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5호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

10/13/14   오화철

연세대학교 신학과 (B. Th.)
연세대학교 대학원 (Th. M. 기독교윤리학 전공 )
밴더빌트 신학대학원 (M. Div.)
현재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박사과정중
(Ph.D. candidate in Psychiatry and Religion)
현재 해외한인장로회 (KPCA) 뉴저지노회 소속 목사

1. 당한 일이 복이었다

돌이켜보면 간절히 기도해서 이루어진 일도 있지만, 뜻하지 않게 당한 일로 인해서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었고 은혜였음을 고백할 때가 있다. 12년의 미국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지 만 2년이 지나간다. 지나간 12년의 미국생활이 꿈만 같고 그립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과 끝까지 함께 해주신 은총의 발자국을 느끼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저 평범한 인생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늘 데모가 그치지 않는 대학캠퍼스를 이젠 떠나서 좀 조용히 돈벌면서 샐러리맨으로 살고 싶어서, 어느 시중은행에 취업을 했었다. 그러나, 겨우 1년을 다니다 그만두고 다시 신학대학원으로 인도하신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묘한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윤리를 연구하고 싶은 열망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소위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지만 직장생활의 경험을 통해 자극을 받은 것이다.

이후에 일사천리로 다시 교회사역을 열심히 하게 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미국에서 첫 나의 도시는 테네시주의 내쉬빌(Nashville)이었다. 그 곳에 밴더빌트 신학대학원이라는 곳은 내 가슴을 분명히 설레게 했다. 처음 거주했던 도시라서 그런지 늘 마음에 남아 있다. 내쉬빌한인장로교회의 영어중고등부에서 짧은 영어로 2년간이나 영어설교를 하면서 학생들과 멕시코 유카탄단기선교도 다녀오고, 함께 했던 여러 수련회는 늘 아름다운 신앙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곳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하면서 난 기독교윤리에 초점을 맞춰서 공부하게 되었고 하워드 헤롯(Howard Harrod)이라는 유명한 사회윤리학 교수의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박사진학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이미 하워드 헤롯 교수는 암수술을 여러번 받은 환자였고, 건강이 좋지 못한 분이었다. 결국 목회학석사 중간에 헤롯 교수는 소천하셨다. 먼 미국땅에 기독교윤리를 공부하러 왔는데 지도해주시던 인자한 교수님이 돌아가시자 방황하게 되었다. 학부시절에 학교 본관 옆에 있는 청송대 라는 숲을 돌며 방황했던 것처럼, 난 밴더빌트대학의 캠퍼스를 거닐며 다시 방황을 하게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한 셈이었다.
결국 이 일로 인해서 난 밴더빌트 신학대학원 옆에 있는 미국육군보훈병원(Veterans Affairs Hospital)에서 임상목회교육을 받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참전용사들이 치료받는 병원에서 인턴목회자로 자원봉사를 한여름 내내 하게 된다. 이 경험은 나에게 인생을 바꾸는 경험(life-changing experience) 이 된다. 그 병원에서 치료가 힘든 고령의 수많은 백인분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인간이 겪는 거대한 고통의 세계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이 가진 정신과 육체의 고통이 얼마나 강한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거의 매일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았다. 기도하면서 함께 교제하던 분들이 자꾸 떠나가니까 나자신도 어느새 무척 우울해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봉사를 마치고 한동안 상담을 받아야만 할 정도였다. 병원사역을 통해서 느낀 한가지는 인간이 고통가운데 있지만, 역설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말기암으로 죽어가던 어느 백인 환자분은 나를 볼 때 마다, Whachul, live a happy long long life!! (화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라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죽어가는 말기암 환자가 건강한 젊은이를 축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의 힘과 인간의 정신이 가진 역설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동시에, 신앙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전쟁에서 경험한 참상때문에 죄책감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가운데 있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종교와 정신의 상관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이 경험이 나를 목회상담 분야로 이끌어 가게 된다.

