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청계산에 올라왔다. 청계산 매봉은 전망과 산림이 좋은곳이라 북쪽으로는 서울 중심과 남산, 북한산, 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차산과 광나루, 한강 줄기며 동남쪽에는 남한 산성과 천당밑에 분당이라는 곳과 몸을 돌리면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있는 숙소에서는 버스로 15분, 정상까지 1시간 30분정도 걸리는 적당한 등산 코스다. 지방에 갈 스케줄이 없으면 이곳을 찾는다. 여름동안에 스무번 정도는 등산한것 같다. 매봉에서 옥류봉까지 30분이면 갈수있게 등산 실력이 늘어갔다.
오늘은 가을의 중턱에 올라오니 모든게 새롭다. 여러종류들의 나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모습으로 자기만의 특별한 색채를 자랑하듯이 아름다움을 내보인다. 온 산이 단풍으로 새옷을 갈아입었다. 올라오는 오솔길에 몇개의 밤송이가 떨어져 뒹군다. 그중에 두 송이가 빨간 밤알이 있어 가방에 주워 넣으면서 알밤 굽던 옛 생각을 해본다. 제법 낙옆이 쌓여있는 곳도 있고 쓸쓸히 바람에 날리어 뒹구는 낙옆들은 나이 60이 넘어 28년만에 조국을 방문한 나그네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나의 조국의 가을 하늘은 참 아름답다. 하얗고 맑은 구름,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 누런 들녘엔 잠자리 날고 오색 찬란한 단풍이며 다람쥐와 들쥐까지 풍성한 가을, 그래서 옛부터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나보다.
28년전 김포 국제공항으로 출국한 내가 설레이는 가슴으로 인천 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인천 공항은 세계적으로 제일 좋은 공항이라는 소문대로 깨끗하고 간편하며 넓기도 하다. 공항만 변한것이 아니라 영종도 다리부터 시작하여 모든 시야가 새롭게 많이도 변했다. 아니, 변한게 아니라 옛날을 생각하면 천지가 개벽했다고나 해야할까. 청계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파트가 이렇게도 많을 줄이야. 옛날에 내가 다니던 말죽거리가 빌딩숲으로 변했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도시 서초구라는 구호가 여기저기 보이며 깨끗하고 쾌적하기도 하다. 참 나의 조국은 대단한 나라다. 미국에서 볼때는 정치는 항상 불안하고 북한은 호시탐탐 남침하며 좌파들은 연일 데모만하는 불안한 나라로 생각했던것이 잘못 생각한것 같다. 빠른 성장을 하다보니 좀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경제 성장만큼은 누가 보아도 성장 일변도다. 어떤 무역학자의 "앞으로는 무역으로 세계는 하나가 될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나라의 무역은 활발하다. 우리 조국이 이렇게 급 성장 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28년전 아무것도 모르고 용기만 가지고 태평양을 건너 뉴욕에 건너가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부모님과 우리 7남매가 뉴욕, 뉴저지에서 정착하여 살면서 나는 뉴저지 장로교회의 장로가 되고 우리 가족은 3명의 안수집사와 3명의 권사로 모든 가족들이 신앙속에 사는데 그 가족이 모두 모이면 70여명은 된다. 사람들이 말하길 요셉이 따로 없다고 한다. 뉴욕 영사관에서 한국비자를 받으며 옛날 미국비자를 받으며 올때 생각이나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것이 하나도 없다.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나도 축복이지만 조국도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개신교 성장과 경제성장은 같이 볼수 있다. 개신교의 장점은 달란트 비유처럼 5달란트를 10달란트로 만드는 부지런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21절 -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올해는 장마가 일찍시작하고 늦게까지 갔다. 어쩌면 이렇게도 비가 많이 오는지 산사태도 많이나고 강남 일대가 물에 잠기고 이렇게 많은 홍수도 처음인것 같다. 비가 그치면 우리 부부는 청계산에 올라간다. 하루는 아내가 말한다. 이렇게 운동했으니 다리가 얼마나 좋아졌나 진찰좀 하면 안되느냐고. "왜 안되겠어. 내가 알아볼께."
그날 저녁 부천에 있는 사촌에게 문의했다. "네 형수가 다리 진찰받고 싶다니 알아봐줄래?" 했더니 자기가 수술한 부천 연세 사랑병원의 의술이 좋고 경력도 많으니 부천으로 오라고 하며 병원 약속을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사촌과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매우 심각한 이야기를 한다. 이런 다리를 가지고 어떻게 그동안 다녔냐며 X-ray를 보여주는데 연골은 하나도 없고 위쪽뼈가 아래쪽으로 자라고 있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통증이 심해 걸을 수도 없을거라고 한다. 양쪽 다리가 똑같아서 같이 수술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수술비가 만만치 않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마음이 착찹하다.
