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6호

수도원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01/18/15   김진홍

두레수도원 원장
활빈교회창립 / 두레마을 설립(남양만)
1996년 구리 두레교회창립
2001 계명기독학원 이사장(계명대학교),
수곡두레학원대표(대안학교: 두레자연중·고등학교)
2005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
2011. 11. 동두천두레수도원 설립
연구 및 저술활동 : 새벽을 깨우리로다,
바닥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 /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등 91권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수도원 운동이 꼭 필요한 때이다. 개신교에서는 수도원 운동을 반대하는 분들도 있다. 이는 가톨릭 전통이지 개신교 전통은 아니란 점에서 반대하기도 하고, 수도원 운동이 현실을 도피하는 사고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실을 외면하고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는 현실도피의 소극적 종교가 아니냐는 뜻에서 반대한다.
그리고 수도원 운동의 고행과 금욕적 삶은 복음적이 아니라 이교(異敎)적인 전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같은 주장은 수도원 운동에 대한 오해에서 나오는 반대이다. 어느 종교이든 종교생활에서 수도(修道)와 수행(修行)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종교개혁운동의 첫 깃발을 들었던 말틴 루터 역시 본래는 수도사였다.
2 천년 교회사를 돌이켜 보면 수도원은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에 죽음을 각오하고 교회를 지켰고, 교회가 세속주의에 빠져들때는 회개와 경건으로 교회를 건졌다. 그리고 이단사이비가 득세할 때는 올바른 신앙운동의 기준을 세워주었다. 수도원 운동을 모르는 분들은 기독교를 모르는 분들이다.
수도원운동의 시작은 3세기 이집트에 안토니(AD 251~ 356)로 부터 시작되었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는 마태복음 19장 21절 말씀에서 영감과 도전을 받게 되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청년 안토니는 이 말씀에 그대로 복종하기로 하고 아버지가 물려준 대농장을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와 금식, 노동과 명상에 전념하였다. 그는 "쉬지말고 기도하라"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7절)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기도와 노동에 힘썼다.
그의 명성이 알려져 사람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모여들자, 그는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에 정진하였다. 성 안토니로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이 3세기를 지나면서 사막교부들의 시대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 수행의 생활에 헌신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안토니에서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은 서서히 번져 나가 서방교회에까지 확장되어갔다. 특히 중세교회가 영적으로 쇠퇴하여 교회의 본 모습을 잃어가게 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도원 운동이 평신도들로부터 일어나게 되었다. 베네딕트, 프란시스코, 도미니칸 등이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수도원 운동은 교회사에 뿌리를 내려가게 되었다.
어느 수도원이든 수도원 운영과 생활에 다섯가지 덕목(德目)이 있었다.
1) 청빈(淸貧) 2) 순결(純潔) 3) 순명(順命) 4) 노동(勞動) 5) 거룩한독서(LexioDivina)

이들 덕목은 교회와 교인들에게 꼭 있어야 할 덕목들이 지만 교회가 세속화되고, 타락하여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수도원에서 지켜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사에서 영적 암흑기였던 중세교회를 지켜온 것은 수도원들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도원 운동이 없었더라면 교회는 영적 암흑기를 극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바로 그런 수도원 운동이 한국교회에게 요청되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130년 역사에서 아세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교회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겨레의 명운이 급박한 때에 한국 땅에 들어와 근대화, 항일운동, 반공운동, 민주화운동 등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한국교회 없이는 한국의 현대사를 논 할 수 없는처지이다. 그런데 그런 기여와 성공끝에 최근들어 한국교회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교인수가 처음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이르고 교회가 세인들로부터 비난과 비판을 받게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5 백년전 개혁교회를 일으킨 선배들이 당시의 부패한 케토릭 교회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교회를 세울때에 케토릭 교회의 좋은 점까지 함께 벗어던진 감이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수도원 제도이다. 물론 당대의 수도원들이 케토릭교회 부패의 온상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패한 제도를 극복하려다가 그 제도가 지닌 장점까지 거부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에집트의 성 안토니가 사막 한가운데로 들어가 수도원운동을 시작한 이래 사막의 교부시대를 지나 베네딕트 수도원, 프란시스코 수도원 등을 필두로 하여 부패한 교회를 새롭게하는 일에 크게 쓰임받았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수도원운동의 그런 긍정적인 점들을 살려 개신교 운동에 적합한 수도원 운동이 개혁교회 초기부터 있어 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연 그러지를 못하였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지금 한국 케토릭교회에는 수녀가 만명, 수사가 2천명이다. 이들이 수도원을 지키며 곳곳에서 국민들을 섬기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도 그와 같이 헌신하여 봉사하며 경건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남녀 성도들이 적지않다. 신학교를 나오지 아니하고 목회자의 안수를 받지 않은채로 그냥 수도자로 경건한 삶을 살며 섬기는 삶을 살고져 하는 성도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에는 케토릭같이 제도화가 되어 있지를 못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자매는 어쩔 수 없이 케토릭 수녀원으로 들어간 예까지 있다.

한국 교회는 지난 130년 역사에 한해도 거르지 아니하고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여 왔다. 그러나 약 15년전부터 교회 부흥에 정체 상태에 머물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완연히 줄어드는 추세로 들어서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1996년부터 2005년까지의 종교인 통계에 의하면 그 10년 기간에 케토릭은 74% 성장하였고 불교조차 4% 늘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개신교만 - 1.6% 감소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런 추세를 회복하여 지난 날의 부흥의 기운을 되찾고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파와 교회를 넘어 서서 철저한 회개와 제도의 혁신 그리고 대 국민봉사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여야 한다. 그런 운동 중에 수도원 운동이 한 대안이 되어질 수 있다. 지난 2천년 교회사에서 교회가 병이 들고 세속화되어 질때마다 평신도 운동으로서의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 교회를 쇄신함에 큰 기여를 하여 왔다. 지금 한국교회에 꼭 그런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늦게나마 동두천에 두레 수도원을 시작하였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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