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5호

사랑의 씨앗이 열매로 영글어

10/14/14   박상복

어유지리 중학원 2회 졸업
경남 창원 장로교회 권사
중고등부 지도교사, 성가대원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어유지리(魚遊池里)라는 작은 산골 마을. 우리 조상들은 이곳을 연못가에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유유히 거니는 평화스런 이름의 어유지리(魚遊池里)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에 믿음으로 사랑의 씨앗을 뿌리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군목님이셨던 김창길목사님.
1966년 국가의 부름을 받아 초록빛 제복을 입고 중위 계급장을 붙이시고 군모에 십자가를 달고 연대의 군목으로 부임하신 김창길 군목님은 아직 20대 후반인 총각목사님 이셨습니다. 키는 작으시고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당당한 장교였고 목사님이셨습니다.
어유지리라는 이름의 뜻과는 달리 이곳은 밤낮 상관없이 확성기로 쩡쩡 울려 나오는 대북방송이 사람들의 가슴을 놀라게 하고 가끔은 지뢰를 잘못 밟아 손발이 잘려 나가거나 죽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전방부대지역이었습니다. 밤이면 민가에 아직 전등이 없어 석유초롱을 켜고 사는 캄캄한 세상이고 민가가 드믄 드믄 떨어져 있는 외로운 지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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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전 군목님은 오셔서 빈 벌판에 큰 자갈돌로 세워진 어유지리 감리교회에서 주일이면 군인예배를 드리고 사택에 숙소를 정하시고 나중엔 군종사병들과 함께 방을 늘려 사셨습니다. 목사님이 부임하시기 전에 임진강 가에서 미군들과 한국군들이 돌을 주워다가 민간 감리교회당을 예쁘고 아담하게 지어 주었지만 민간인들이 그 교회를 이끌어 갈 능력이 없었지요. 목사님은 연대군목과 민간목회를 겸하여 하셨습니다. 군목님은 가난과 두려움과 공포로 불안해하는 농촌민을 위해 대민사업으로 학교를 시작하여 부모들이 일터에 나간 후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어유지리를 중심해서 십여개 리(里)는 6.25 전쟁 전부터 살아오던 원주민과 전쟁 후 후방에서 농토를 개발해서 농사를 짓는 가난한 빈농들이었지요.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합동예배를 드리고 군목님과 군종사병들이 지역의 가난하고 불쌍한 소년소녀들이 사는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배움의 길을 무상으로 열어 주겠노라고 설득하여 모여 든 학생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두가 친구가 되었고 형, 누나, 동생이 한 식구가 되었지요.
어유지리 중학원이 발전하면서 나원균(바오르)군종하사관께서 서울로 휴가갔다 오실 때 교과서를 한 보따리 가져 오신 일, 김춘길선생님(고 감리교목사)께서 교복을 만들자고 제안하셔서 우리는 교복을 입고 남학생들은 모자를 쓰고 소년소녀들은 뺏지를 달고 의젓한 중학생으로 태어 나 어깨가 으슥하던 일, 정말 저희들은 학비없이 공부했지만 더 큰 것은 선생님들의 사랑과 배려와 믿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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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교회당 안에서 교과서 하나 가지고 둘, 셋 같이 보며 공부했습니다. 띄엄 띄엄 들어 오기 시작한 학생이 몇달만에 40명이 넘었습니다. 점점 학생이 늘어나자 목사님은 교과서를 서울에 가서 구입해다가 각각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 사비를 들여 세상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중요시 하셨는데 매주 수요일 첫 시간을 예배시간으로, 목요일 첫 시간은 성경시간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군종사병으로 저희들의 스승이 되셨던 나원균(바오로)신부님(지금은 몬시뇰, 서울교구), 김춘길목사님(고인, 감리교목사로서 나중에 어유지리교회 담임목사님이 되심), 백낙전선생님(연세대 음대), 이의준목사님(감리교 목사은퇴), 황상호목사님(러시아 선교사, 고신), 조한권선생님(경희대), 한충우목사님(침례교 목사은퇴) 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창길군목님은 3년을 80연대에 근무하시고 육군본부 여군훈련소 군목과 육군본부교회 부목사님으로 떠나시고 군종사병 선생님들도 제대하시면 또 다른 분이 오셔서 가르쳐 주고 학생들도 졸업하고 새로운 학생들이 입학하다가 급기야 동네가 인정하여 국가가 정규 중학교로 인가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창길목사님은 부대생활과 교회 목회와 학교 행정도 바쁘셨을 텐데도 우리 학생들의 가정 환경과 사생활을 체크하고 계셨습니다. 교실이 없고 해서 교실을 지으려고 밀집모자를 쓰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데리고 산에 나무하러 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연대장님의 도움도 받고 동두천에 있는 미군 2사단 군목의 도움을 받아 교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목을 골라 남학생들은 베고 지고 여학생들은 개천가에 가서 돌을 주워 가마니에 실어 끌고 오고 흙을 날라다가 손수 교실을 지었지요. 아마 한 달이 넘어 교실이 완성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움막이라 할까, 볼품이 없었지만 멋진 교실이었습니다. 그다음 다시 시멘트 블록으로 큰 교실 3채를 지었습니다. 찬 바람이 몰아치고 흰 눈이 넓게 덮히는 빈 들판에 우뚝 선 어유지리 중학원 사랑의 교실이었습니다.
긴 나무의자를 책상으로 삼아 가마니를 깔고 여럿이 함께 앉아 선생님의 영어 발음을 따라 A B C D를 배우고 단어와 문장을 익혔습니다. 수학선생님을 통해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배워 장부 만들기와 주산을 배우고, 김춘길선생님을 통해 글짓기, 글 감상을 통해 국어를 배웠고, 백낙전선생님과 한충우선생님을 통해 찬송가와 가곡을 배우고 전임순 선생님을 통해 한국고전무용을 배웠습니다. 우리들은 소프라노와 앨토로 합창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큰 발전입니까?
점심도시락을 먹으려고 열어보니 개미가 새까맣게 들어 가 못 먹고 굶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맘이 상했었죠. 지금은 모든 일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겨져 있지만.... 그렇게 시작한 어유지리 중학원이 이제 어엿한 공립 중학교로 문교부가 공인한 어유지 중학교가 되었습니다. 김창길군목님이 푸른 제복을 입고 20대에 최 전방부대 지역에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지금 믿음의 열매를 얻으신 것입니다.
그 때에 배운 학생들 중에 강신관, 김영이, 봉원재는 먼저 하늘나라에 갔고 남은 모두는 한명도 탈선한 이 없고 사회와 교회를 위해 봉사 충성합니다. 동네 이장으로, 목장 운영자로, 친환경 농장 경영자로, 회사 사장으로, 회사 직원으로, 교회 장로와 권사들로, 성당에 다니는 교우로,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부모로, 믿음을 지키며 사명자로서 굳굳이 대한민국 각 지방에 흩어져 삽니다.