다시 인터넷에 조회하며 분당에 있는 서울 나우병원에 2차 검진을 받았다. 받아보니 결과는 똑같다. 의사들의 말로는 미국보다 서울이 인공관절은 값도 저렴하고 한국사람 관절에 알맞게 개조하여 미국것과는 좀 다르다며 수입은 죤슨엔죤슨에서 하지만 한국 여성에 알맞게 맞추기 때문에 서울에서 꼭 수술하라고 조언해준다. 의사들 말로는 지금 수술하면 10월 말에 미국 들어가는데 지장없다며 강권한다. 시간은 되고 수술비는 어떡할지 걱정이다. 집에 돌아와 다음날 비도 안오니 예전과 같이 청계산에 등산을 갔다. 그런데 조금 올라가던 아내의 얼굴이 하얘지며 도저히 통증이 심해 못올라 가겠다고 주저앉는다. 참 난감하네. 마음에 병이라더니… 아니, 며칠전만해도 나보다 먼저 올라가던 사람이 꾀병인가? 얼굴을 바라보니 아닌것 같고. 할 수없이 가지고 온 것 중간에서 다 먹고 어떡하면 좋을지 무거운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주여.. 주여.. 주님만 찾는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우선 보험 공단에 물어볼 생각으로 인터넷을 열어보니 모든게 새로와서 잘 모르겠다. 사촌 여동생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며 보험 공단에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제는 여행은 생각도 못하고 아내 무릎 관절 수술문제로 고민 뿐이다. 3일후 연락이 왔다. 보험에서 가능하다며 부천에 있는 보험공단으로 오라고 한다.
다음날 보험공단에 방문해보니 거소증을 달라고 한다. 어. 이렇게 거소증이 필요할 줄이야. 제출하니 날짜가 며칠 모자르니 일주일 후에 다시오면 보험가입이 가능하다 한다. 이제 보험 문제는 해결되었고 병원에 방문해서 의사 선생님과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9월9일 오른쪽 수술하고 9월 16일 왼쪽 수술하고. 10월 3일 4주만에 퇴원하기로 상담하는데 아내가 의사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수술하면 다리가 곧게 정상으로 되냐고. 선생님의 답은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준다고 약속한다. 글쎄.. 나는 모르겠다. 1차 수술하고 일주일 후 2차 수술을 했는데 정말 양쪽다리가 반듯하게 일자가 되었다. 그날은 내가 밤새워 간병하는 날이어서 새벽기도는 옆에 있는 교회 새벽기도를 갔다. 기도중에 얼마나 감사한지 수술도 잘되고 아내 다리도 일자로 곧게 된것을 보며 참 고마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내가 자주 다리를 만지며 "내 다리 곧게 할수 없나.. 굳어진 내다리 필수없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옷을 입어도 보기싫다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이번 서울여행에서도 나에게 물어본다. "아빠, 서울가면 내 다리 펴줄 수 있는 곳 좀 알아봐주세요?" "응. 알았어. 알아볼께." 내 속으로는 '그다리는 장모님이 업어서 키워 그런거야. 막내였으니 얼마나 업어줬으면 다리가 안다리가 되었겠어. 왜 나보고 그래.' 속으로 불평했다. 전에도 했고 그날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김권사의 불평을 들어주신거다. 생각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한나의 중얼거리는 말소리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내의 불평을 들어주신거다. 평생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남편도 못했는데 하나님은 다리의 통증도 없게 하시고 아름다운 다리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남의 교회에 가서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나왔다. 병실에 오니 아내가 자기 다리를 보며 "내 다리 반듯하지?" "그래. 반듯해." 우리둘은 손잡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다섯달 여행계획을 세우게 하시고 다섯달속에 모든 일을 마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속에 우리가 있음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욱더 충성된 종이 되어야 겠다 생각한다. "나의 18번지 고마워유 하나님 아버지.." 아내는 매일매일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의사의 말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회복되어 간다고 했다. 이대로면 10월 말 미국가는데는 아무지장 없겠다며 자신도 다른 환자보다 더 신경썼다고 한다. 30일날 퇴원하고 4주 요양하며 집에서 물리치료 받으면 된다고 한다. 이제 바지를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아내는 매일매일 감사드린다.
