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소리
4호 (Dec. 2013)

주체성

11/04/14   김창길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 원장
뉴저지장로교회 원로목사
해외 한인장로회 뉴저지노회 공로목사

이글은 지난 9월 19일 -20일, Salvation Army Jacksons Point에서 해외한인장로회 카나다 동노회 제59회 노회기간중 교육세미나 1강을 실리는것이다. (편집자 주 )

우리들이 캐나다에 이민 와서 5년, 10년, 20년, 30년 넘게 살아 갈수록, 캐나다에 와서 해외 한인 장로회 노회를 만들어 59회기(30년)을 훌쩍 지나 보내면서 우리들은 자신에게 "Who am I ?" 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면서 산다. 가끔은 "Where are you now?"를 뇌까리며 이렇게 여기 살아도 괜찮은 거야를 자문해 본다.

그래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What are we doing now?)를 심각하게 나 자신에게 반문하면서 지금 너희 이름 o o o 가 맞아(What's your name?), 틀림없지? 라고 물어보기도 하지만서도 어정쩡하게 지나쳐 버리고 만다.
인류역사 중에 원시생활이 끝나고 이성이 작동할 때부터 철인들은 숱하게 인간의 실존, 정체성 곧 주체성이나 자아인식에 관한 질문을 해왔다. 고대 철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Socrates 는 "네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는 명제를 남겼고 근세에 와서는 Descartes 는 "꼬지또 에르고숨(I think that I am)" 나는 생각하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Pascal 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고 말했다. 이 모든 말은 인간 존재에 대한 주체성을 말해주고 있다.
주체성은 꿈과 비전에 관련되어 있다. 주체성이 확립되어 있을 때 미래의 밝은 소망이 있다. 캐나다 이민자의 주체성은 이 땅에 살아야 하는 소명의식 즉 목적의식과 현재의 사명감을 인식하고 미래 희망을 향해 오늘 열심히 충성할 때 한민족은 캐나다에 새 역사를 창조하고 이 땅에 영향력 주는 민족이요 캐나다 연방에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 주체성은 역사의식을 갖고 지금만 보는 게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보이는 것만 찾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물질적인 것만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문화적인 가치에 중요성을 두며 부분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지난날 한국 기독교계를 살펴볼 때 1970-1980년대는 구원의 확신 문제로 born-again, 거듭나느냐? 는 이슈로 Para Church 와 구원파의 도전을 받아 전통적인 안일한 교회구조와 신앙생활에서 구원의 강조와 구원체험을 강조하게 되었다. 1990년대는 Discipleship(제자훈련)이 강조되면서 셀(Cell) 교육에 강조하게 됐다. 2000년대는 Spirituality(영성)를 강조하면서 시대 따라 유행이 지나가는 것처럼 교회는 변모해가는 데 힘겨웠다. 한국교회가 이것으로 안되면 저것으로 확 쏠리고 주관과 주체성 없이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어떤 것이든지 관계없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개신교 신학에 입각해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커리큘럼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유행을 타듯 교회들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열린 예배나 복음성가 사용은 무조건 100%를 수용하고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우리 교회 상황에 맞게 선택되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1.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막5: 9)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하신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그 사람의 근본적인, 원천적인 정체가 무엇인가를 나타내려 함이다. 이름은 그 사람, 그 사물의 정체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름은 고유명사이다. 나만 가지고 있는 이름, 타인과 구별하기 위해서다. 서양 사람은 First name이 먼저 오고 Family name은 나중에 온다. 그러나 동양 사람은 반대로 성(Last name) 이 먼저 오고 First name이 나중에 온다. 한국이름엔 돌림자가 있고 서열이 있다. 한국이름엔 혼이 있고 철학이 들어 있다.

