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 Divina 두 번째 만남 헨리 나우웬의「영성에의 길」
11/23/15
한진우

고려대학교 사학과 (B.A.)
Nyack College ATS (M.Div.)
뉴저지 밀알선교단 사역
JCrew Mission Church 개척
PAM 렉시오 디비나 모임 회원
지난 6월 23일, 렉치오 디비나 두 번째 만남이 개신교수도원에서 있었습니다. 김에스더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된 이날 만남에는 김창길 목사, 조인목 목사, 정창문 목사, 김영호 목사, 이상화 사모님이 참석하여 활발한 토론의 장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날 참석하기로 했던 김영덕 목사님이 갑작스런 병원심방 일정으로 말미암아 참석할 수 없게 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이 책의 저자인 헨리 나우웬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나눔이 있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서 지나쳤던 것으로, 헨리 나우웬이 1932년 네덜란드에서 출생하였다는 점, 아버지는 세무직 공직자 출신으로 한때 교수로서 가르쳤다는 것, 그리고 헨리가 첫째 아들이라는 점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957년 그는 로마 카톨릭의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고, 예일대학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후, 같은 대학에서 심리학교수로 재직했으며, 그 후에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했다는 경력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석자 모두의 관심을 끈 것은 헨리가 사회선교를 실천하기 위해 잠시 동안 페루의 빈민가에서 지냈다는 것과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헨리는 64세 때 심장마비로 생을 마쳤으며, '상처 입은 치유자', '친밀함', '영성의 씨앗' 등 30여권의 저서를 남긴 영성작가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음이 언급되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영성에의 길'의 영어제목은 'Finding The Way Home'(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이며, 여기에는 헨리가 Home으로 가기위한 네 개의 길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것은 능력의 길, 평안의 길, 기다림의 길, 그리고 삶과 죽음의 길입니다. 이 책의 서언에서는 헨리가 집으로 찾아가는 것을 여행에 비유하여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본향을 향한 길을 찾아갈 때 확신 가운데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는 헨리가 노숙자를 만났을 때, 서둘러 가지 않고 늘 하던 대로 멈춰 서서 노숙자에게 줄 돈을 찾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장면을 소개하면서, 그가 '집'을 향한 자신의 갈망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 없는 이들 Homeless People과 유사한 감정을 느꼈음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헨리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집을 찾는 것'(Finding home on the way home)에 대해 경험한 것을 우리도 경험하게 될 것임을 기대하게 하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네 개의 길: 능력의 길, 평안의 길, 기다림의 길, 삶과 죽음의 길을 관통하는 하나의 출발점은 '연약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머튼에게 있어서 "씨앗 seed"이 Art였다면, 헨리 나우웬에게 씨앗은 '연약함'인 것입니다. 이 연약함은 한계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이 연약함을 통해 능력이 나타나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평안에 이르고, 기다림이 소망이 되고, 그리고 죽음까지도 열매가 되는 소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헨리 나우웬의 영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약함'인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나우웬의 네 개의 영성의 길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능력의 길
능력의 길은 실로 연약함의 신학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의 깨어짐, 유한함, 상처, 연약함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한 시각이 이 땅을 여행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제공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방식대로 그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세 단어 즉 '권력' (power), '무력함' (powerlessness), '능력' (power)이 소개되고 있다.
첫째, 권력(power)에서는 경제적, 정치적 권력의 파괴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적, 정치적 권력보다 더 나쁜 것이 종교적 권력의 남용임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적·정치적 불확실성이 두드러진 이 시대에 가장 큰 유혹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신앙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력 행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의 명령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둘째, 무력함(powerlessness)에서는 하나님이 스스로 무력함을 선택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철저히 연약한 모습으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기로 선택하셨다. 이것은 하향성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무력함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 성육신(Incarnation)사건인 것이다. 무력한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완전한 연약함으로 권력의 장벽을 극복하시기 위해,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인간이 되셨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셋째, 능력(power)은 연약함의 능력을 전제로 한다. 힘을 통한 능력에서 무력함을 통한 능력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니체가 비판한 능력이 바로 이것으로, 이 능력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의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약함의 신학으로 하나님이 권능을 부어주시는 신학이다. 이 신학을 통하여 창조성, 리더십,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새로운 주도권을 생성하는 사랑의 능력이 발휘된다.