어느 날 김창길 목사님께로부터 전화와 E-mail이 왔다. 28년만의 조국 방문 여행기 부탁과 모새골을 탐방하고 오라고 하신다. 못한다 하니 막무가내시다. 전화를 끊고 모새골을 인터넷에 알아보니 양평군 강상면에 있다. 버스길로는 아침일찍 출발하면 저녁에 돌아올것 같다. 언제 하루 시간 내야지 생각했다. '좀 쉬게 하시면 아니되나.. 언제 여행기를 쓰냐고.. 아내도 아픈데.. 내가 장사꾼이지 글쓰는 사람인가?' 불평이 앞선다. 목사님과 나는 참 너무나 좋은 관계다. 신앙도 모르는 나에게 세례도 주시고 안수를 주시며 기름부어 장로까지 되게 하여주신 신앙의 멘토다. 내 이민생활에 목사님은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즐거울 때나 아플 때나 함께하여 주시며 많은 기도로 우리 가족을 지켜주신 분이다. 목사님이 없었다면 지금 나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목사님 같으신 분을 나에게 보내주신 것도 주님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신앙생활에 잊지 못할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여러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정시화 권사님은 목사님처럼 못 잊을 분이다. 내 가슴이 아프고 메어질때 어쩌면그리도 권사님의 가슴이 따뜻하고 편안한지 한번씩 안아주시며 등 두드려 주실때마다 한 없는 원망과 세상 짐이 봄눈처럼 서서히 녹아 내리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다. 우리들은 할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여러사람을 통하여 은혜를 주신다. 반갑고 즐거운 고국 방문속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 아픈 지난날을 이야기 해야 하기에 때로는 만남이 주저될 때도 있다. 이렇게 아픈 가슴을 주신것도 교만하지 말라, 자만하지 말라, 겸손히 살라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매일매일 시간은 지나가고 목사님 숙제만 남는다. 드디어 모새골에 가기로 작정하고 버스는 안되겠고 부천에 사는 사촌을 부르기로 했다. 여동생에게 아내 간병을 부탁하고 남동생은 나와 모새골에 가자고 부탁하니 11시쯤 되어서 강남에 왔다. 네비게이션에 강남을 맞추고 양평지나 다섯개의 굴을 지나 모새골에 도착하니 참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파른 야산 언덕에 한 4000평 정도 될것 같다. 아래쪽에는 쉼터가 있고 위쪽에서 영성 교육센터가 있는데 잘 지어진 건물들이다. 사촌이 물어본다. "형, 여기 왜 왔어?" "응. 우리 목사님이 가보래서. 이렇게 지으려면 얼마나 들까?" 동생이 말한다. "땅값까지 30억은 들거야." 큰 재산이네.. 하며 관리하시는 분한테 투어좀 하자 하니 좀 망설이신다. 이곳은 예약하고 방문하는 곳이라 한다. 제가 사실은 뉴욕에서 여행왔다가 우리 목사님이 이곳을 방문하고 오라해서 왔노라 하니 그제서야 들어가라 승락하신다. 5분정도 올라가니 맨 마지막에 채플이 있는데 참 아름답다.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고 옆쪽에는 방문자실이고 또 영성 교육센터가 있다. 아래에 새로지은 건물들은 손님들의 숙소인것 같다. 참 좋은 곳이다 생각하며 논길따라 밭길따라 내려오며 우리 목사님 참 못말려.. 차도 없는줄 아시면서 이곳은 왜 보라하시나 하며 팔당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늘도 O다리가 I 다리가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바지입고 운동하는 아내를 보며 기쁜마음으로 운동을 도와주며 생각한다. 내가 조국 방문을 생각한 이전부터 하나님은 아내 다리를 고쳐주시려고 계획하시고 좋은 병원, 훌륭한 의사까지 예비하시고 수술까지 차질없이 진행하게 하시고 여행 계획을 축소하여 남은 돈으로 수술비를 충족케 하여주신 하나님. 우리 김권사 사랑하시어 새 다리, 건강한 다리, 통증없는 예쁜 다리 주시려고 했구나. 고마우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하나님, 내가 부족하여 물 가로 지나가더라도 실족치 않게 하시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도 머리 끝하나 상치않게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나의 삶은 항상 평강이 넘친다. 그래도 좀 서운해서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여기와서 서울 아산병원에 한달 (김권사 눈이 안좋아 한달 치료) 장마 한달, 아내 다리 수술때문에 두달 보내고 나의 여행은 한달로 만족해야하나요? 가고싶은데도 많은데…" 주님은 말씀하신다. "다음에 시간이 또 있잖니?" "네. 알겠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갈 날이 열흘 남았다.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암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늘 따뜻하게 품어주시며 제비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듯이 항상 풍족하게 하시는 주님. 앞으로의 나의 삶이, 주님의 복음이 필요한곳에 배움이 없는곳에 배고품이 있는 곳에 쓰임받게 하시어서 후회없는 삶 주님 사랑받는 삶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