2. 축복의 만남과 변화

지금 생각하면 기독교윤리에서 목회상담학으로의 방향전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소위 정의(justice)의 문제에서 고통(suffering)의 문제로 내 인생의 화두가 바뀐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바꿔 주셨다. 이렇게 당한 일이 나에게 큰 축복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2003년 내쉬빌에서 석사를 마치고, 난 뉴저지로 향하게 된다. 뉴저지에 있는 드류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어서 동부로 올라오게 된다. 뉴저지 !! 뉴저지를 난 늘 그리워한다. 왜냐하면 뉴져지장로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여름, 아무 연고도 없는 뉴저지에 다섯 살된 큰 아이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올라올 때 그 느낌이란 지금 생각해도 신나고 불안한 느낌 그 자체였다. 아는 교회도, 아는 목회자도 하나 없는 내가 새로 교회를 찾고 새로운 학교에 정착해야 되는 부담은 컸던 것 같다. 신학교 기숙사 입주전에 두달 묵을 방을 포트리에 겨우 구하고, 난 여러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늘 그렇지만, 힘들면 결국 새벽에 하나님을 찾게 되나보다. 어느날 뉴저지장로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기도후에 담임목사님 사무실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김창길목사님이 앉아 계셨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나름 예리한 눈빛을 가지신 목사님을 뵈면서 처음에 무척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목사님과 자리를 옮겨 김진장로님이 경영하신다는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몇 개월후 뉴저지장로교회 유년부 전도사로 일하게 된다. 이후 뉴저지장로교회 대학청년부사역을 하면서 만 6년동안 김창길목사님을 모시고 사역했던 시절은 내게 큰 축복이었다. 당시의 대학청년부 사역과 함께 다녀온 단기선교들은 또한 은총과 기쁨이었다. 지금도 함께 했던 청년들의 얼굴이 그립고 눈에 선하다.

3대째 감리교집안에서 자라고, 감리교회를 섬기던 내가 김창길목사님을 만나서 감사하게도 2006년도에 장로교목사안수를 받게 된다. 늘 김창길목사님을 생각하면, 신앙에 대한 집념과 강한 의지를 느낀다. 그리고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 김창길목사님을 뵐 때마다 큰 도전을 받는다. 무엇보다 김창길목사님은 나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셨다. 이런 사랑을 다시 또 어느 목사님에게 받아볼 수 있을까 싶다. 나는 늘 김창길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사실, 나같은 신학교 박사과정생을 교회 부목사로 써주신 것으로도 이미 너무 감사하고 죄송한 일이었다. 김창길목사님, 김에스더목사님과 당회원장로님들께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동시에, 나에게도 신학교 박사과정을 하면서, 뉴저지장로교회 부교역자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드류신학대학원에서 2년간 박사과정을 하다가, 학교를 맨하탄에 있는 유니온신학대학원으로 다시 지원해서 옮기는 일도 발생했다. 본래 종합대학 셋팅안에서만 신학을 하겠다는 고집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바뀌어서 유니온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라는 맨하탄의 아담한 신학교로 옮겨지게 된 것이었다. 유니온 신학교에는 앤 울라노프(Ann Ulanov)라는 기독교상담의 대가인 여자교수께서 40년 넘게 강의해오고 있었다.

3. 나의 스승: 김창길 목사님, 앤 울라노프 교수님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고 특권이다. 나에게 김창길목사님과 앤 울라노프교수님이 그런 스승들이셨다. 한 교회를 30년 넘게 섬기시면서 강한 믿음과 집념으로 이민교회를 섬기신 목사님을 뵈면서, 목회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또한 유니온신학교의 앤 울라노프 교수님도 한 신학교에서 40년을 강의하시며 2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시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신 분이셨다.
종종 김창길목사님께서는 김에스더목사님과 함께 내가 사는 신학교 기숙사까지 심방을 와주셨다. 오실 때 박스안에 고기와 과일을 잔뜩 사가지고 가져다 주시기도 했다.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교역자에 대한 김창길목사님의 애정과 관심에 난 너무나 놀랐다. 내가 특별히 사역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늘 교회에 부담을 드리는 교역자일 수 있는데, 그런 나를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찾아와주시니 감사한 마음이었다. 어쩌면 내 박사학위공부의 절반이상은 김창길목사님의 기도와 사랑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창길목사님, 뉴저지장로교회는 늘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과 영적 스승들이 지나간 위대한 신앙의 고지, 뉴저지장로교회를 위해서 생각하며 기도하게 된다.
한편 미국 진보신학의 대명사이기도 한 뉴욕 유니온신학교는 소위 사회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신학교 였다. 보통은 자유주의 신학을 한다고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핵심정신은 사회참여정신(social activism) 이었다. 콜럼비아대학과 연계한 신학교육을 통해서 맨하탄 할렘가에 위치한 만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신학교가 아니던가? 20년만에 한국학생을 제자로 받아주신 앤 울라노프 교수의 지도아래 7년을 공부했고, 정신분석, 종교심리, 목회상담 등등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면서, 맨하탄의 여러 상담기관에서 임상실습까지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여러 도움을 주신 뉴저지장로교회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여러분 계신다. 그 존함을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다. 앤 울라노프 교수님은 사실 냉엄한 분이었다. 15년전 맨하탄 바나드(Barnard)대학의 교수였던 남편이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시면서 학문과 임상에 전념하는 분이었는데, 박사과정학생들을 엄하게 공부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박사과정은 사실 참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이었다. 초반 3-4년동안 졸업이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메일을 잘 안하시는 지도교수에게 수십 수백페이지 논문을 출력해서 교수님이 사시는 맨하탄 아파트에 직접 배달하면서 마음을 졸인 적이 많았다. 새벽 2-3시까지 책을 보다가, 새벽기도 설교를 가야 하는 적도 빈번했다. 덕분에 2-3번 병원 응급실을 다녀오긴 했지만, 다시는 맛보기 힘든 극한의 행복경험이었다. 7년이 지나고 졸업식에서 지도교수와 포옹을 하고 총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을 때 온 몸에 진동과 전율의 감사를 느꼈다.