예수님은 제자를 삼을 때 이름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어부였던 시몬은 반석을 나타내는 베드로로 바꿔 주시고 앞으로 그의 위대한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을 보셨다. 유대 동포들의 세금을 착취하던 세리 레위를 마태로 이름을 바꾸어 성경저자와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했다. 아브람이라는 평범한 한 가정의 아버지를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만민의 아버지로 삼으셨다. 큰 자라는 사울을 바울로 바꾸어 작은 자로 겸손하게 섬기는 종으로 만들어 유럽선교를 시작하게 하셨다.
오늘 우리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장로입니다.
목사입니다.
Korean입니다.
Canadian입니다. 아니 Korean-Canadian입니다.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백인들이 보기에 좀 적어 보여도, 좀 어눌해 보여도, 좀 가난하더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창1: 27, 28)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다. 목사와 장로의 소속은 하나님의 것이다. (사43: 1)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적어도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고 주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릴 굳세게 붙잡아 주는 사람이다. (사41: 10)
영어가 서툴고 캐나다 문화에 익숙치 못하여 주류사회에 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자. 우리끼리만 통하는 옛날 것을 고집하면서 서울을 캐나다에 옮겨 놓아 게토(Ghetto)를 만들지 말자. 캐나다에서 자신 있게 살자. 우리들의 이름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뿌리가 있다. 아무리 낯선 환경에 몰아침을 당해도 한국교회 신앙의 뿌리가 있기에 당당할 수 있다. 뿌리 없는 나무는 마르고 죽어버리지만 땅속 깊이 뿌리가 묻혀 있는 나무엔 생명이 있어 추운 겨울을 지나 때가 되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2. 네가 어디에 있느냐? (창3: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인간의 위치를 확인하는 음성이다. 장로와 목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다르다. 그 위치를 혼동하면 안 된다. 백성이 대통령이 되거나 대통령이 백성이 되면 혼돈과 무질서상태가 된다. 학생이 교수 자리에 있고 교수가 학생이 되면 배울게 없어진다. 엘리베이터의 버턴을 잘못 누르면 엉뚱한 층에 도달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는 소리는 죄의 지적이다. 죄 짓고 숨은 아담에게 그의 위치를 가르쳐 주는 친절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인간들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시기 원한다.

목사의 자리 - 생명을 거는 말씀 증거, 교우를 위한 끊이지 않는 기도, 성도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 가는 심방,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삶,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의의 실천자, 영적인 아버지 자세, 목사는 독주하지 말아야 한다.

장로의 자리 - 목회자의 협력자, 교인들의 솔선수범의 모범자, 나그네 접대, 언행일치, 돈에 깨끗해야 한다. 목사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목사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한다.
가끔 목사와 장로는 하나님을 피해 숨고 있거나 자기의 것을 가리고 숨어 있지 않는가? 죄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라, 예수님, 세례 요한, 제자들이 첫 번째로 외친 말씀이 회개하라 이다. 사도들의 설교에 회개하라는 말씀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죄를 지적해 주어야 하고 목사는 교인을 향해 회개하라고 설교해야 한다. Korean-Canadian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풍요롭고 편안한 물질생활에 만취하지 말고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를 위해 살아야 한다. 캐나다에 온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신앙을 지키고 영혼구원과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서 왔다.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 살고 있다. 위치를 착각하지 말고 살자. 한국과 캐나다의 좋은 전통과 가치관을 이어가고 캐나다와 한국의 나쁜 습관과 허풍은 과감히 버리는 개척자, 선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또 1세와 2세와 3세가 평화롭게 하나로 뭉쳐지는 bridge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린 중간에 서서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한국인만이 아닌 캐나다인만이 아닌 두 민족이 아닌 두 민족의 개념을 넘어 양쪽의 장점을 살려 제3의 세계인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물질과 정신을 포함하는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3,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빌3: 13)

이민 목회자는 너무나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바울은 한 가지 일에 집중했다. "But one thing I do" 오직 한 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쫓아가는 생활. 오직 예수에게 만 집중할 때 세대에 남는 인물이 된다. 성공하는 사람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한다. 한 가지 일에 생명을 바쳐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려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 (빌3; 13)

