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10호

예수님이 드리신 기도

10/26/14   김창길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 원장
뉴저지장로교회 원로목사
해외 한인장로회 뉴저지노회 공로목사

이 글은 5월 19일 뉴저지 초대교회 소망회에서 행한 원고입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성경본문은 현대인의 성경(생명의 말씀사)을 사용했습니다.  - 편집자 주 - 

부족했던 기도
난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기도를 듣고, 보고, 직접하면서 자라왔으며 주일학교 교육을 통해 고사리 같은 두손을 모으고 머리숙이는 기도훈련을 받는 분위기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시절 어른들과 함께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면 시간이 짧든지 길든지 상관없이 기도로 이어지고 기도에 대한 거부감이나 의문은 없었습니다. 철이 들면서 하루에 세끼 밥먹을 때든지 또는 간식을 앞에 놓고 감사기도하는 일, 잠잘 때 어머니가 오셔서 취침기도를 해주시거나, 자기 전에 기도하고 자라고 챙기시는 때마다 똑같은 기도를 반복해야 하는지, 매일 감사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의무적 책임으로 기도할 때 몇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60여년 전, 6.25 피난시절, 부산 범천동 가야산 아래 미실회(순교자 유가족들이 살던 곳)에 살던 어느 날, 이웃집에 살던 소녀(서울 해방촌교회 순교자 허목사님의 막내딸)가 하교 길에 노래 부르며 철로 위로 오던 중 디젤엔진 기차에 치여 그만 숨지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맑고 환하던 하늘에 시커멓고 캄캄한 성난 먹구름이 덮치더니, 순식간에 광풍이 몰아치고 우뢰와 번개가 요란하게 소리치고 번쩍이더니, 하늘로부터 소낙비가 쏟아져 길가의 하수구가 넘치고 차량들과 행인들이 뜸해졌습니다. 소녀의 죽음 때문에 하늘이 억울해서 그런가, 아니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려는 징조인가? 유리 창문 밖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빈방 한구석에서 쪼그리고 있다가 무릎꿇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 후, 비는 그치고 새파랗게 하늘이 개여 따가운 햇빛은 슬퍼하는 미실회사람들에게 비취었습니다.

고교시절 어제까지 건강하고 친했던 짝이 갑작스레 급성 뇌막염으로 죽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비어있던 옆자리가 허무했습니다. 맘이 허전해지고 고독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랫동안 영혼의 방황을 했을 때, 교목이던 김창일목사님과의 상담과 기도로 고민을 털고 일어 선 사춘기 시절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무서워할 때, 죽음을 보고 나약해지려는 때, 전쟁 피난시절 가난 때문에 어쩌면 고아원으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막다른 길목에서, 공부가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기도는 나에게 힘이 되었고 앞길을 헤쳐나갈 용기를 주었고, 무엇보다 믿음을 주어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되어 새출발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신학생 시절과 목회할 때 기도는 언제나 나의 시간표에 우선이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치고 힘들 때 문제의 벽에 부딪쳐 낙심되어질 때 기도하면 문제들이 녹아져 버렸습니다. 설령 문제가 그대로 있더라도 그것이 문제로 남지 않고 은혜로 바꿔주셨습니다. 기도로 이민목회를 버티어 갈 수 있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로 시작해서, 교인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과 문제에 붙잡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같이 기도하면서 어떤 때는 형제자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그들의 문제가 나의 문제로 변해 마음이 심각해지고 답답해지고 괴로워지곤 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만나고 난 후 좀 후련해지는 것 같은데 도리어 저는 그 아픔이 나의 육신의 병으로 남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기도할 것을 찾아 부지런히 바쁘게 다녔습니다. 강대상 아래에서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기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은퇴 후,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Protestant abbey mission: PAM)를 시작하면서 지난 날 나의 서툰 기도생활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기도를 드렸는가?
목사란 직책 때문에 의무감에서 기도드리지 않았는가?
형식적인 기도는 하지 않았는가?
나의 열성과 정성, 나의 주장이 하나님 뜻보다 앞서
가지는 않았는가?
말로 만 (많은 말, 큰 소리)하고 행함이 없는 기도는
아니었는가?
진정 죄인의 심정으로 기도했는가?
국가와 위정자들 위한 기도는,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는
얼마나 드렸는가?
남북한 통일과 북한 동포를 위하여 자주 기도를 드렸는가?
노회장, 총회장을 위한 기도는, 타 교단과 타 교단
지도자를 위한 기도는 얼마나 드렸는가?

