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8호

선교지에서 얻어진 경험

07/05/15   정관호

뉴저지연합교회 후원 선교사

     이사야서 40장 28-29절에는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지혜와 능력을 믿는 우리들이 어떠한 어려움과 환경 속에서 처하더라고 항상 도와주시므로 우리에게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저를 선교 할 수 있도록 2004년 제 나이 68살 때 기후 생활환경이 전혀 다른 열악한 Cambodia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선교를 하면서 얻더진 값진 경험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캄보이다는 전 세계 쌀 수출국 3위였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이렇게 잘살던 나라가 1975-1979년 폴폿이 이끄는 크메르 루즈라고 하는 공산 무장단체가 저지른 약 200만 명의 동족을 학살한 사건으로 공산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도시 소개령을 내렸고, 학교 도서관을 폐쇄, 고학력자들은 (안경 쓴 사람, 의사, 남녀를 막론하고 손이 예쁘거나 매끄러운 사람은 고 학력자로 취급) 학살 했습니다.  지금은 의료시설과 생활환경이 열악하여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3 모작을 하던 이 나라가 전쟁으로 인하여 수리관계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지금은 겨우 1모작을 하는 실정입니다.  지금도 캄보디아는 없는 게 너무 많은 나라입니다.  주소가 없으므로 우체국이 없고 당연히 세금도 없는 나라입니다.  농촌에 가면 전기 수도는 물론 화장실도 찾아보기가 힘이 들 정도입니다.  학교에서는 음악 미술시간이 없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입니다.

     저는 선교지를 물색하기 위해서 사전에 남미 파라과이(우르부과 지역), 아프가니스탄 (북부 마자리 샤리프, 쿤두즈 지역), 그리고 캄보디아(수도 프놈펜에서 북쪽 104km 곰뽕 지역)를 답사하였으며. 이중 캄보디아에서 학교를 맡아서 관리해 줄 것을 제의 받아 이를 수락했고 우리교회가 최종적으로 선교사 파송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부족한 제가 선교사역을 한 것은 크게 나누어 학교 사역과 나환자(Hansen's)촌 사역입니다.  처음으로 선교지에 부임했을 때에는 L.A. 에 있는 OIKOS 선교회가 학교 부지를 매입한 교장실, 교무실, 의무실과 교실3동, 식당 그리고 남여 기숙사 4동, 모두가 단층 콘크리트 건물 9개 동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신학교 (뉴저지 연합교회 후원), 중학교 24개 교실(뉴저지 베다니 교회 후원) 고등학교 24개 교실(뉴저지 초대교회 일부 후원), 병원 (세계 간호사 선교협의회 후원), 신학교 남녀 기숙사 2개동, 선교사 사택(부산 해운대 교회 후원).  이 모두가 2-3층 철근 콩크리트 건물로 지어져 있으며 대학교까지 교육부에 정식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저는 초대 신학교 DEAN , 그 이후로 전체 학교 운영 관리하는 행정처장을 맡아 사역을 하게 됩니다.  또한 장학생 선발후원에 힘써, PhD 과정 1명, 석사학위 1명, 학사과정 7명 (그중 한 분은 LA에서 현재 목회 중) 등을 지원 하였습니다.

