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6호

미주 한인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생각하며

01/18/15   이성현

LA 드림교회 담임목사,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총회장

버지니아 공대에서 학생과 교수 32명을 죽이는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솔직히 제 마음 속에는 어떤 정신 나간 백인이 또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범인이 동양계 중국인이라는 소문을 들으면서도 제 자신은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던 한인 연합감리교회 전국 연합회 총회 진행으로 마음이 바빠 그 사건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기도회에 참석하여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희수 감독님께서 전해주신 메모지를 보는 순간 "아니, 이럴 수가?"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버지니아 공대 살인 사건의 주범이 8살 때 이민 온 한국인 1.5세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TV에 조승희 군이 방송국에 보낸 동영상과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는 더욱 경악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드림교회 집사님 한 분이 고등학교 졸업반에 있는 한인 2세 학생에게 이번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아직은 뭐라 말할 때가 못됩니다. 두 주 후에 말씀드릴께요."
그렇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여러 헛소문들이 미디어를 통해 퍼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 조승희가 이런 끔직한 일을 저질렀을까?'하는 질문에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각자 경험 혹은 분야에 비추어 추측들을 할 수 있겠지만 정확한 답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건의 좀더 정확한 동기와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지나야 하고, 우리 모두는 조승희 군과 그가 처해 있던 환경에 대해 더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런 글을 쓴다고 하는 것 역시 이 사건에 대한 제 생각이요, 추측일 따름 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춰진 그리고 신문에 인쇄된 조승희 군의 사진과 소개된 글을 읽으면서 조승희 군에게 부쳐진 명칭들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인 이민 1.5세, 외톨이, 성격 및 정신 장애자, 살인자 등 입니다.
특별히 그의 평상시 사진들을 보면서 제 정신에 이런 끔직한 살인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그의 모습과 총, 망치, 그리고 칼을 들고 무서운 포즈를 취한 그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 정신 분석학자는 이 사건은 정신 질환을 가진 병자의 정신 착란에 기인한 반 사회적이고 폭력적인 복합 성격 장애성의 범죄라고 했습니다. 병명만 들어도 길고 복잡하며 쉽게 이해가 안 갑니다. 이 병명처럼 조승희 군의 마음은 복잡하고, 긴 세월 외톨이로 지내온,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들 조승희 군을 말이 없는 외톨이(loner)라고 합니다. 집안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었고, 물론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영문학 교수에 의하면, 어느 날 조승희 군이 강의실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썬 글래스를 쓴 채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교수님이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썬 글래스 뒤로 울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말이 없었던 그였지만, 그는 이렇게 속으로 외로움의 아픔 때문에 울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요즘 시대가 우리 아이들을 외롭게 만듭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기 만의 공간에 보이지 않는 사람과 글자로 혹은 영상을 통해 별로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관계를 맺습니다. 아니면 공상의 공간이지만 상당히 리얼한 폭력적인 인터넷 게임 속에 빠져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분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중독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 자동차를 타고 어디를 가면, 아이들은 자동차를 타자마자 i-pod를 꺼내 이어폰을 끼고 각자 음악의 세계(?)로 떠나거나, 게임 보이의 조그마한 스크린에 집중하여 결국은 그곳에 깊이 빠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곁에 사람이 있어도 요즘 아이들은 외톨이가 됩니다.
또한 물질 그리고 경쟁사회가 아이들을 더욱 외롭게 만듭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성공과 성취 위주의 삶은 아이들로 하여금 가지고, 이루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며 살게 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인격 성숙이나 품성 개발 그리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감성(EQ)을 향상시키는 일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조승희 군은 8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온 소위 1.5세입니다. 이민 1세는 자신의 의지로 조국을 떠나 온 어른들을 칭한다면, 2세는 조국 땅이 아닌 이방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5세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부모 혹은 어른의 의지로 그들을 따라 조국을 떠나 이방 땅에 온 사람들입니다.
저 역시 15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온 1.5세 이민자이기에 조승희 군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 역시 두 나라, 두 언어, 두 문화 가운데 혼돈하고 방황했던 때가 있었기에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승희 군과 같은 나이인 8살 때 이민 온 제 남동생은 첫 해 매일 아침이면 배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가기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한 이민 가정의 어머니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어느 날 아이를 야단칠 일이 있었는데 아이가 울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엄마, 내가 왜 말이 없어졌는지 알아? 처음에 미국 와서 아이들이 영어 발음 나쁘다고 자꾸 놀려서 그때부터 되도록이면 말을 안 하려고 했어. 선생님은 다른 애가 먼저 밀어서 나도 밀었는데, 분명히 보았으면서도 내가 먼저 했다고 나만 벌을 주고.."
물론 한인 이민 1.5세가 다 병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혼돈과 아픔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1.5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1.5세하면 아직 무언가 부족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런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한국말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 어느 문화에도 낄 수 없는 그런 세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좀 약은 사람들은 자기가 편한 대로 이쪽 저쪽을 오고 가는 박쥐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해 있는 한인 연합감리교회에서는 일찍이 이민 1.5세 좀더 긍정적인 의미에서 'Trans-Generation,' '1세와 2세를 연결하는 세대'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1세와 2세,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다리의 세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이고, 나의 소명을 깨닫게 될 때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게 됩니다. 특별히 이런 의미에서 이민 1.5세들은 'Trans-Generation'이라는 자아의식과 자기소명을 깨닫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 이 땅으로 인도하신 목적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많은 우리 교회 교우님들이 자녀들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며칠간 행동 조심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아랍계 미국인들이 겪었던 편견과 어려움을 옆에서 보면서 혹시 우리 한인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특별히 LA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15년 전 일어났던 4.29 폭동으로 인한 상처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 그 때 역시 미디어의 잘못된 보도 때문에 인종(한,흑) 문제로 사태가 급변하여 많은 한인들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일찍 문제점들이 시정되고 오히려 미국 사회의 여론이 이 사건은 인종간의 혐오범죄나 테러가 아닌 한 개인적 문제라고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 총회를 마치고 LA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빈슨트라는 이태리계 백인 남자와 버지니아 공대 살인 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첫 마디는 무엇보다도 조승희 군의 부모님이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미국 역사상 교내 살인 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아들의 부모라는 죄의식 속에 살아야 할 그 분들이 안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이아나 베스라는 분이 이번 사건에 대해 글을 쓰면서 조승희 군의 어머니를 이브와 비교했습니다. 이브는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의 어머니이며 동시에 최초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사건에 대해 이브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조승희 군의 어머니도 뭐라고 말씀하겠습니까? 아직은 그저 침묵할 따름입니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추모예배를 드리면서 조승희 군을 위한 추모석까지 33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승희 군의 추모석에 이런 내용의 쪽지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머지 않아 너의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바라며.."
그런가 하면 미국 신문에 이런 덧글을 올린 미국인들도 있습니다. "9.11처럼 또 다른 이민자가 우리 나라의 미국인들을 죽였다. 내가 확신하건대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등록금 지원을 받았을 것이고, 그는 무감각하게 32명의 우리 아이들을 죽였을 것이다." "누구든지 개를 먹는 인간들은 의심해 봐야 한다." 이 사건이 나고 며칠 후 제 딸아이가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데 앉아 있던 백인 남자가 "Please don't shoot me" 하고 빈정대더랍니다.

