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도냐 환상을 좇아서(2)
11/23/15
이금하

골든게이트 침례회 신학교(M.Div.)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 크루즈(미술역사와 비평, BA)
서울대학교 식물학과 졸업(BS)
지난 호에 이어 "마케도니아 환상을 좇아서"라는 제하에 또 글을 쓰게 되었다. 실은 이렇게 후편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지난 번 글에 못 다한 얘기가 있는 듯하다 하여 어느 정도 간추려 그 후의 스토리, 즉, 우리 교회를 선교에 사용하신 His-story를 좀 더 씀으로써 선교 간증을 마치고자 한다.
4년 전 동 티모르로 간 60여명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째 그룹은 땅 끝까지 선교사로 가겠다고 나선 형제·자매들과 그 자녀들이었고(물론 싱글 자매들도 여럿 있었지만), 둘째 그룹은 미국과 한국의 타락한 중·고등학교 상황을 벗어나 홈 스쿨링하고 있는 우리 선교사 자녀들(MK's)과 함께 공부하고자, 부모의 권유로 혹은 자원해서 간 우리 교회 교역자 자녀들이었다(PK's). 이들이 열 명이 넘었기 때문에 60 여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얼른 보기에 선교와 직접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동 티모르 선교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게 됨을 이 글 끝에 알게 될 것이다.
5년 전인 2010년 11월초에 다섯 명이 나흘에 걸쳐 선교지를 답사하였는데, 마지막 밤 중앙아시아 선교를 맡고 있던 목사 형제 부부가 먼저 헌신했고, 또 같은 자리에서 보스턴 교회의 의사 형제가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그 헌신에 이르기까지, 밤새도록 우리 다섯은 우리 교회의 동 티모르 선교에 대한 주님의 뜻을 확인하고자 나흘간의 답사에서 만난 사람들, 겪은 일들을 종합 정리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얘기를 거듭할수록 아무래도 주님께서 말씀으로나 환경으로나 우리를 동 티모르로 인도하시는 것이 점점 확실해졌지만, 역시 결론 부분에 가서는 또 다시 안전 문제가 대두되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입에서 "순교는 아무나 하냐? 우리가 무슨 큰 믿음이 있다고 주께서 우리를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끼워 주시겠냐? 우리 너무 주제넘은 것 같다. 마치 순교자의 자격이라도 있는 양. 장차는 몰라도 지금은 한참 멀었다. 이런 저런 걱정부터 하는 우리가 정말 한심하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어느덧 날이 샐 때 그 날의 경건의 말씀을 스케줄에 따라 읽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며 또한 책망하시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말지어다."(시편 95:7,8) 하나님의 백성이요 양인 우리를 그가 친히 돌보신다는 데 웬 말이 그리 많은가? 회개하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돌, 믿음의 이정표를 세우는 밤이었다. (여호수아 4:6)
이렇게 헌신한 형제들을 뒤이어, 선교 답사여행 보고를 들은 형제·자매들이 곳곳에서 동티모르 선교에 헌신하기에 이르렀는데, 대학시절부터 지난 삼십여 년 또는 이십여 년 훈련받은 형제·자매들이 자기들의 전문지식을 갖고 미국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대개 소위 1.5세로 불리는 세대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와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동안 미국에서 부모의 기대에 따라 성취한 것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민자들의 성공기준인 Berkeley, Caltech, MIT, Harvard 등에서 학부 뿐 아니라 각기 박사, 의사, 변호사, 건축가, 교수가 되어 많은 연봉과 더불어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던 사십대 전후의 형제·자매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삼십여 형제·자매들이 2세인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동티모르로 떠난 때는 2011년 여름.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30여 년 전 그들의 부모들이 어린 자기들을 이끌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미국 이민 간 바로 그 나이에, 부모세대와는 달리 이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드림을 위해 안락한 미국을 떠나, 세계에서 두 번째 가난한 나라로 이민자 아닌 선교사로 떠나게 된 이 사실이, 주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지 않으셨다면 어찌 가능할 수 있겠는가? 정말 부활의 주님은 살아 역사하신다. 할렐루야!
