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6호

수도원(PAM)의 영성으로

11/03/14   김창길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 원장
뉴저지장로교회 원로목사
해외 한인장로회 뉴저지노회 공로목사

2012년 12월 5일 오후 4시 은퇴예배 드리는 중 답사시간에 나도 모르게 두가지 말이 튀어 나왔다. 그 하나는 내가 뉴저지에 사는 동안 뉴저지장로교회에 매주일 1부 예배에 교인으로 참석할 것과 두번째로 은퇴후 개신교 수도원 운동을 할 것이라고 공포했다. 그 때부터 수도원사역을 놓고 기도하며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주위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김목사는 아직 힘이 있고 정정하니 은퇴 후에 할 일을 기획하고 준비하라"는 말을 해 주었을 때 그런 말이 귀에 들려오지도 않았고 맘에 내키지도 않았다. 나를 아끼는 맘에서 나오는 이야기겠지 라고 무시해 버렸다. 그저 나는 이제부터 목회에서 자유하고 싶고 조용히 쉬고 싶었을 뿐이다. "은퇴하면 그만이지 또 할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누가 나를 기억해 준단 말인가? 그냥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지난 날에 남편노릇 못한 것 하고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여행이나 하지"라는 생각이 내 맘 한쪽에 단단히 깔려 있었다.
공개석상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어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의심스런 발언이다. 아마 그 순간 나의 말이 아니라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발언을 했나보다. 말을 했으면 책임이 따라야 하지 않는가. 지금 수도원 운동을 하려면 당장 어느 누구도 도와 줄 사람이 없고 재정도 무일푼 맨 주먹이다. 그리고 수도원에 대하여 아는 게 없어 공부해야 한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고 목회자이다.

오늘의 한국교회 실상

한국교회가 선교 130년을 헤아려 가면서 눈부시게 발전하고 크게 부흥했다. 부흥과 발전의 결과로 우선 교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교인이 많이 모이니 당연히 헌금이 많이 모여져 교회는 풍요로워지고 돈이 많으니 교회와 교회지도자가 사치해지기 쉬웠다. 사치하면 부정과 비리가 생기게 된다. 이런 상황은 한국교회만이 당하는게 아니라 한국사회가 당하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교인들이 많이 모이니 모일 수 있는 큰 교회당을 지어야 하는 필수조건이 생기고 이왕 교회당을 지을 바에는 하나님의 집이니 거룩하고 분위기 있는 모양으로 지어져야 한다는게 교회의 변이다. 교회들은 서로 경쟁하여 더 큰 규모와 평안하고 화려한 최고급의 시설을 꾸미고 사람들에게 선전하여 모이라고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교회는 큰 교회당이고 최신 고급 교육시설과 매스 미디아를 설치하며 전문가들을 다양하게 고용하고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하는 교회로 인식되어졌다.
현대사회가 다양화된 사회 속에서 전문화와 비대화가 이루어지면서 교회도 비즈니스처럼 마켓팅 매니지먼트(Marketing Manegement)를 한다. 포스트 마더니즘은 정치, 경제, 문화에만 영향을 주는게 아니라 종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교회는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고 있는가?
조선 초기엔 서양 선교사들이 복음을 가지고 와서 도회지와 시골에 말타고 찾아가서 쪽 복음을 전하며 초갓집과 기왓집을 교회당으로 만들었다. 평신도 자주력을 길러 주었다. 조선교회는 당시 문맹퇴치와 여성 인권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민중을 깨우치고 병들고 약하고 가난한자들을 위해 병원을 세워 황실의 황족과 서민들의 병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살게 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해 고아원과 모자원을 설립해 소외된 자를 구제하며 불쌍한 자를 봉사하여 사회를 변혁시켰다. 조선교회는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해 주신 조선 민족해방 운동에 앞장섰으며 일제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교회는 감옥에 투옥된 자와 순교자가 많이 생겼다. 6. 25 사변 때 남한 신자들과 목회자 중에 납치되거나 순교한 이들이 많았다.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그 터가 더욱 확고히 세워져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복음적 교회로 한국사회와 세계를 향해 전도하는 교회가 되었다.
1995년도부터 한국교회의 기독교인 수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계속적으로 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이 조국 대한민국의 해방과 독립을 주시고 남북한의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남한의 정치발전과 경제성장 그리고 각 분야의 세계적인 인지도와 영향으로 대한민국은 G12 정상국에 오르게 되었다. 교회의 가치관은 물량주의와 황금주의에 눌리게 되고 내면성(신앙)을 중시하는 것보다 외형적인 것에 지나치게 가치를 두는 까닭에 교회는 사회를 향해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채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연약한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회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교회, 가짜 학위라도 주저없이 탐하는 교역자, 진리와 사랑을 말하면서 싸움 잘하고 갈라지는 교단, 교역자의 자질문제와 질적저하. 크고 수가 많으면 성공했다는 교회의 가치관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특히 젊은 세대들은 비판하면서 그것을 따라가고 있지 않는가?

