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및 영성공동체탐방(4)-떼제공동체
11/10/14
김에스더

프린스턴 신학교 목회학 석사
예일대학교 신학부 신학 석사
드루대학교 신학부 목회학 박사
미국장로교 (PCUSA) Palisades 노회 소속목사
개신교수도원수도회 제2대 수도원장
미국에 사시는 연합감리교 목사님은 2년째 대학다니는 따님과 함께 여름방학 동안에 프랑스의 떼제공동체에 다녀오는데 그곳에 다녀온 후 딸의 신앙과 인생관이 정리되고 달라졌다고 좋아한다. 전세계 수백만명의 젊은이들이 교파와 종단을 초월하여 모여드는데 미리 수개월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서구와 북미의 전통적인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웅장한 교회당은 늙은이들이 겨우 지탱해가는 안타까운 실정인데 떼제는 왜? 어떻게 유럽과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을 끌여들이는지 궁금했다.
프랑스 떼제를 방문하기 전, 2010년 5월 안식년에 서울 화곡동 시장 좁은 골목길 이층에 있는 떼제의 서울지부를 찾아가 보았다. 작은 방 1층은 네분의 수사 (개신교 깔뱅주의자 수사들과 서강대학교 교수 신부 수사들)들이 숙식하는 방들이고 2층은 예배실이었다. 이들은 연로하신 분들인데도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집회 10분 전이었다. 아래층에 예배 준비하는 사람들과 수사들이 찬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층에 올라가 보니 앞에 십자가의 그림이 놓여 있고 몇개의 촛불이 어둠을 조용히 밝혀 주고 있었다. 수사님의 찬양인도에 따라 열댓명이 함께 찬송부르고 묵상하며 성경말씀을 들으며 자유롭게 돌아가며 기도하는 시간, 성찬 그리고 찬양을 하며 기도회를 마친다. 기도회 후 각자 소개하는 시간이 있는데 소속 교회, 예배참석 기간, 직업 같은 것을 짧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설교는 없었고 찬송과 기도와 묵상 중에 임재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조용한 예배였다. 참석자들은 천주교인보다 개신교인들이 더 많았다.
그곳에 십년 넘게 떼제예배에 참석하는 장로교 김현수목사님은 주중은 강화도에 있는 장애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떼제예배를 참석하고 상계동에 있는 교회에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고 한다.
한달 후 6월 26일 드디어 프랑스의 떼제공동체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대전신학대학교 교회와 사회연구원 정원범교수가 주관하는 제2회 영성공동체 순례프로그람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떼제공동체에 막 들어서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섯개의 종이 함께 어우러져 신비한 하모니를 내는 것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마침 식사시간이라 간단한 식사를 받게 되었다. 이미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분들은 그룹성경공부를 마치고 식사에 들어가는데 그 많은 인원들이 모두 자원봉사자가 되어 훈련된 군인들처럼 질서정연하게 자기들의 임무, cooking, 배식, 설것이 등 자기들의 임무를 즐겁게 감당했다.
교회당 정면에는 수많은 촛불들이 불을 밝히고 천장으로부터 내려오는 수십개의 줄들이 땅으로 내려지는 것을 보며 성령감림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상상을 하게 했다. 흰 성의를 입은 칠 팔십명의 수사들이 교회당에 들어 와 정면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찬양인도하는 수사에 따라 찬양이 한참동안 불려진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창설자 로제수사는 "노래를 곁들인 묵상기도를 여럿이 함께 하는 것만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친교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도 마음의 침묵 속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찬미의 노래야말로 기도 중의 기도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도회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번 있고 누구나 참석하는 시간이다. 그밖에 성경공부 일과 등으로 되어 있고 기도회의 내용은 주로 찬양을 많이 부르는데 " 주 예수여 저를 기억해 주소서,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와 같은 간단명료한 것을 주로 반복하므로 시작찬송, 성경봉독, 음송, 침묵, 중보기도, 성찬식, 마무리이다.
떼제공동체가 탄생된지 70년이 되었다. 1940년 8월 20일 로제라는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남부 부르고뉴지방으로 와서 외딴 딴 마을을 발견했는데 바로 그 마을이 떼제이다. 로제수사는 1915년 5월 12일 스위스의 프로방스에서 프랑스 어머니 아멜리마르소슈와 스위스인인 아버지 샤를 슛즈 개혁교회 목사의 9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개혁교회 음악가 가문이었고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로제는 본래 작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 길이 자기의 길이 아닌 것을 깨닫고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스트라스브르대학과 로잔대학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다. 그때 기독학생회 회장을 역임했다. 1940년 떼제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집을 샀고 거기서 핍박당하는 유대인 피난민을 도와 주고 전쟁 후엔 독일 포로를 도와주는 일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