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의 영성
04/02/15
김영철

들어가며
2013년 한해동안 잠시 목회를 쉬고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며 보낸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느 미국 교회 주일예배를 참석하였을 때 어느 분이 나와서 간증을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의 간증을 참 은혜롭게 들었기에 지금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그분은 50대의 백인 남성입니다.척추 지압병원을 운영하는 카이로 프랙터 의사였고 두 아들과 좋은 아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병원도 날로 번창하였고 모든 것이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될 만큼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을 만나 멧돼지 사냥을 하기 위해 산속길을 지프차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날 따라 짙은 안개가 있어서 운전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차가 도로에서 벗어나 수풀길에 들어서서 차를 후진으로 빼야 했습니다. 차를 빼려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던 중에 타이어와 수풀과의 마찰열 때문에 수풀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차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운전석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던 이분은 다급하게 차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전자시스템이 타버려서 꼼짝없이 차 안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차가 폭발했고 이 백인남성은 전신에 아주 심한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이후 응급후송 헬기가 화상 전문병원으로 이분을 후송하였고 의사들은 얼굴과 시력뿐만 아니라 손가락 7개를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멈추게 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이 성공을 향해서 바삐 달려갈 때 너무 바뻐서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그런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간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 불을 일으키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자신의 영적 각성이 시작되었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 채로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 고통과 장애를 통해서라도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얻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렇다면 이분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친밀함-그것은 관계적 앎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알다'라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여기서 알다는 표현은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알다' 의 의미와는 매우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지식적 앎이 아니라 관계적 앎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알다' 라는 단어를 히브리어 '야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된 예는 창세기 4장 1절의 "아담이 그 아내 이브를 알았다(KJV)"는 표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말을 다시 표현하면 친밀함이란 아는 것(동침하매-개역개정)인데 그것은 마치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알듯이 아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함은 단순한 객관적 지식을 넘어선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앎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함 가운데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요즘 같은 정보시대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나이, 출생, 가족, 직업, 취미, 습관 등에 대해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을 수도 있고 인터넷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오바마 대통령의 출신 배경과 다녔던 학교, 하다 못해 영부인을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지 까지도 최근에 읽은 기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오바마 대통령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면 저는 모른다고 답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바마를 한번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개인적으로 만나본적이 있을지라도 그분과 안부를 물으며 전화 하는 관계가 아니기에 그분을 감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저는 오마바 대통령에 대해서 알 뿐이지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 그분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결론은 오바마와 저는 친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감 가운데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앎과 체험적인 앎을 전제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아는 것이 전제 될 때 우리는 친밀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친밀함의 표현-눈물 , 깨뜨림 그리고 입맞춤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개념이 아닌 그림 언어로 표현해 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함도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그림으로 우리 예수님은 보여주십니다. 그 대표적인 그림이 누가복음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저녁만찬에 초청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 큰 감명을 받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끝난 뒤에 예수님을 저녁 만찬에 초청을 했습니다. 얼핏 보면 그가 예수님을 정말 존경하고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자 저녁만찬에 초대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이런 만찬회에는 몇가지 에티켓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귀한 손님이 오면 입맞춤으로 환영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뺨에 입맞추거나 아니면 특별히 귀한 손님이면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인사할 때 이런 입맞춤을 빼먹는 것은 노골적인 무시였습니다. 그리고 1세기 중동지방의 또 다른 에티켓은 발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식사 전에는 반드시 발을 씻어야 하는데 정말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이 직접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을 시켜서 손님 발을 씻기게 했습니다. 반가운 손님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발씻을 물을 주어야 했습니다.그리고 정말 귀한 손님에게는 머리에 부을 기름도 제공했습니다. 비싸지는 않아도 기름을 제공하면 손님을 귀히 여기며 존경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몬의 집에서 입맞춤의 환영도 발을 씻어주는 과정도 그리고 머리에 부을 기름도 받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초청했지만 그래서 지금 주님과 같은 집에 함께 있지만 주님과는 아무 관계도 가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7장에는 바리새인 시몬과는 분명히 비교가 되는 한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은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창녀라는 의미입니다. 그 창녀는 당연히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의 변화를 받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나를 다 버렸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가르쳐준 예수님을 한번만이라도 가까이서 보고픈 마음으로 그곳에 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창녀가 등장했을 때 여기저기서 수근거림이 있었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너 같은 것이 올 자리가 아니야" "어서 저여인을 끌어내라" 이런 소리가 들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여인은 우리 예수님의 눈을 봤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반기지 않지만 우리 예수님은 그 여인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방울만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곧 눈물이 폭포수가 되어서 예수님의 먼지 묻은 발을 적십니다. 그리고 아무도 닦아주지 않아 먼지가 그대로 있는 주님의 발을 눈물로 닦고 감히 수건도 요청할 수 없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서 수건을 대신하여 우리 예수님의 눈물로 씻긴 발을 닦아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준비해온 자신의 전 재산 향유담은 옥합을 한 두 방울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옥합 전체를 깨서 주님의 발에 부어버리고 몇번이고 입맞추는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친밀함은 사랑함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서 "그가 사랑함이 많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기에 눈물을 흘렸고, 더 많이 사랑하기에 아낌 없이 머리를 풀어 헤치며 여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였기에 더 이상 남겨두지 아니하고 아낌 없이 옥합을 깨뜨렸고 최고로 사랑하기에 수없는 입맞춤을 예수님 발에 할 수 있었습니다.
친밀함의 경험-영적 갱신(Spiritual Renewal)의 유일한 길
이민목회의 최전선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현장 목회자로서 은혜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민현장에서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이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내야 하는 대다수의 이민자들의 척박한 현실을 보면서 목회자로서의 한계를 실감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쁜 이민생활,치열한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최선을 다해 교회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을 호소하는 그들을 볼 때 결국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답은 주님과의 친밀함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영적 갱신의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이고 경험적인 만남이 삶속에서 위기 때마다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많은 이들을 영적 갱신으로 이끌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주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먼지 묻은 발일지라도 끌어안고 사랑의 입맞춤을 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개신교 영성의 핵심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는 것이 주님에 대해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주님 자신을 알 수 있도록 개인적이고 경험적인 영성의 장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학문적 접근뿐만 아니라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영적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영성 훈련프로그램과 전문적인 인력이 개발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느 개교회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개교회가 가능할 지라도 개교회가 중심이 된 프로그램과 사역은 대다수 교회의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교파적인 건전한 기독교 영성 운동의 구심체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곳 미주 이민사회에 있어서 개신교 수도원 운동의 중요한 역할이 이와 같은 점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