한국교회에 대한 나의 개인적 제언

1. 한국교회가 일제 탄압과 공산치하 핍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쟁취하였는데 지금의 교회는 부여된 자유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다. 독립을 위한 선배들의 고난을 기억하여 교회는 절제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데 힘쓰기를 바란다.

2. 교인들이 존경하고 사회가 인정하는 목회자의 자질 회복과 양성. 교회에서 목회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인보다 목회자의 문제가 더 크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3. 오늘날의 개신교 정치구조로서 특히 장로교회의 정치제도는 타종교(캐톨릭, 불교, 원불교, 모슬렘)와 견주어 볼 때 사회적인 영향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4. 소명과 사명에 불타는 예수님을 닮으려는 성품을 가지신 책임있는, 실력있는, 경건한 목사님(Reverand)을 안수해 주시기를 바란다.

5. 한국교회는 보수정통과 진보자유가 그냥 둘이 팽팽하게 싸우면 얼마 안가서 둘다 죽는다.; 양편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상호 보완하면서 전도와 선교, 교육과 봉사, 국가와 사회 구원을 위해 함께 가야한다. 천국엔 보수와 진보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살 동안만 사람들이 편의에 따라 나누는 것 뿐이다.

6. 현대 한국교회가 물량주의, 물질 만능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사치, 외형을 중시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7. 지방색을 가리는 것, 출신 찾는 것, 학교 따지는 것, 부유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가짜박사 학위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열등감을 없애야 한다)

8. 광고, 선전, 감투 등 show up 하는 것보다 내면적 영성 추구가 절실하다.

9. 교회가 말과 이론과 설득이 무성한 곳이 아니라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10. 사람을 살려내는, 인물을 길러내는 교회였으면 좋겠다.(교회크기 자랑보다 우리 교회에서 누가 세례를 받았다, 누가 다녔다, 우리 교회의 전도상황 등을 말하는 교회)

왜 하필 PAM(개신교 수도원 수도회)인가?

기독교 2000년 역사 중 개신교회의 역사는 고작 500년이다. 수도원에 대한 전통은 동방교회나 캐톨릭교회가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수도원의 시작과 발전과 실패를 다 경험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수도원의 은둔적인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틴루터는 수도승으로 신부를 파계하여 수녀와 결혼했다. 루터는 경건과 청빈을 독신으로 사는 것만으로 규정한게 아니라 가정을 가지므로 독신자들이 못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이루는 것을 신앙했다.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PAM)의 신학은 개신교 신학의 모토인, 오직 말씀만으로, 오직 믿음으로만, 누구나 제사드릴 수 있는(만인제사론)에 근거한다. 바울, 어거스틴, 루터, 깔뱅, 녹스 등 신학에 근거한다.
우리들의 생활과 믿음의 절대권위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 행위로 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자녀가 되어 담대히 예배드리러 나갈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쉽게 이야기해서, 캐톨릭이나 동방교회에서 행하는 성모 마리아 무죄설로 예배의 대상이 된다거나 성인들을 예배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연옥설도 믿지 않으며, 교황의 절대권위도 인정치 않는다. 교회당 안의 복잡한 장치나 순서를 우리는 욧점을 살려 간편하게 한다. 캐톨릭이나 동방교회가 우리와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지 못한 복음적인 요소가 있다면 옳다고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싸잡아 정죄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눈은 성경적으로 복음적이고 좋은 장점을 찾아 배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PAM의 모토는 요약해서 3가지이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이 발견되면 똑똑한 후배들이 창안하면 계속 더 생길 수 있다.