그해 7월 드디어 동티모르 수도인 딜리에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후방에 있는 나는 축하차 그리고 여름 선교차 육십여 명의 단기 선교 팀을 데리고 가서 총 129명이 창립예배를 드렸다. 문자 그대로 지구 끝, 남태평양 끝에 있어 땅 끝이라고 볼 수 있는 동티모르에서의 그날 예배는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과 감사가 넘치는 축제였고, 또 선교 전선에 있든지 후방에 있든지 다 함께 헌신을 재차 다짐하는 뜻 깊은 날이었다.
이와 같이 '힘든' 결정과 헌신을 거쳐 성인 30여명, 그들의 자녀 20여명, 그리고 홈 스쿨링을 위해 미국과 한국에서 온 우리 목회자 자녀 10여명, 모두 60여명이 큰 셋집을 얻어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앞마당 빈터에 이층으로 아파트를 지어 좀 사람 살 만한 공간도 마련했다. 전 세계 후방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힘에 지나는 선교 헌금으로 주거지 뿐 아니라 그들의 전 생활을 책임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연봉 2십만 불 받던 의사 형제들이 무료 진료 의사들로 빈민 병원에서 봉사하게 되니 그들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미국에 있는 우리 몫이었다.
물질적으로는 큰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지로 떠나 함께 공동 생활하게 된 그들 모두에게 상급으로 주어졌다. 아침·저녁으로 갖는 기도회와 나눔, 그리고 낮의 노동 등 R. A. 토레이 신부님이 세웠던 강원도 산골짜기의 예수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헌신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소위 comfort zone인 미국과 한국의 여느 교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참 교회의 모습, 또는 유무상통했던 초대교회를 조금이라도 구현해 볼 수 있는 복을 누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름대로 한때 그들의 인생 가운데 정신을 크게 차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지만, 터가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나는 무슨 재료로 지금 내 인생을 짓고 있는가? 사도 바울이 비유한 대로 금, 은, 보석, 나무, 풀, 지푸라기, 이 여섯 중 무엇으로? 주께서 불로 공력을 시험하시는 날, 상은커녕 결국 다 타버릴 재료들로....?"(고전 3:10-15) 이들은 이와 같은 말씀에 큰 도전을 받아 자신을 살펴보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단의 표로 "영육간에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위험한 현실안주(complacency)의 덫을 애써 거부하고 땅 끝으로 간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주님 안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모인 그들에게 공동생활은--물론 자아들이 계속 충돌하고 깨지는 훈련은 서로 계속 감당해야 했지만--일반적으로 우리 후방에 있는 교회들과는 달리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토록 전 편에도 쓴 선교에 동참하게 된 동기와 과정을 더 자세히 반복하듯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선교사들이 가서, 통상적인 개념에 따른 선교는 별로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짚어 보고 싶은 질문은 원론적으로, 과연 "선교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성공한 선교인가?" 하는 것이다.
선교학자로부터 실제 선교 현장에서 뛰는 선교사에게 이르기까지 선교에 대한 정의와 방법은 세부사항에 들어가서는 사뭇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선교를 다른 문화권으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같은 문화권 안에서의 전도와 같은 단순 정의에 의거한다면, 우리 교회의 동티모르 선교는 한 마디로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선교의 열매를 몇 명이나 구원 받았는가로 따진다면, 그저 3년을 최선을 다하고자 했지만 한 명의 결신자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로, 밤이 맞도록 애썼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예수님께 고백한 베드로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체험 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200년 전, 버마에서 억울하게 옥에 갇히는 등, 온갖 고초 끝에 6년이 지나도 한 영혼도 못 건진, 미 대륙에서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부부 (Adoniram and Ann Judson)의 심정을 감히 좀 경험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동티모르는 결코 '쉬운' 선교지가 아니었다. 선교지 뿐 아니라, 지금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딘들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겠는가! 그중에도 동티모르는 정말 어려운 곳이었다. 우리 교회 선교사들에게 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 온 선교사건 교단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힘든 곳이었다.
