김창길박사님에게, 여러분 만강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