김창길 목사님!
감사 또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그때 우리 어유지리 중학원 출신으로 군종참모가 되어 목사님이 근무하셨던 80연대에 군목으로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대전에 가 계신 저희 후배, 또 목사님 되신 분들이 나오셨습니다. 김창길 목사님, 기억나세요?

봄, 가을 김신조가 넘어 왔던 감악산으로, 임진강 가로 소풍가서 백일장, 보물찾기, 즐거운 게임, 친구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떠들던 십대의 추억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해요. 그땐 우리는 10대 중반, 목사님은 20대 후반 젊은 날들이었습니다. 운동회 날이 오면 온 동네가 잔칫날이 되던 때, 500여명 이상이 모여 미군 짚차들이 지나가며 사진찍고 좋아하던 모습. 가을엔 코스모스 꽃길에 꽃잎을 따서 목사님들과 선생님들께 뿌려 드렸는데 기억나시는지요? 잠시 쉬는 시간에 찬송을 부르면 어찌 화음이 그리 잘 맞는지요? 유난히 함께 찬양하기를 좋아하셨던 목사님. 지금도 함께 부르고 싶어요. 우리들이 한복을 입고 추는 군무에 찬사를 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던 목사님. 우린 그때 신나고 흥겨웠습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뿌려진 믿음의 씨앗이 이번에 오셔서 보셨듯이 모두가 감사 또 감사하며 멋지게 사는 모습을 보시는 목사님, 우리는 사랑의 씨로 잘 자란 열매가 아닌가 싶어요. 목사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사님을 따라 사는 믿음의 계보입니다. 학교에 오면 "책상 앞에 앉아 하루 공부를 위해 지혜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던 목사님. 먼저 기도와 믿음으로 하는 생활을 가르쳐 주셔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지혜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아들 기훈이를 그리 가르쳐서 말씀 안에 순종하는 생활로 모범생으로 삽니다. 지금 결혼해서 큰 인물은 아니어도 좋은 제약회사의 연구실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있답니다. 지금 저는 창원에 있는 장로교회에서 청소년 지도를 맡고 있으며 성가대원으로, 권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늘 건강하시기를. 하나님의 은총이 수도원과 두분 목사님께 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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