4. 한국에 돌아와서

12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은 다른 나라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내 처지가 그래서 그런지, IMF를 통과한 이후 한국은 극한 생존경쟁에 돌입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무일푼으로 돌아온 나는 매학기 10개씩 되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여러 상담임상을 했고, 덕분에 간단한 수술도 하면서, 강사생활을 하다가 현재 대학 교목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새 은퇴하시고 원로목사가 되신 김창길목사님, 역시 은퇴하신 앤 울라노프 교수님을 생각하면서, 나는 세계 최고의 스승 두 분을 모셨던 자부심을 갖고 있다. 목회의 스승 김창길목사님, 학문의 스승 앤 울라노프 교수님을 생각하면서, 난 오늘도 한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한국은 할 일이 많다. 나라가 어렵다. 사람들이 많이 힘들고 아프다. 어찌보면, 이런 힘든 나라를 위해서 몸을 불태워서 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하나님은 기독교윤리에서 목회상담으로 내 전공을 바꿔 주셨다. 종합대학이 아닌 조그만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도록 하셨다. 교단도 감리교에서 장로교로 바꿔 주셨다. 미국으로 출발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찌보면 당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축복이 되었다.
무엇보다 주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하는데, 현재 한국은 상담 분야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신학교 내에서도 다른 전공들 구약, 신약, 기독교윤리, 기독교교육, 예배학, 설교학의 석박사과정 학생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목회상담학 대학원생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는 상담, 소위 치유문화(healing)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모든 분야가 치료와 회복을 향한 열망과 기대로 가득하다. 일이 많아서 즐겁고 감사하지만, 그만큼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앞으로 한국개신교는 더 큰 도전과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 같다.
그 핵심에는 한국개신교가 다시 하나님앞에 진실하고 순수해질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이 들어있다. 고린도전서 5장 8절에 나오는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수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 라는 말씀처럼, 다시 한국교회가 하나님앞에 순수함과 진실함을 회복하는 날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가진 사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하고, 희생적인 태도로 섬겨나가야 할 것 같다.
많은 선배목회자들께서 앞으로의 목회가 더욱 어려울 거라고 예견하신다. 신학교도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 한국은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서 모든 대학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대학생들은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취업,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결국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사회전체가 큰 도전을 앞두고 있으며,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넘어서서 앞으로 한국교회가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많은 이들이 염려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목회상담 분야를 연구하고 강의하며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만나는 상담사역은 중요하다. 주중에는 강의와 행정으로 그리고 주말에는 상담사역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목회현장이다. 이제 설교가 중요한 시대가 점차 지나가고 있다. 설교는 인터넷 유튜브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다양하고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카톨릭이 부흥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카톨릭의 교리가 성경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들의 삶이 비교적 성경적이라는 여론이 있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멋진 설교를 하지만,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 사역은 예수님이 했던 사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서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은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만져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모여서 식사하고, 어울려 지내는 것이었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역의 기본이다. 간단하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역했는지가 다시 한번 한국교회사역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주신 것이 감사하다. 필요한 공부와 자격을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은총이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은 벌을 주셔서 나를 변화시키시지 않고 언제나 압도하는 은혜를 주셔서 나를 무릎꿇게 하셨다. 늘 과분한 하나님의 은혜에 이끌리어 오늘도 하나님이 해주시는 역사를 꿈꾸며 살아간다.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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