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수도원 활동(3) 엘리사의 공동체 수도원 활동
11/19/14
하홍표

구약에 나타나는 수도원 활동은 개인적 수도원 활동과 집단 공동체 수도원 생활로 구분될 수 있다. 개인적 수도원 활동의 대표자는 호렙산에서의 엘리야였다면, 공동체를 형성하여 집단 수도원 활동을 전개하는 모습은 엘리사를 통해 보게 된다.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이들의 활동을 연속선상에서 고찰할 때 구약에서의 수도원 활동의 성장과 다양성을 감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 훈련 받았지만 그의 사역에 있어서는 스승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비호아래 이스라엘 전역으로 확산된 바알 종교에 맞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만천하에 증거하는데 쓰임 받은 선지자였다. 엘리야의 영성은 종교다원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종교 앞에 홀로 섰지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는 갈멜산의 기적을 체험하였다. 참 하나님은 천둥과 번개의 신인 바알이 아니라 그 바람과 천둥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임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확고히 고백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왕상 18:39).
갈멜산 사건 이후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개인적 수도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비전 세 가지를 받게 된다(왕상19: 15-16). 세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엘리사라는 제자를 세우는 것이었고(왕상19: 16하; 19-21), 나머지 두 가지는 정치적인 혁명으로, 하나는 다메섹의 하사엘로 하여금 아람의 왕이 되게 하는 것과(왕상19: 15),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이방종교로 병들게 만들었던 오므리 왕가와 그 지지자들을 일소하는 일이었다(왕상19: 16-17).
이 비전을 호렙산에서 받을 때 엘리야는 진정 자신만이 남았다고 생각하였다(왕상19: 14). 그러나 한 가지 본문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신실한 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이스라엘의 칠천 명"을 남겨 두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엘리야의 활동을 계속 추적해 보지만 엘리야 자신이 그 혁명에 가담하기 보다 오히려 그의 제자 엘리사가 그 역할을 맡아 수행하게 됨을 본다(왕하9: 1-13).
그러나 엘리사의 본격적인 활동은 그의 스승으로부터 기름을 부은 받은 후에 바로 시작되지 않고, 엘리야가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인 열왕기하 2장이 시작될 때쯤에 가서야 부각되기 시작한다(왕하2:1). 위대한 스승의 활동이 중단되는 시점에서 그의 제자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사가 예언자로 기름 부은 받은 후, 그의 스승 엘리야가 열왕기상 19장 이후부터 열왕기하 2장까지 두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진행시켜 나갈 때 엘리사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엘리사는 스승의 환송을 위한 특사로만 등장하는가? 아니면 이 땅에서 하늘로 불림을 받는 순간 스승의 영성을 갑절로 받기를 원하는(왕하2: 9) 이기적인 제자로만 부각시키기 위해 그 동안 숨겨 왔단 말인가?
엘리사를 소개하는 왕하2: 1은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로 시작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더불어'라는 단어이다. 엘리사의 영성은 사실 그의 스승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급성장하는 면도 보이지만 '더불어'라는 단어는 그런 측면보다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함으로서 이루어진 영성임을 알려준다. 열왕기하 2장 이후에 등장하는 많은 선지자의 생도들의 모습을 본다. 이 두 사람은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선지자를 위한 수도원을 세우고 신앙과 학문이 구비된 수많은 이스라엘의 차세대 지도자들을 길러낼 초석을 다졌을 것이다(왕하 2:3, 5; 4:38).
이어서 엘리야를 이어 영적인 지도자가 된 엘리사가 지도력과 영적 권위를 생도들로부터 인정받게 되는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된다(왕하2: 7-18).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의 선지자 직분을 계승한 엘리사는 엘리야와 함께 건넜던 요단강을 다시 건너온다. 이 광경을 지켜본 생도들은 엘리야의 영적 권위가 엘리사에게 계승된 것을 인정하고 그의 앞에 엎드렸다(왕하2: 15). 문제는 무릎을 꿇었던 제자들이 엘리야를 찾아보겠다고 요청하는 사건에서 일어난다. 그들의 생각은 혹시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다가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뜨렸을지 모른다는 이유였다(왕하2: 16). 자신들의 스승의 시체를 찾아 마지막 경의를 표하기를 원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되는 강청에 엘리사는 마지못해 허락하게 된다(왕하2: 17). 이는 새로운 영적 지도자를 받아 들이긴 했지만 아직도 엘리사에 대한 지도력을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역력히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십 명쯤 해당되는 생도들은 삼일 동안 엘리야의 시체를 찾아 다니게 된다. 그러나 헛수고를 경험한 뒤에 그들의 스승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엘리사는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제자들의 거듭되는 요청대로 행하게 하여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한다. 그리고 그는 돌아온 생도들에게 꾸지람보다 "내가 찾으러 가지 말라"(왕하2: 18)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며 실수를 감싸 안으며 그들의 실수를 통해 자신의 스승으로 물려받은 영적 권위를 세우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이 사건 이후 계속해서 엘리사가 일으키는 기적들을 연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열왕기하 3-8장). 일련의 연속적인 기적들의 소개는 엘리사로 하여금 그의 스승 못지 않는 영적 권위로 이스라엘의 부흥을 일으킬 선지자임을 입증하며, 공동체의 생도들을 단합하고 하나되어 그의 스승 엘리야에게 부여한 오므리 왕조의 멸망을 주도할 준비를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한 가지 새로운 궁금증이 발생한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엘리사를 지목하였을까? 이 질문은 엘리야 이후 이스라엘 역사가 필요로 하는 영성이 무엇인가를 암시한다. 이에 대한 답은 엘리사를 구심점으로 단합된 예언자의 집단 수도원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영성이 등장하게 된다.