에릭 폴리라는 목사님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006년 10월 2일, 찰스 로버츠라는 사람이 아미쉬 학교에 들어가 5명의 어린 여학생들을 쏴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미쉬 사람들은 아이들의 죽음에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졌지만 그들 자신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희생당한 한 소년의 할아버지는 "우리는 이 사람의 악함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했습니다. 30여명의 아미쉬 사람들은 그 살인자의 가족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전하기 위해 장례식에 갔었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이 그 때 보여준 성숙한 모습은 많은 미국인들을 감동케 했습니다. 폴리 목사님은 이번 참사에 어떻게 한국인들이 대처하느냐에 따라 한국인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말보다는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어떻게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이번 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어떻게 행동으로 도왔느냐'로 평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관계의 회복을 방해하고 사회의 평화를 깨는데 주역을 하고 있는 총기 소유에 대한 규제는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이곳 LA에서 한인 부부가 부부 싸움을 하다가 아내가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총으로 자살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부 싸움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에 총이 없었다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한인들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총기 소유 규제에 대해 앞장 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번 사건에 대해 각기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듯이, 우리는 다양한 그리고 복합적인 문화와 인종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제는 한 민족, 한 핏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타 인종, 타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움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타 문화와 타 인종의 다리를 놓는 'Trans-Generation'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쁘다'라는 말의 어원이 '나 뿐이다'에서 나왔고, '좋다'라는 말은 '조화롭다'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꿈은 바로 좋은 사회, 좋은 세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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