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20호

가을에 다가온 아이러니

05/08/16   박범식

1975 년캐나다 토론토에 이민
1984 년 University of Toronto, Engineering Science 졸업
현재 Research In Motion 에서 Software Development Manager 로 근무
현재 토론토 디모데장로교회 (EM) 출석

손등이 까칠해지고 찬물 닿는 게 싫어지는 것 보니 이제 벌써 가을도 가물가물 멀어져 감이 하루가 다르게 느껴져 온다. 맥로글린(McLaughlin) 길 따라 길쭉 늘어서서 무성하고, 옷가지 여러 벌 겹쳐 입듯 빼곡히 찬 슈거부시(Sugarbush) 숲 단풍나무들도 밤새 찬바람이 시린지 가지 끝에 쥐고 있던 잎사귀를 뭉큼뭉큼 내려놓는다. 근처 큰 덩치들에 치이고 가려 보이지 않던 왜소한 나무의 철사 줄처럼 가느다란 가지 하나에 나머지 데 여섯 잎들이 붙어 있는데, 바늘 끝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릴지언정 떨구지 않는 강한 의지에 감탄하며 보는 이의 마음에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민낯으로도 느껴지지 않은 미세한 바람결에도 파르르 문풍지 떨듯 핏기 없는 잎새들이 요동하는걸 보며, 무슨 아쉬움에 철이 지나도록 움켜쥔 손아귀를 풀지 못하는 가느디 가느다란 줄기를 보며, 가슴속에 묘한 아이러니가 밀려온다.

아이러니 하니, 얼마 전 잠깐 스쳐가는 듯 했던 TV 한 장면이 떠오른다. 메이저 리그(MLB) 야구시즌이 끝나갈 무렵, 토론토 블루 제이스(Blue Jays)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Braves)와의 저녁 경기 때, 터너 구장(Turner Field: Braves 홈 구장) 텅 빈 3루 쪽 관중석에 허름한 차림으로 틱틱한 모자 눌러쓰고 구장매점의 정크 푸드를 먹고 있는 노쇠해 보이는 부부가 카메라에 잡혔는데, 가까이 보니 근래 기자회견에서 퍼진 암세포로 인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스스로 밝힌 지미 카터 전직 대통령과 부인 로잘린 여사였다. 주위 경호원도 없어 보이고, 소위 로열박스도 아닌 딱딱한 일반석에서 저물고 으슬으슬 추운 시간에 나란히 서로 어깨 기대고 앉아있는 허름한(humble) 모습이 존경스럽다 못해 숙연해져서, 순간 내 미간이 쫑긋 굳는 듯했다. 더구나, 아직도 섬기는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서 대통령 재임시절은 물론, 암 투병중인 현재까지 봉사를 한다는 소식에 그의 왜소한 모습에서 의로운 거인(righteous giant)을 보며 내 마음으로 할렐루야를 외쳐보았다. 나라 돈 수천억을 빼돌려 먹고 오리발 배짱 내밀며 "황제" 골프를 즐기고, 또 남의 돈으로 산 회원권으로 "황제" 테니스 치는 모습에 되레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혹시 카터처럼 목동 구장에 핫도그를 손에 쥐고 나타나면, 현장에서 보는 사람들은 물론 미디어들은 창피스럽다 못해 국치라고 떠들지 않을까 싶은 착잡한 아이러니가 마음을 어둡게 한다.

얼마 전 교회에서 헨리 나우웬(Henry Nouwen) 의 "In The Name of Jesus"란 책을 읽고 그룹 토의하면서, 그가 하버드에서 명석한 두뇌의 석학들을 가르치다 토론토 근처의 Daybreak Center라는 곳에서 정신장애자들과 생활하며 돌보는 사역을 시작하며 과거의 학문, 지식, 명성 등 모든 것이 무관한(irrelevant) 취약함(vulnerability) 때문에 "새" 눈이 떠진 후, 마치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사역을 이어 나가며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고 흠 없던 자신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아이러니를 접해본다. 특히 나우웬이 말한, 진정한 리더십은 취약함을 경험한 겸허한 섬기는(servant) 리더십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전혀 상식 밖의 엉뚱한 소리 같기도 해서 얼른 이해도 되지 않았다. 주위 세상을 보면, 리더는 특별하고 우월한 능력(power)에 기초해서 남을 지휘하고 때론 다스려야 하는데, "종"의 자세로 섬겨야함에는 현대 리더십과 너무 동떨어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출석중인 교회에서 12주에 걸쳐 마가복음 성경공부를 마쳤다. 주제 장을 미리 읽고 오라는 말씀에 의무감 삼아 읽어보았지만, 그때마다 솔직히 밋밋하고 말씀의 흐름도 잘 잡히지 않아 애쓴 적도 많았다. 그런데 강사 목사님의 통찰력 있는 지도와 솔직하고 열린 그룹 토의를 통해 생각지 못한 발견과 신선한 깨달음을 얻게 되어 참 좋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말씀 진행 속에서 발견한 몇 가지 아이러니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예수님의 초반 사역 중 축사(exorcism)의 예가 여러 번 나오는데, 귀신들이 한눈에 예수님을 알아보고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라 칭하며 그의 참된 신분(true identity)을 알고 떨며 경외하는데, 날마다 기적과 비유로 가르치신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가 된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는 동안에도 잠을 자며 진정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읽는 이들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부정하는 바리새인들과 대 제사장들 스스로의 입에서 메시아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며, 유대인들 스스로 예수를 유대의 "왕" 이라 지칭한다. 이렇게 기록되고 수없이 듣고 배운 현대의 우리는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예수를 누구라고 믿고 부르고 있을까?

끝으로, 믿음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물어보며 겸연쩍은 아이러니를 경험해 본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라고 배우고 들은 대로 대답해 보지만, 솔직히 믿음이란 나에겐 아직 무척 "추상"적이다. "실상"과 "추상"의 양 끝을 어떻게 묶어서 이 믿음의 아이러니를 한 실타래에 감아놓을 수 있을까 하며, 늦가을 찬바람에 양 볼을 좌우로 몸살이 치는 이파리에 손을 내밀어 미리 내려앉은 나뭇잎 방석삼아 그 위에 누어 깊어가는 하늘 속 깊숙이 들어가고프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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