사무엘서나 열왕기에는 '선지자의 무리'( , 삼상 10:5; 19:20; 왕상 20:35) 또는 '선지자의 생도'(2:5,7,15; 4:1,38; 5:22; 6:1; 9:1) 란 말이 종종 나온다. 이들은 영적으로 지극히 암울했던 시기에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회복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선지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수도원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엘리사 이후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런 집단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여 더욱 발전되고 제도화 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왕하 2:3, 5, 7에서 선지자의 제자들이 언급되며 그들은 각 지역마다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공동체의 최대(소) 인원이 50여명 정도 된다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큰 공동체를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왕하2: 7). 특히 4: 1에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선지자 생도들과 그들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엘리사는 많은 공동체들을 일정기간 순회하며 생도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동식사를 만들어 먹는 생활을 했던 것 같다(왕하4: 38).
생도들의 수가 늘어났는지 아니면 생도들의 가족들로 인해 공동체의 거주지가 모자라게 되자(왕하6: 1), 선지자 생도들이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다가 도끼를 빠뜨리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던져 그 도끼를 건져 올리는 기적을 소개한다. 분명 엘리사는 선지자 생도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나아만 장군이 나병을 치유하고 아람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엘리사의 여종 게하시가 엘리사 몰래 나아만에게 선물을 요청할 때에도 에브라임 산지로부터 온 선지자 생도 두 사람을 핑계된다(왕하5: 22). 종합해보면, 이스라엘의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엘리사의 생도들은 적은 수에서(2명) 상당한 수(50명)가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수도원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엘리사는 신앙으로 그 공동체들을 가르쳤을 것이고 바로 이 공동체들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왕상19: 18)을 형성하는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북 왕국에서 바알에 대항하여 종교적, 정치적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은 사무엘 이후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예언자 집단들이었음 확인하게 된다. 이들의 구성원들은 가혹한 채권법에 희생된 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왕하 4:1). 그리고 이들을 포함한 예언자 집단은 때때로 극심한 빈곤에 처하기도 했다(왕하 4:38; 6:1-7).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이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은 확실히 생계를 유지하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 이들 집단은 오므리 왕조와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대결과 아무런 관련 없는 활동들을 수행한다. 엘리사의 초기 사역들은 주로 기적을 행하는 자로, 치료 자로 활동하며 그의 명성은 결국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시리아까지 알려지게 된다(왕하3장).
그러나 점차 이들 선지자 공동체와 오므리 왕조와의 갈등은 절대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정치적인 원인과 또 하나는 바알을 숭배하는 혼합주의적 왕실 종교정책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폭력적인 경향을 보이던 오므리 왕조는 결국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사건(왕상21: 1-20)을 저지르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언자들의 저항 운동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오므리 왕조에 저항하는 다른 그룹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레갑 족속과 같은 보수적인 평민 신앙집단(왕하10: 15-17:23)과 예후를 중심으로 하는 군부조직의 일부와(왕하9: 1-13) 연합을 형성하게 된다. 일종의 반란이라기 보다 기존의 정치적 군사적 실력자를 지원함으로 이 저항 운동을 엘리사가 주도하게 된다(왕하9: 1-10:27). 요람 왕이 부상을 입어 권력공백을 이용하여 자기 제자 중 한 사람을 요단 동편 군대에 보내 군사령관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런 종교적인 합법성의 후원을 받은 예후는 정치혁명을 시작 하게 된다. 그 생도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은 예후로 하여금 혁명의 불길을 당기기에 충분하였고, 특히 예언자 집단의 배후의 지지는 예후로 하여금 무리들이 나팔을 울리며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기에 이른다(왕하9: 13).
이세벨을 죽이며(왕하 9:30-35), 사마리아의 오므리 왕조에 속한 식구들을 몰살시키고(왕하 10:1-9), 마침내 바알 신전을 파괴하고 그곳의 제사장들과 추종자들을 죽이면서(왕하10: 18-27) 이스라엘의 역사는 새로운 장을 열어가게 된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구약의 수도원 활동은 단순한 신비적인 명상이나 개인적인 수도를 뛰어넘어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화 시키는 과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엘리사를 중심으로 모여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여호와가 역사의 무대에서 활동하고 그분의 계획에 이들을 참여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인식한 사람들이었다.
엘리야는 주로 혼자 그 사역을 감당하며 불모지와 같은 이스라엘의 신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면, 그의 제자 엘리사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리는 걸림돌들을 치우고 이스라엘 신앙이 굳건히 세워지도록 하는 일에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그 일에 참여하게 된다.
주전 9세기 엘리사를 중심으로 한 집단 수도원 예언자 공동체는 절대권력과 결탁된 이교도 제의를 막는 강력한 방어에 앞장 섰고, 이스라엘의 종교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후 이교 제의의 종교적 문화적 침투에 맞서는 선지자들에 의해 이 정신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비록 엘리야와 엘리사를 중심으로 한 주전9세기의 예언자적 공동체는 개별적인 탈선 사례들을 지적하고 개개인들, 특히 왕에게 재앙을 선포하는 제한적인 면도 보이지만, 이들의 공적은 이후 주전8세기의 심판예언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게 되는 기틀을 마련해 주게 된다. 주전9세기 예언자 집단의 한계를 뛰어넘은 주전8세기의 예언자들(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은 사회와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예언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고, 국가 전체의 제의적이고 정치적인 제도들과 선택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엘리사를 중심으로 한 예언자 집단은 공동체 수도원 활동을 통해 상호간에 의지하고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한 예언활동을 수행해 나갔다. 그들은 기존의 사회질서의 파괴를 초래하더라도 정치적, 종교적 체제의 변혁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왕상19: 15-17) 도모하였고, 이스라엘의 전통적 사회와 종교적 가치 체계를 회복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