결국 분열시키는 권력에서 연합시키는 능력으로, 파괴적인 권력으로부터 치유하는 능력으로, 마비시키는 권력으로부터 권능을 부여하는 능력으로 나아가는 길은 첫째,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는 그리고 이 세상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가난한 자들을 진정으로 돌보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것으로, 고통 때문이 아니라 기쁨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놀라는 것이다.
평안의 길
여기에서는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의 아담이라는 정신지체 장애인으로부터 배운 침묵과 평안에 대해 나누고 있다. 아담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평안을 침묵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다. 그래서 아담의 특별한 은사인 평안은 존재, 마음, 그리고 공동체에 근거를 둔 것이 된다고 한다.
첫째, '존재에 근거를 둔 평안'은 '함께 있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도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며 그저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란 행위보다 중요하다. 아담은 특유의 침묵으로 평안은 본질적으로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며, 평안은 무엇보다 존재의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마음에 근거를 둔 평안'에서는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우리를 인간이 되게 하는 일차적인 것은 지성이 아니라 마음이며,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참된 정체성에서 첫째가는 숨겨진 신비가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신뢰, 소망, 사랑이라는 그분의 선물을 가져오시는 우리 존재의 중심을 의미한다.
셋째, '공동체를 형성해 내는 평안'에서는 아담이 가진 평안의 가장 확실한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아담의 평안은 항상 공동체를 형성해 내는 평안이라는 것이다. 아담의 연약함 때문에 항상 누군가가 집에 있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그를 중심으로 평화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서로 의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갖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기다림의 길
기다림의 길에서는 기다림의 영성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기다림을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한 기다림과 하나님의 기다림이다. 우리도 기다리고 있고,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앞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기다림을 묵상할 수 있는 장면들을 제시하고, 반면에 누가복음 마지막 장들은 하나님의 기다림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조망을 제공해 준다.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서는 기다리는 사람 다섯 명을 만나게 되는 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기사에서는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기다림에서는 기다림은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가능한 그것을 통제하려는 우리의 욕구가 존재한다. 누가복음 초두에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마리아, 시므온, 그리고 안나가 두려움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전해지고, 이들은 그들에게 일어날 새롭고 좋은 무언가를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기다림이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자세요, 신실하게 남아있던 이스라엘의 작은 무리의 자세가 된다.
둘째, 기다림의 본질은 약속이고 기다림은 더 이상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것이다. 능동적인 기다림이란 매순간이 바로 그 순간임을 믿으면서 그 순간까지 그 곳에 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에는 '인내'가 따르고 '소망'이 따른다. 그래서 영적인 삶이란 능동적으로 그 순간에 거하면서 기다리는 삶이다. 이것이 통제하는 일에 정신이 팔린 세상 속에서 삶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혁신적인 자세이다.
셋째, 기다림의 훈련은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기다리는 것이 낫고, 함께 기다리는 것, 이미 시작된 일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 그것의 완성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 결혼, 우정, 공동체,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이다.
넷째,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사건을 통해 우리는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수난이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수난을 통해 다 이루셨다. 그래서 수난은 또한 기다림과 같은 것이다.
삶과 죽음의 길
여기에서는 헨리 자신이 교통사고로 인해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직면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보셨을까? 생각해 본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자체가 장차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으로, 그리고 제자들에게 엄청난 유익이 될 것으로 보셨다. 예수님에게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위대한 어떤 것에 이르는 통로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떠남이 결국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대표되는 연약함이 풍성한 열매 맺는 길을 여신 것이다. 그리고 열매맺는 것은 성공을 넘어서는 것이요, 약함이나 쇠함을 넘어서는 것이요, 심지어 죽음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