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긴장한 채 전화 신호음을 기다리는 저 먼 너머에서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 "응. 혜영아! 잘 있었어?" 순간 대답할 새 없이 울컥 올라오는 그리움과 목메임…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들킬세라 모든 소리를 삼켜가며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우리가 있어요… 언제나 기도하고 응원해 주는 당신의 가장 큰 응원군! 이 낯선 곳에서 너무 힘들어서 지쳐서 아님 기뻐서 누군가가 들어주길 원할 때 이곳에 어마 무시 하게 당신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때론 언니가 때론 동생이 아니 가족이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저희에게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잊지 마세요."
저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안전한 피난처 혹은 반공호가 있습니다. 어둠만이 보이던 인생 여정에서 어느 순간 훅 들어와 희망이라는 빛을 안겨준 사랑 말입니다.
저만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충분조건이란 생각이 드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하면 너무 무리인가요? 아닐 것 같아요. 순전히 한 사람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창작품이지만 드라마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핫 한 드라마( 주군의 사랑, 괜찮아 사랑이야-아직 보지 못해 이건 애기 못해드리겠네요, 킬미힐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소재가 육신의 질병을 벗어난 정신적인 소재들을 부쩍 많이 다루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다시 보았던 "주군의 태양" 이란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큰 태양이는 귀신을 보는 신기한 능력 때문에 하루하루가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귀신들도 하물며 자기 사연과 소원을 풀어주기를 바라며 따라다닙니다. 무섭고 끔찍해서 옥탑 방에 온갖 부적들은 다 들여놓고 숨어살아가고 있었던 그녀에게 주군과의 만남은 세상 속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게 만든 기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태양이가 주군과 함께 있으면 귀신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주군은 무서우면 언제라도 달려가 붙잡으면 어떤 귀신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반공호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에이 드라마니깐 그냥 꾸며낸 거니깐 할 수도 있지만 전 거기서 제가 그토록 꿈꾸던 삶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소리를 알아봐주고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세상은 작은 빛 점으로 시작해서 점점 밝아지고 살만한 가치 있는 곳으로 될 것이라는 시선을 주었습니다.
또 하나 "킬미힐미" 라는 드라마에서도 다중이로 살아가는 고통 속의 차도현은 그 고통을 혼자 감내하지 못해 본래의 자신을 놓아버리려는 순간 목놓아 소리치는 오리진의 목소리에 절대 혼자서는 뛰쳐 나오지 못했던 깊은 수면 속에서 되돌아 나오게 하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를 아주 조금씩 자신의 고통과 마주하게 하며 스스로 이겨날 수 있는 자기를 만들어냅니다. 서른 해 정도 혼자서 싸워왔지만 속수무책으로 넘어지던 그에게 단 한 사람의 지지와 사랑은 그가 자신을 죽여달라는 외침이 아닌 힐링 시켜달라는 간절한 눈빛과 소망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이민 온 지 10년을 뒤돌아 보면 삶은 언제나 전쟁 같은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남으려 바둥대며 허덕이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절하다고 해야 하나요? 송두리째 뽑혀버린 내 삶의 뿌리들을 다시 낯선 땅 그것도 아무도 돌보지 않은 곳에 옮겨 심는 작업은 그리 만만치 않았기에 더더욱 견디기 힘이 들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빛을 삼켜버린 어둠 가득한 길을 뚫고 돌아오는 365일 똑 같은 삶의 반복과 그럼에도 하루살이처럼 오늘 나서지 않으면 내일은 살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은 저기 발 밑에서부터 아주 숨차게 차고 오르기 시작해서 어느 샌가 통째로 삼켜버렸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위해 이 삶을 선택했다는 포장에도 삶을 궁핍하고 웃음이라는 단어는 이미 삶에서 의미 없음으로 되었고 잘 포장하려 했으나