     후진국으로 가게 되면 오전 수업만 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학교건물 이외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개선하는 사역을 하게됩니다.  제일 먼저 시작 한 것이 도로공사였습니다.  학교 부지 전체가 논이기 때문에 우기가 되면 걷기가 매우 불편하므로 7번 국도에서 학교, 학교와 학교, 그리고 식당과 기숙사를 흙을 밟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신설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학교 앞 국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낮이나 밤이나 다 볼 수 있도록 두께 40cm 폭 60cm, 높이 8.9m되는 철근 콘크리트 십자가를 세우고 주변에 정원을 꾸미고 서치라이트를 설치를 했습니다.  또한, 약 70 Acre에 학교부지 20 Acre를 제외한 나머지 땅에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탭들과 학생들을 총 동원 해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처음으로 시작을 하여 큰 수확을 걷어 들었습니다. (수확을 마친 후엔 전 세계가 쌀 파 동으로 곡물 가격이 3배 이상 올랐음).  그 이외에도 가로등 32개, 수위실 2개동, 국기게양대, 양어장, 학교 경계선에 콘크리트 기둥 철조망, 발전실 방음벽 공사, 주차장 2곳 설치 등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나환자촌(Hansen's)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1km 떨어진 곳에 캄보디아에서 유일하게 200여 세대가 쓰레기를 뒤져 폐품 수집을 하거나 돌 깨는 일을 하면서 하루 일당도 되지 않는 품삯을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용직 노동자가 필요 할 때에는 저들에게 도움을 주어 최저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실정입니다.  공산 폴폿정권이 들어 설때까지는 불란서 수녀 3사람이 저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LA OIKOS 선교회가 1년에 한번 단기선교를 하면서 들르는 정도라고 합니다.   선교사가 먼저 할 일은 영혼구원 하는 일이기에 일상용품, 생활필수품 등등을 3일 동안 얼굴을 익히기도 할 겸 200세대를 돌면서 나누워 주며 전도했습니다.  그들 중 교회를 출석하는 움막에 사는 가정에는 13채의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나환자촌 내의 교회 증축지원을 하였으며, 필요시 장례비 그리고 구제금 또한 지원하였습니다.  학교에 병원이 개설 될 때까지 다리가 썩어 뼈가 보이는 아이, 손에 화상을 입었는데 바이러스가 들어가 손을 절단해야 하는 아이, 중풍환자, 8개월 된 당료와 고혈압을 동반한 임신 중독중 환자 그 외 감기, 두통, 외상 환자들을 정성으로 간호해서 전원 완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타 지역으로 의료선교를 다니면서 왼쪽 팔이 4개월 동안 골절이 된 부인을 2번의 수술 끝에 접골이 되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선교사역을 하면서 부족한 저에게 얻어진 값진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필요 적절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850m 도로를 만들 때 장비라고는 막대기 6개, 50m 끈 2개, 삼태기 7개, 곡괭이 3개, 삽 3개, 그리고 나환자촌에서 온 노동자 6명이 측량을 해서 측량한대로 똑같이 해냈습니다.  논에다가 기초 공사를 하고 육중한 십자가를 세우는 것, 밤에 벌레가 교실과 기숙사, 도서관과 컴퓨터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로등을 설치해서 어둡기 전에 먼저 불을 밝히는 것, 우기나 건기에도 전천후로 밭농사를 할 수 잇도록 폭 16m 길이 168m에 덤프 트럭 300대분의 흙을 채우고 지하수 물을 올려 7,9m 높이의 취수탑 위에 3톤의 물탱크를 올려놓는 공사를 2사람이 일궈낼 때마다 하나님께서 적절한 지혜를 주셨기에 이런 사역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얻어진 경험을 선교비후원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선교의 필요성입니다.  제 나이 68살에 선교를 떠날 때 우리교회 선교위원회에서 고령이 나이와 선교지에서의 열악한 환경과 기후로 인하여 중도에 포기할 것을 감안해, 6개월 동안은 일절 선교비를 중단하는 것으로 알고 비행기표 1장과 특별헌금 $7,200 (이 금액은 저 혼자 1년 생활비와 교통비 정도 임)을 가지고 캄보디아에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않아 망설이기도 했습니다마는 용기를 내서 가지고온 선교비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매월 본 교회에 선교보고를 했는데 본 교회에서는 그 후 매년 예산을 편성하고 교우들과 특히 여선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 주었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에서 분에 넘치는 선교기금을 보내주어 상기와 같은 많은 선교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게 주심으로 인해서 제가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한 번도 도움을 요청 한 적이 없었으나,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에는 주님께서 분에 넘치는 분량을 여러 사람들과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채워 주셔서 사역을 감당해 낼 수 있었습니다.

     섯째로 얻어진 경험으로는 필요한 돕는 손길을 예비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년 선교사가 선교지에 도착하게 되면 2년 정도 언어 훈련을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만 저로서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으므로 바로 사역을 시작을 했습니다.  손짓 발짓으로 언어 소통은 하였지만 그 고통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Lyshim 교장 (왕립 시아누크 프놈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인재 임)과 Eden이라고 하는 젊은 청년으로부터 캄보디아어 교육, 통역에서부터,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인가 서류의 준비와 제출, 학교 사역과 공사 사역에 필요한 기술과 다른 관련 업무 등등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과, 현지에서 만나 도움을 받은 다른 모든 분들의 손길을 통해서 저의 학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신 주로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항상 좋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2번의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하나는 베트남 국경 밀림지역에서의 교통사고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것이며, 다른 하나는 풍토병으로 치료가 되었지만 지금 현재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때로는 지혜를, 물질을, 돕는 손길을 적절하게 부족함이 없도록 도움을 주신다는 값진 경험을 체험하고 돌아 온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234 Tenafly Rd. Englewood NJ 07631
Tel: 201-408-4756, 201-655-0199   Email: estheryskim4@gmail.com
Copyright © Protestant Abbey Mission.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

VISIT COUNT: 13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