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4호 (Dec. 2013)

개신교 수도원은 가능한가?

11/04/14   김인수

PAM 신학자문위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신학석사)
미국 Univ. of Dubuque Theological Seminary (S.T.M.)
미국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Virginia (Ph. D.)
경력
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한국교회사학회 회장
한국신학교육원 원장 / 현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저서
한국기독교회의 역사", "한국신학사상사"
"일제의 한국교회 박해사", "예수의 양 주기철" 외 다수

- 들어가는 말

로마 제국은 초기 기독교에 심각한 박해를 가했다. 그 첫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십계명의 제1 계명인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와 제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계율에 정면 배치되는 이유였다. 둘째는 병역 의무 거부였다. 군국주의 국가였던 로마제국에서 국민들의 병역 의무는 신성불가침이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징집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전쟁에 나가면 살인을 해야 하는데, 아무 원한이 없는 상대를 죽일 수 없다는 신앙 때문이었다.
이렇게 로마법을 어긴 기독교도들은 십자가형이나, 굶주린 맹수의 먹이가 되는 고난의 세월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러던 중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the Great)가 로마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적군 맥센티우스(Maxentius)와의 최후 결전을 앞둔 전날 밤 꿈을 꾸었다.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 십자가를 보여 주면서 "이것으로 승리하라."라는 신탁을 주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모든 장병들에게 기독교의 신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며 독려하며, 방패와 투구에 십자가 모형을 붙이게 한 후 대승을 거둔다. 대승을 거둔 후 그는 주후 3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하여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합법적 종교로 공포하면서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종막을 고한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로마의 합법적인 종교로 공인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여러 호혜 정책을 폈다. 먼저 십자가형을 폐지하고, 일요일(주일)을 공휴일로 선포하였으며, 교회에 대해 일체의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성직자들에게 병역의무를 면제해 주는 등 여러 정책을 펼쳤다. 황실 비용으로 각처에 성당을 건축하고, 콘스탄틴 자신도 죽기(337년) 직전에 세례를 받음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교회는 물질과 권력을 소유한 기관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는 항상 물질과 권력이 많아지면 세속화하고, 타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교회 역시 그런 전철을 밟아 나갔다.

- 수도원의 기원

교회가 박해를 받는 동안, 주님에 대한 충절의 최고점은 순교였다. 굳은 신앙을 가진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또는 맹수의 굴에서 고귀한 생명을 바쳐 순교함으로 변함없는 주님에 대한 열정을 표했다. 그러나 교회가 자유를 얻은 후부터 순교가 사라졌다. 진정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신자들은 물질과 권력에 침잠되어 세속화되어가는 교회에 희망을 버리게 된다. 그들은 가정을 버리고, 세속과 결별한 후, 혼자 외딴 곳으로 나가 개인기도, 명상, 독경(讀經), 수련에 치중함으로 영적 훈련에 힘을 쏟았다. 이들을 은자(隱者), 수도자(修道者), 수련(修練)자라 일컬었다. 이들은 특히 자기를 쳐 복종 시키는 일에 치중하여 금식과 기도에 힘써,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고, 영적훈련에 치중하면서 자학(自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극단적 금식으로 체력이 급격히 나빠져 생명을 잃기도 하고,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고행(苦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의 표현으로 인식하였다. 안디옥 지방의 수도사 시메온(Simeon)은 높은 기둥을 세워 놓고, 그 위에 올라가 36년 동안 고행을 했다.

- 수도원 생활

이렇게 신실한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들 중 뛰어난 영적 지도자가 생겨났고, 자연히 그 주변에 수도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성자가 거처하는 근처에 암자, 동굴, 움막에서 그를 흠모하며 수도 생활을 이어갔다. 수도자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개인 생활 보다는 수도자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파코미우스(Pachomius)였다. 그는 애급 사람으로 오랜 수도 생활을 하다, 4세기 초, 나일 강변 타베네(Tabene)섬에 수도원을 세우고, 제자들을 집단으로 거처케 하였다. 수도원은 담장을 만들어 세속과 구별하였고, 한 집에 20-40명이 거처케 하였다. 수도원에는 예배당, 도서관, 숙소, 식당, 작업장, 제빵소, 진료소, 창고 등을 갖추고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수도원에는 총수도원장이 있었고, 각 거처에 수석 수도사가 있어 공동생활을 관리하였다. 거처는 연령순으로 하고 일정한 모양의 제복을 착용하였다. 파코미우스가 시작한 수도원 제도를 좀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든 이가 가이사랴의 바실(Basil of Caesarea) 이다.

