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5호

기독교 문화와 영성

10/12/14   임성빈

장신대 기독교 윤리학 교수 및 문화선교연구원 원장
장로회 신학대학원 (B.Th., M.Div., Th. M.)
프린스턴신학교 (Ph.D.)
현대 기독교윤리학의 동향 등 21권의 저서 발간

시대적 요청으로서의 기독교적 문화관의 형성

한국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것은 곧 기독교의 대사회적 지도력을 확보하여 주는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한국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영향력과 지도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교회가 순기능보다는 오히려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부정적 평가마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평가들이 등장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인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의 약화와 그로 인한 복음적 삶의 실천의 부족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명목상의 기독교인들(nominal Christians)은 증가하였지만 그들의 신앙과 삶의 이분화는 개인과 사회윤리 영역에서 한국 기독교의 대사회적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와 함께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요인은 교회가 사회와의 접촉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과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세기적 전환기에 처하여 있다. 근대사회를 상징하는 모더니즘도 정착되기 전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후기현대사상이 유입되어 소비문화와 함께 대중문화를 형성, 풍미하고 있으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정생활에서는 여전히 유교적인 도덕에 기초한 전근대적 가치관과 교육이 강조되고 있으나, 학교생활에서는 이성에 바탕을 두면서 자율적인 삶을 지향하는 근대주의적 교육이 행하여지고 있고, 사회생활에서는 '억압으로부터의 저항' '다원성의 추구' '전통에의 강조' 등의 삼중적 양상으로 상징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문화가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혼란 및 갈등현실은 결국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를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를 위협하고 있다. 그것은 젊은 세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대중문화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스타들이 부모나 교사보다 젊은 세대들에게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회현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하여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기독교적 문화관의 형성이다. 한국 교회는 기독교적 문화관의 확립을 통하여 문화적 수용력과 변혁능력을 배양시킬 수 있다. 기독교적 문화관의 정립은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한국사회의 문화통합을 위한 한국 기독교의 시대적 과제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기독교 문화관의 형성을 위하여서는 복음적 영성이 그 기초로서 요청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적 영성의 토대위에서만 확고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기독교적 문화란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교회와 사회가 바로 이 문화를 통하여 만나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아가듯이, 사람들은 문화 안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하나님 찬양도, 하나님 말씀선포도 문화 안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신앙인다운 삶과 선교도 문화 안에서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으로서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당위적인 것이다.
성경이 증거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그들의 문화 안에 담을 것을 제안한다.
은혜: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신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신앙과는 별개의 것인가, 심지어는 신앙과는 반대되는 것인가? 우리가 문화의 어느 영역에서 죄를 발견하느냐고 물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바로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광채를 발견할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과연 우리의 문화는 어느 정도로 우리에게 사랑과 정의와 이웃을 향한 섬김을 가능케 하는 살아있는 신앙의 삶을 표현하는 기회들을 제공하는가를 우리는 은혜의 관점에서 물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인간의 가치에 그 초점을 두는 인간의 존엄성은 기독교적 문화관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우리는 많은 피조물가운데에서도 특별한 가치와 중요성을 부여받았다. 인간이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이 본질적인 존엄성을 갖고 태어났음을 주장하는 신성한 증거가 된다. 인간생명의 신성함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를 말하여 주기도 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존엄성을 고양하는 목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적어도 다른 사람의 존엄성이나 우리 자신의 그것을 해치거나 축소시키는 것을 의도하여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적 문화관은 모든 인간들의 존엄성을 존중함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예수께서 전파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통치되는 영역을 의미하여, 그것은 우리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 이후에 인간의 손길이 덧붙여진 모든 영역인 문화가운데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야 함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역사 하시며, 결국에는 역사 안에서 이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개인과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평화, 정의, 자유, 건강 등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되는 영역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웃사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성숙한 변혁운동이 하나님의 나라운동의 핵심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삼위일체적 존재하심과 역사로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모습을 나타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간의 교제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역사하심은 문화선교가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표본이다. 성부, 성자, 성령님 되신 하나님이 사랑과 교제 안에서 하나이심을 본받아 서로간의 차이와 그에 따른 다양성을 사랑과 교제로 극복하여 하나 되는 삶이 우리 문화 안에서 증거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과 정의: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만약 신앙인의 소명이 이웃과 공동체(인간과 비인간의 세계를 포괄하는)를 섬기는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면, 사랑과 정의는 이러한 섬김이 기독교적 문화가 의미하고 요구하는 규범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연 우리의 문화 한 가운데에서 사랑과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기독인의 사랑과 그것의 삶으로의 적용이 뜻하는 바를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의 삶은 이기심을 극복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전형인 아가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사랑은 자기 자신의 필요를 포기하면서까지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는 삶이었다. 그 사랑이 품는 영역은 무한정 넓고 또한 무조건적이어서 예수님은 죄인들과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긍휼을 나타내고 또한 선포하였다. 그의 삶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 질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이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우리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확증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이 문화의 영역에서도 실제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까? 라인홀드 니버와 같은 이른바 기독교 현실주의자들은 매우 왜곡되어진 사회적 구조 안에서 그 사랑을 직접적으로(directly)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은 이웃의 유익을 구함이 사랑의 목적이기에 정의를 통하여 간접적으로(indirectly) 그 영향력을 모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은 조건적으로 이웃의 유익을 모색하는 정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실제"의 세계에서 사랑은 죄와 악, 또한 상호 배타적이며 동시에 상호 경쟁적인 주장들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는 삶은 결국 우리에게 정의로운 삶을 요구한다.

기독교 문화 형성을 위한 토대로서의 영성

복음과 문화의 변혁적 만남을 유지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은 확고한 영성이다. 전통적으로 개혁교회에서는 영성 보다는 경건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 종교개혁자 깔뱅이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던 '영성'이라는 단어대신 '경건'을 사용한 것은 인간의 감정과 행위의 기반인 마음(heart)으로부터 비롯되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인적인 응답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신비적인 연합(unio mystica)에 역점을 두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은총 입음을 성화의 교리와 연결시키려는 중세의 "영성"에 비하여,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더욱 강조하고 싶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개혁신앙인들도 하나님 경험에 목말라 하고 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 사실 깔뱅 자신 안에서도 이성주의적인 엄격한 면뿐만 아니라 신비주의적인 부드러운 면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범신론적이거나 혼합주의적인 측면에서의 영성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경계할 것이나, 더욱 하나님 중심적이면서도 통전적인 우리의 자세(attitude)와 정향성(disposition)을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기독교적 영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적 문화관의 형성은 신앙인의 삶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영성과 매우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진정한 자아' 와 그 자아에게 삶이 가치와 의미를 주는 '하나님' 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영성은 그 만남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자세(attitude)와 성향 (disposition)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기독교적 영성의 절정이 "인간이 믿음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성부 하나님에게로 이르게 되며(롬8:16-17), 나아가서 예수의 교회와 그 사역에로 인도되는 것(롬12:3-8)"에 있다는 사실은 곧 영성과 기독교적 문화관 형성의 유기적 관계를 잘 나타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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