아이들마저도 내가 계획한대로 감히 기대했던 바를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넘어졌습니다. 일어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의 끊임없이 꿈꾸었던 잃어버린 희망에 대한 좌절은 실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의 무기력과 화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누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속 시원히 속말 한번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너무 외롭습니다 누군가 내 소리 좀 알아봐주세요 소리치고 싶지만 그 어느 누구도 아무런 투정 없이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나만 왜 이런 걸까? 누군가가 말했듯이 미국 와서 3년 넘으면 모두 정신병자 된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나한테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더욱 작아지고 소심해지며 내 안으로 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수다쟁이가 말 한마디 하지 않아서 입에서 단내가 나는 사람으로, 내뱉는 말은 온갖 부정적이고 불평만 가득하니 자연스레 가족들간에도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사랑하고 지켜주는 사람이 아닌 오히려 상처 주는 엄마가 되어 버렸으며 이런 변화들이 더 괴로워 또 화를 내게 되고 다시 다툼과 갈등을 만들게 되는 악순환 속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몸이 모든 활동을 멈춰버렸습니다. 갑자기 차라리 잘되었다 싶은 강한 어떤 물컹한 것,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주 작게 그러나 선명히 보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 깊은 동굴 속에서 출구가 아닌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렇군요 .. 저란 사람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그리고 내 소리를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힘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어머니를 보는 순간 제 안의 아주 쪼맨한 그 무엇이 말했습니다. 일어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그리고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은 어쩌면 태초부터 가장 안전한 피난처 휴식처인 어머니의 품 속인가 봅니다. 저는 이것이 진짜 엄마 품이 아닐지라도 그만큼 내 작은 숨소리마저도 읽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끊임없이 갈구 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둘러보고 찾으려 했다 변명해보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내지르지 않았습니다. 먼저 마음이 아무도 없다고 단정지었고 열쇠로 단단히 잠가둔 채 내 안의 작고 소중한 집을 폐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말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서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들을 또 지켜 내주는- 감히 말입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란 것을 해보기로 했고 그곳에서 저는 넘어지기 위한 깨짐과 부서짐이 아닌 진짜 자라나기 위한 걸음마를 배우며 넘어지며 일어섬을 반복하면서 가장 귀한 친구들 아니 피난처를 만났습니다. 한 명도 아닌 8명씩이나 말입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라 내가 넘어져 울 때 같이 울어주는, 일어설 때 옆에 서서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인생은 그야말로 새로워 졌습니다. 첫만남부터 엄청 좋았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시작되고 흔히들 적당한 거리 속에서 관계를 했지만 다들 비슷한 환경과 처지(이민이라는 엄청난 변화)에서 하나 둘 맘을 열기 시작하고 서로를 들어주려 했습니다. 자연스레 한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며 먹고 애기 나누게 되면서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서로 나서서 돌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들과 나눈 이 낯선 경험들은 저를 키우고 자라나게 만들었고 저도 이들과 같은 맘을 품게 되었습니다. 맨날 좋고 기쁘기만 했다면 그냥 포장지였겠죠. 서로 오해하고 삐치고 섭섭하고 답답하고 버럭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서로가 소중히 여기는 사랑하는 마음과 신뢰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공부하면서 나누었던 각자의 자그마한 상처들, 굵직했던 아픈 경험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누구라도 가질 수 있고 넘어지지만 그곳에 나가 아님 우리가 함께 있다면 일어 설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는 문제와 상황을 전부 말끔히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 제가 힘겹게 고개 들어 옆을 보면 조용히 옆을 지키고 있는 우리라는 휴식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지만 맘속 언제나 함께 하는 그리운 한 사람과 거친 숨소리조차 내기엔 가족들이 염려스러운 병마와 싸우는 여전사 두 분과 소소히 웃고 울고 일상 속을 살아가는 다섯 송이 아름다운 꽃님들이 바로 제가 지금 행복한 이유이며 세상이 아름다워진 까닭입니다. 오늘도 세상이 반짝이게 하는 힘입니다.
어느 날 문득 숨이 막히고 답답해지면 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은은하지만 충분히 환하게 밝혀주던 옛날 초가의 작은 호롱불을 떠올립니다 그럼 바로 전화를 합니다.
응답하라! 내 소중한 희망의 꽃님들이여! 그리고 지금 전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