그렇지만, 주께서 가라 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선교지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제일 먼저 만난 선교사들 중 한 분이 우리에게 충격적인 말을 아주 진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귀 교회에서 오신 이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나 모든 분들의 배경을 듣고 보니, 이 나라 잘못 오셨습니다. 나도 그동안 선교사로 중동과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선교를 해왔고, 여기가 여섯 번째 나라인데,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나라를 첨 봤습니다." 앗! 이런 인사가 어찜인고?!? 잘못 오다니. 이렇게 어린 자식들까지 끌고 남부여대(男負女戴)(?) 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선배 선교사가 환영사랍시고 하는 말이 잘못 왔다니,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우리는 묵묵히 서로 얼굴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계속 충고를 듣고 있었다.
"이런 나라를 첨 보셨다니요? 그리고 저희보고 잘못 왔다니요? 우린 분명히 주님의 뜻이라 믿고 이 대식구가 헌신해서 왔는데요." "앞으로 겪어보시면 알겠지만, 한 마디로 이 나라 사람들은 혼이 없습니다, 혼이. 다시 말해 복음을 전해도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 전에는. 물론 예수님도 둘 다 하셨지만, 복음을 듣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가 문제에요. 예를 들어, 제가 여기 온지 6년이 됐습니다. 정말 제 아내와 내가 영육간에 무엇보다 주님의 복음의 핵심을 여과 없이 전하고자 하느라고 했습니다. 고아들과 가난한 집 아이들을 데려다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면서요. 지금도 상당수를 소위 우범지대에서 데리고 삽니다." 상당히 존경스런 분이었다. 그는 본래 믿는 부인을 심히 핍박하다가 주님의 크신 은혜로 고꾸라져서 회개하고 선교사로 일찍이 나선 분으로 그때 그 사모님은 말라리아 등 병이 나서 쇠약해진 관계로 잠시 한국에 치료 받고 쉬러 간 상태였다. 연배는 나보다 조금 위인 이분은 참으로 소위 예수 제대로 만나 깨져 오직 주님의 복음 전함에만 팔린 전도자요, 선교사였다. 오래전 영국에서 시작된 "형제 교단"의 한국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누구에게나 분명한 복음을 전하고 또한 그 구원의 확증을 위해 다지고 또 다지는 확실한 복음 증거자였다. 땅 끝에서 이런 귀한 복음의 동역자를 만나다니 실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얘기는 이어져, "6년 만에 처음 결신자를 얻었는데, 지난 6년 동안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 데리고 살면서 성경 가르치고 복음의 핵심을 계속 가르쳐서 드디어 확실히 믿게 되어 침례까지 줬습니다. 동티모르 선교의 첫 열매지요." "어머, 200년 전 미국 최초의 선교사 부부, 아도니람 저드슨 부부의 버마 선교 역사 같으네요!" "근데, 최근에 이 형제가 없어졌어요. 제 카메라도요. 갖고 도망간 거죠. 우리 집사람이 이래저래 선교 자체에 낙담되어 지금 한국에 가서 영육간에 회복 중에 있습니다. 자식같이 키웠거든요. 복음에 있어서도 확실히 구원 받은 증거가 있었고... 정말 이해가 안가는 족속이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기중 나은 형제가 이렇게, 그까짓 카메라 하나 때문에 탐심을 물리치지 못하고 이렇게 사랑하는 믿음의 식구들을 배신하고 상처를 줬으니까요. 지극히 못 사는 인도 슬럼에서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은 없습니다."