첫째는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우리가 통하는 생명줄은 기도이다. 기도는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대화는 진실, 정직으로 이어진다. 기도는 사람과 하는 대화가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하는 대화이다. 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피차 상호대화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했다.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갔다가 돌아와서 주님께 보고하면서 주님이 하셨던 대로 했는데 왜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 주님은 모든 것 다 했더라도 기도가 없으면 안된다고 기도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하루 전체가 기도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길선주 목사님이 시작하신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한국교회의 자랑과 전통이다. 얼마나 많은 새벽기도회의 기적과 부흥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는가? 우리들의 신앙성장과 교회의 부흥은 기도없이는 안된다. 그래서 하루를 시작할 때만 기도하는게 아니라 하루 종일이 기도생활이 되고 일년 내내 우리의 일생이 기도생활하자는 것이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할 때에 기도하는 시간이나 기도의 길이는 각자 자신의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한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주님과 만나는 것이다.
때론 큰 소리로, 작은 소리로, 묵상과 침묵으로, 몇 명이 함께 할 수도 있다. 쉬운 것 같지만 실천해야 한다. 기도하면 힘이 생기고 얼굴 빛이 변하고 눈동자가 달라진다. 기쁨이 충만해지고요. 내 인생이 기도하는 삶이 되어질 때 얼마나 신나는 삶이 되는지 모른다.

두번째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성경읽기도 각자 형편 따라 읽으면 된다. 읽은 후 맘에 부딪혀 오는 단어나, 구절을 가지고 10분-12분 동안 가량 침묵한다. 옛날에 설교를 들었던 내용을 연상하지 말고 그 순간 부딪쳐 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몇 번 수십번 넘게 읽었던 말씀이지만 새롭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처음으로 읽는 심정으로 내게 들려 주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씌여진 말씀이기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깨달을 수 있다. 말씀을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수도원 운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운동이다. 기도할 때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없이 기도만 하면 신비주의나 기복주의에 빠질 염려도 있다. 기도는 말씀을 기초하여 드려야 한다. 성경을 논리적으로나 지적으로 합리적인 해석을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셋째로 하루에 한가지 선한 일을 하자.
예수님이 원하시는 착한 일을 실천하자.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많이 읽어 성경 지식이 많지만 행동이 부족하다. 믿음은 좋은데 실천이 부족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말도 잘하고 이론에도 밝아 토론하면 이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을 실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간도에 이민가서 명동학교에서 예수 믿고 명동감리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를 하셨다. 100여년전 이른 아침에 해란강가에서 청소년 100여명을 모아놓고 하루에 한 가지씩 선한 일을 하게하고 이 일을 실천한 사람은 실 목거리에 조그마한 과실을 구이게 해서 청소년 예배 때 시상식을 했다는 이야기를 연세대 교목이셨던 나사행 교수님이 쓰신 글에서 읽었다. 그래서 아버지 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Copy한 것이다. 100여년전 만주에 이민간 청소년 동포들이 했던 그 일을 오늘 미국과 한국 세계 각지에서 실천해 보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 항목 중에 세 번째가 제일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실천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눔을 베풀어야 한다. 나눌 때 마음이 더 풍요해 진다. 나의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사용할 때 상대방은 작은 예수님을 만난다.

주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까지 주시려고 오셨다.
"내 너를 위해 몸버려 피 흘려 주었다. 그러나 지금
너는 날 위해 무엇을 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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