제가 드린 기도를 생각하면 두렵고 떨립니다. 남을 위한 기도는 부족했고, 꼭 드려야하는 기도는 빠트리고 잘못 구한 것 투성입니다. 이제 주님이 받으실 기도로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드리셨던 기도에서 본을 찾아 봅시다.

기도의 본질

기도에서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신학적인 완벽한 논리 전개도, 예술성과 문학적인 문장구사도, 독특한 은사체험도 모두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드리셨던 기도의 기본을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26:36-46절에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에 본질이 짤막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류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시다가 드디어 인류구속사업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가르치셨던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에 기도하시려고 가셨습니다. 제자들을 한 곳에 머물며 기도하게 하시고 그 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얼마 더 떨어진 곳에 있게 하시고 예수님은 몹시 괴로워 하시며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면서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더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땅에 엎드려 절실히 기도드립니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26:39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이 기도를 마친 후 주님이 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을 때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희가 한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하시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정신차려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약하구나" 하시면서 두 번째로 다시 기도하시던 자리에 가셔서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떠날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26:42 May your will be done)" 라고 두 번째 기도를 마치시고 다시 세 제자가 있는 곳으로 오셨을 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잠자는 제자들을 그냥 두시고 세 번째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같은 말씀으로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마26:44, Jesus prayed the third time, saying the same thing.)"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 똑 같은 기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속사를 담당하는 중차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간에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말해줍니다. 주님의 이 기도 모습이 기도의 기본이요 본질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인간이 원하는 소망, 나의 원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잘되고 복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다."(요한6:38)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될 때 완전한 기도가 됩니다. 이제 우리 기도의 우선순위가 인간성취와 세상욕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변해야 합니다. 사업이나, 자녀나, 교회를 위한 기도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이루어지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주역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감정과 기분으로 하는 기도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 하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통한 세계평화를 기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것인가? 성경을 통해서 입니다. 읽고, 듣고, 배우고, 쓰고, 암송하고 더우기 말씀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우칩니다. 이 일은 성령님의 감화와 지도, 인도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주님의 뜻을 들을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때론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도 주님의 뜻을 일깨우는 지혜를 갖게 됩니다. 나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뜻에 합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기능

기도는 독백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는 상대방이 있어 듣고 의사소통하는 것입니다. 영원불변하시고 나의 모든 것을 다 헤아리고 계시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치료가 됩니다. 기도를 하면 기쁨과 소망이 생깁니다. 내가 혼자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으로 어느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인격적입니다. 기도를 통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로 되어 집니다.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심과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심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기도는 호홉입니다. 호홉이 끊어지면 죽습니다. 살았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기도가 없으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만일 기도생활이 시원치 않으면 시험에 들게 되고 연약한 신앙이 됩니다. 우린 매일 매시간마다 숨을 쉬는 것처럼 기도도 삶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하지 못하는 새벽기도를 하면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1906년 길선주목사님이 시작한 새벽기도 회개운동은 평양 장대현교회를 넘어 전국의 교회로 퍼져 나갔습니다. 지역을 넘어 교파를 넘어 퍼져 나갔습니다. 기도는 생명이 있기에 힘과 능력을 받아 세대의 벽을 넘어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한 것은 뜨거운 새벽기도의 역할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아침마다 내 소리를 들으실 것입니다. 내가 주께 기도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응답을 기다리겠습니다(시5:3)".
"내가 아침에도, 정오와 저녁에도, 안타깝게 부르짖을 것이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실 것이다."(시편 55:17)
다윗은 아침과 낮과 저녁에 3번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튿날 낮 12시쯤 되어 그들이 욥바 가까이 갔을 때 베드로가 기도하러 옥상으로 올라 갔다."(행10:9)
"어느 날 오후 3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행3:1)
베드로와 요한은 낮시간에 기도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눅6:12)
예수님은 밤기도와 철야기도를 종종 하셨습니다.
시편시인은 "여호와여, 내가 밤에도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생각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기독교에 입교한 후 매일 3회 기도시간을 정하고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요한계시록을 암송하고 정오와 밤에 정시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김인서:신앙생활 1936. 1 28쪽)
우리의 기도가 형식화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새벽미명에, 낮에 전도하시고 병자를 고치시면서도 밤기도를 하셨습니다. 요사이 저는 혼자서 묵상기도를 합니다. 제가 침묵할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날 너무 많은 설교로, 나서서 하는 기도로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젠 조용히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소망회 여러분! 우리의 인생여정이, 예수님처럼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원대로 내가 좌지 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십시다. 언제나 기도드릴 때 주님의 음성을 듣기에 힘쓰고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돌림으로 부르는 재미있는 성가가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언제나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소망회 되시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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