여하간 그 나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으로서는 상당히 낙담스러운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린 서로 같은 말로 중얼거렸다. "저 선교사님은 영적인 분인 것 같은데. 우리는 저 목사님의 영혼에 대한 부담과 열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무작정 상경한 시골 쥐들 같잖아. 아주 심각한 일인 것 같다. 우린 저분 보다 잘할 자신도 전혀 없는데, 주께서 여기서 우리를 어떻게 쓰실 것인지..."
의사 형제들은 우선 빈민을 위한 무료 클리닉에서 풀타임으로 자원 봉사로 나섰다. 그곳은 지난 번 답사 여행 때 우리 보고 와서 도우라고 호소 겸 호통 치던 미국의사가 지휘하고 있는 곳이었다. 박사 학위 소지자들은 하나 밖에 없는 국립대와 몇몇 사립대에 교수직을 신청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은 우리 선교사들의 '화려한' 이력서에도 불구하고 오라는 데가 없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나라였다. 그들의 교수진은 기껏해야 대부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그리고 몇몇 드물게 인근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로서, 그것도 박사학위 소지자는 아주 드물고, 미국 박사학위는 둘째 치고 미국 석사 학위 소지자도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나라였다. 어찌된 연고인지 우리 선교사들이 자기 전문 지식을 갖고 자비량(tentmaker) 선교사로 직장 구하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렇게 날마다 정기적으로 일터로 나가지 않으면 복음 증거는 고사하고 사람들과의 접촉점도 갖기 힘든 노릇이 아니가? 그리고 이 낭비되는 전문 지식은 또 뭐에다 쓸고? 정말 그 목사님 말대로 우리가 잘못 온 건 아닌가? 이 혼이 없는 백성에게? 또한 그분 경우는, 사람들을 접할 뿐만 아니라 같이 데리고 살아도 복음에 관심도 없고 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다가 겨우 오랜만에 얻었다는 결신자, 자식 같은 아이는 물건을 훔쳐 도망갔다 하지 않았는가? 이래 갖고야 이 나라가 어찌 주의 궁정이라 할 수 있으며 (시편 84:10), 또 무슨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의 생각 위에 계시다(이사야 55:8-11). 우리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향하신 그분의 계획은 우리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그분의 뜻은 다른 사람들을 전도, 선교하기 전에 당신의 자녀들을 훈육하시는 것이었다. 미국의 타락한 물질문명과 인터넷의 홍수로부터 떼어다가 아무 것도 없는 땅 끝에 마치 생물학자가 다른 수반basin에 어떤 세포를 분리해서 세포 배양을 하듯이 60여명의 귀한 당신의 자녀들을 모든 것을 버리게 하시고 독수리 날개로 업으셔서 땅 끝에 데려다 놓으시고, 수도원 같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독수리 훈련으로 새롭게 빚어 가셨던 것이다. 그들을 위한 선교지는 동티모르가 아니었다. 거기는 그들의 선교사 훈련소였다. 마치 논산 훈련소 같은. 역시 기도 많이 하시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으신 그 목사님의 말씀이 옳았다.
그리하여 3년 후, 주께서는 다시금 '마케도니아 환상' 을 보여주셨다. 훈련이 이제 끝나서 본격적인 선교지로 나갈 때가 됐다고 하심이 너무 분명했다. 그리고 작년 2월, 그 대식구가 하나님이 지시하신 또 다른 땅 그루지야 공화국 (the Republic of Georgia 구소련에서 독립)으로 들어가 대학들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며 영혼들을 만나 전도한지 벌써 일년 반이 지났다. 이 나라는 우리의 이력서를 보고 즉각 교수로 채용하였다. 이제 그들과, 홈 스쿨링으로 변화된 그 자녀들은 동티모르 때와는 아주 다른 하나님의 훈련된 백성이 되어 새로운 선교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우리 교회의 선교를 주도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찬양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린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