수도사가 되기 위해 초입생(初入生)은 3년간의 수련 기간을 거쳐야한다. 3년이 지난 후 수도사들의 의견을 모아 정식 수도사가 된다. 일단 수도사가 서원을 하면 수도원을 나갈 수 없고, 죽어 시체가 되어 나가는게 원칙이다. 수도원의 규칙은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식사하고, 작업하고, 침묵하며, 수면에 들어갔다. 지역에 따라 또는 전통에 따라 수도회의 규칙이 약간 달랐지만 대체로 하루 일과는 새벽 1시 반이나 2시에 기상하여 개인기도, 새벽기도회, 아침 기도회, 아침식사, 오전 기도회, 명상, 학습, 정오 기도회, 점심식사, 간단한 수면 후 오후에는 모두 노동을 하였다. 수도사들에게 "노동은 곧 기도"였다. 저녁이 되면 저녁기도회로 모이고, 정식 저녁 식사는 없고, 간단한 차와 과자 정도를 먹고, 야간 기도회 후 저녁 7-8시 경에 취침에 들어갔다. 수면은 누워서 자지 않고, 벽에 머리와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잤다. 따라서 수도사들은 개인 기도와 명상, 공부 외에 단체로 하루 5번 기도회를 가졌다. 음식은 간소했고, 술과 고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수도사들 간의 대화는 세속적인 것은 일체 금지 되었고, 오직 영적 대화만 허용되었다. 서방에서는 6세기 초에 누루지아의 베네딕트(Benedit of Nursia)가 몬테 카시노(Monte Casino)에 수도원을 세우고, 베네딕트 수도원 규칙에 따라 공동생활을 이어 갔다.

- 수도원의 타락

역사에는 역설이 많다. 결혼도, 가정도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고 오직 영적 생활에만 전념하는 최선의 신자들이 모인 곳이 수도원이다. 한데, 세월이 흐르자, 본디 수도원의 모습은 초기의 목적이 변질되면서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갔다. 그 근본적 원인은 수도원의 치부(致富)였다. 다시 말하면 수도원이 부자가 되고 재물이 쌓인 까닭이다. 수도원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수도사들의 삶에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수도사들이 늘어나면서 주요 일과인 노동에 여유가 생겨 노동 현장이 수도원 밖으로까지 연장되었다. 즉 수도원 안에 더 이상 노동할 농토가 부족했으므로 밖으로 나와 수도원 주변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지로 일구었다. 농지는 늘어나는데, 수도사들의 노동력은 제한되어 있어 수도원 주변 농민들에게 소작(小作)을 주기 시작하였다. 수도원 소유의 농지가 확대됨에 따라 소득도 늘어나 수도사들이 쓰고 남는 재력이 축적되어 갔다. 자급자족할 때는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기에 열심히 노동을 했지만,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과 쓸 것이 남아돌자 자연히 수도사들은 나태하게 되고, 수도원의 기강도 그만큼 해이해졌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기본적 본능이 있다. 식욕(食慾)과 성욕(性慾)이다. 식욕은 자기 생존을 위해서, 성욕은 자기 종족 번식을 위해 필요한 불가결의 요인이다. 인간은 배가 부르면 이성을 그리워하고 찾게 되어 있다. 수도사들이라고 성욕이 없을 수 없었다. 배부른 수도사들이 예배와 노동은 등한시하고, 이성을 찾으면서 수도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졌다. 수도사들이 수녀들과 혹은 교구의 처녀, 과부들과 불륜을 자행하면서 사생아가 생겨나는 등 수도원의 신앙적, 도덕적 수준이 땅에 떨어 졌다. 가장 고귀한 신자들이 모여 가장 고상한 신앙공동체를 이룬 수도원이 타락의 온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되었다.
16세기 교회개혁 운동이 일어나면서 마르틴 루터는 성직자들의 성직독신(Celibacy) 제도를 폐기했다. 이제 성직자들이 가정을 갖게 되면서 수도원은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영국의 헨리 8세가 영국교회를 시작하면서 전국의 수도원을 폐쇄한 것은 이런 수도원의 타락이 원인이었다. 수도원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곳인데, 성직자들에게 결혼을 허용함으로 수도사들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수도원의 타락은 수도원의 존재 가치를 저하시켰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탄핵하면서 시작된 개신교회는 그 성격상 수도원의 존재가 어려웠다. 수도사들은 본래 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혼 남성 혹은 여성들이 모여 수도원이나 수녀원을 형성하는데, 개신교회는 결혼을 허용함으로 수도원이 존재 의의가 엷어졌다. 그러나 가톨릭은 여전히 성직독신제도를 고수함으로 수도원이 계속 되고 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도사 혹은 수녀들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많이 위축된 채 유지되고 있다.

- 개신교 수도원은 가능한가?

성직 독신제를 폐지한 개신교에 수도원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 수도원은 독신자들만이 모인 곳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수도원은 기혼자들이 모여 이룰 수는 없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수도원은 반드시 독신자들 만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기혼자들이 모여 수도원을 이룰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개신교 수도원은 세 종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독신자들만의 수도원이다. 이는 가톨릭의 그것과 동일하다. 가족이 없는 독신자들만의 수도원은 2천년 지속되어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에서도 이런 수도원은 가능하다.
둘째는, 자녀들이 없는 부부들만의 수도원이다. 뜻이 맞는 부부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규율에 따라 예배, 기도, 명상, 노동, 전도를 하면서 생활한다면 이는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기혼자는 자녀가 있게 마련이고, 자녀들과 같이 살면서 수도생활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수도생활은 수도사 전원이 일정한 시간표에 따라 엄격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병들거나 사고가 생기면 수도원 규칙에 따라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수도사 한 사람의 생활비는 소액이지만, 가족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들이 한 두 명이라면 몰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다섯 혹은 열 명도 가능하여 한 가족의 생활비가 엄청나게 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 많은 가족들의 생계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아이들이 유치원, 초, 중, 고, 대학에 다닐 때, 이 아이들과 더불어 수도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있는 가족들의 수도원은 불가능하다.
부부들만의 수도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부부의 개념이 강화되면 이런 운동도 한계에 이른다. 수도원에서는 "내 것"이라는 개념이 없고, 모든 것이 공동체 소유이다. 개인 소유의 개념이 생기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그러나 부부가 동시에 살면서 "내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 가능할까? 부부 개신교 수도원은 공동체 전원이 부부의 삶보다는 수도원의 삶이 우선한다는 인식을 철저히 가질 때만이 가능하다.
셋째로 개신교 수도원은 수도사들의 모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영성훈련소로 전환해야 한다. 개신교 독신자는 물론 수도원에 들어와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다. 가정을 가진 성직자, 또는 평신도는 일정한 기간 동안만 수도원에 들어와 영성훈련을 할 수 있다. 그 기간 동안은 수도원 규칙에 따라 생활해야 하고, 규정된 훈련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은 집중 훈련을 통해 침묵과 명상, 기도와 성경공부, 노동 등 수도원의 규율을 성실히 따라야 한다. 이를 통해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눔으로, 내적 삶이 풍요로워지고, 세상에 나가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이런 수도원은 수도사를 위한 수도원이 아니고, 재가(在家) 성도들의 영적 수련장으로 존재 가치가 있다.

- 나오는 말

초기 로마제국의 교회에 대한 박해가 그치자 순교의 피 흘림이 사라졌다. 이에 따라 진정한 신앙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세상과 결별하고 외딴 곳에서 홀로 명상과 기도를 통한 금욕생활을 이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도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수도원이 생겨났다. 그러나 수도원에 부가 쌓이면서 부패하기 시작하여 교회까지 오염시켰다. 부패한 중세 로마교회는 교회개혁이라는 거센 태풍을 맞았다.
성직 독신제를 고수하는 로마 교회의 수도원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성직 독신제를 폐지한 개신교에는 수도원 개념이 사라졌다. 그러나 개신교 수도원의 필요성을 인식한 이들이 수도원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평생을 독신 서약한 수도사 혹은 수녀들의 수가 극히 제한되어 독신 수도원의 숫자는 미미하다. 이에 따라 개신교 수도원운동은 평신도 영성훈련장으로 탈바꿈 하게 된다. 재가(在家) 신자들이 일정기간 수도원에 들어가 정해진 규율에 따라 영성훈련을 받은 후 삶의 현장에 가서 훈련받은 대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영성훈련장으로서의 수도원이다.
개신교 수도원 운동은 말세에 처한 현대인들의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 향락주의(딤후 3:)를 극복하고 복음의 정신에 입각하여 살아갈 수 있는 영적 힘을 제공해 주는 훈련의 장으로 그 존재 의미가 크다 하겠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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