과거 한국생활의 향수에 집착하면 캐나다 생활에 실패한다. 바울은 회심 후 예수님의 전도자가 되었지만, 과거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스테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것에 대한 죄책감과 현재에 그 일과 관련되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인식할 때 죄의식에 사로잡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과감하게 과거를 잊어버리고 용서 받은 사명자로 달려갔다. 과거의 죄의식은 어깨를 못 펴게 한다.
심리학자들은 과거 행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미래에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scruple 양심의 가책이라는 단어를 쓴다.
scruple은 라틴어 scrupulum에서 파생된 것인데 scrupulum 은 조그만 모래알 같은 작은 알맹이를 뜻한다. 운동화 안에 조그만 돌이 들어 오면 걸을때마다 간헐적으로 통증을 느끼게 된다. scruple을 Webster사전이나 일본어 사전을 찾아 보니 망설임, 주저함, 멈짓하는 것으로 씌어져 있다. scrupulous한 사람은 인생을 살아갈 때 때론 죄의식으로 인한 자책감과 통증으로 괴로워한다. 바울이 scruple(양심의 가책)을 극복했던 것처럼 우리도 용서받은 사명자로 달려가야 한다. 한국이민자들은 유교문화에서 영향받은 수줍음, 주저함을 버리고 소명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전통에서 벗어나고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파벌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민 목회자들은 본분인 말씀 증거하는 일이 첫번째이다. Social Service는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봉사하게 해야 한다. 본업과 부업을 구별하라. 절대로 목회의 본질을 양보하지 말라. 일주일 동안 심령의 갈급함을 가지고 찾아 온 양들에게 신령한 꼴로 먹여라. 말씀선포의 권위를 놓치지 말라.

4.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창12: 1-4)

순례자냐? 나그네인가?
나그네는 감정의 자유 함을 따라 지성의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고, 의지에 붙잡히지 않고, 고향을 떠나서 목적 없이 정처 없이 사는 낭만적인 사람이다. 방랑하는 김삿갓 같은 사람이다. 순례자는 어느 특정한 곳을 절대화(Absolutism) 하지 않고 현재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부르시는 곳으로 떠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는 사람. 인간이 영원히 거할 곳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의식을 가지고 이 땅에 특정한 곳에 집착하거나 어떤 것에 지나치게 애착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언제든지, 어디서나, 어떤 곳으로든지 떠나 다니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순례자의 아픔, 순례자의 축복, 순례자의 삶의 방식, 순례자의 사명을 함께 나누어 보자.

1) 순례자의 아픔.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가는 것, 더구나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불안정한 삶은 안정된 삶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순례자 아브람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히11:8) 그러나 순례자로 부르심 받은 우리는 주님의 뜻이라면 아픔을 이길 뿐 아니라 청춘과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순례자로 천국을 본향으로 두고 살았던 성직자 주기철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감옥과 고문을 마다 아니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예배하지 않겠다는 일사각오로 끝내 순교하였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순천 반란사건 중에 공산군에 의해 두 아들 동인, 동신을 처형한 원수를 양자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죄인된 자신을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그 사랑을 이웃 아니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었던 것이다. 순례자에겐 자식과 원수의 개념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이 땅에 살 때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25 사변 때 서울 서소문교회를 시무하셨던 김동철목사는 남쪽으로 피난가면 살 수 있었지만 아내와 자녀들의 피난 가자는 울부짖음을 마다하고 교회와 교인을 지키다가 끝내 북으로 납치당하여 평안도 연안에서 순교 당하셨다. 순례자는 때론 가족들 보다 하나님의 사명이 먼저이어야 한다. 순례자는 주님을 위해선 때로는 가족들을 놔두고 떠날 때도 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사랑과 용서를 받은 자는 또 다시 남을 위해 죽기까지 하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순례자의 삶이다. 나의 목회신학은 십자가와 예수님의 성품과 사상을 닮기를 원하며(예닮원) 그의 사역을 실천하는 것이다.

2) 순례자의 축복

고통 당하고 있는 세계가 나 한 사람으로 인해 구원받고, 나 한 사람의 희생으로 행복해지는 복 받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축복이다. 아직 이뤄지지 않는 일이지만 100% 이뤄진 것으로 믿고 산다. 지금은 혼자이고 소수지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지금은 무명 인이지만 나중엔 그 이름을 창대 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이루는 복의 근원이 된다. (창12: 2, 욥8: 7) 우리를 축복하는 자는 복 받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천대하는 자는 벌받고 망한다. (창12: 3) 왜냐면 순례자로 살기 때문이다.

3) 순례자의 생활 방식

계속적으로 떠나는 삶이다. 아브라함의 장막생활(Tent)에 잘 나타나 있다. 한 곳에 정착하여 "이곳이 좋사오니" 하고 영영 머무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산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세겜에서 벧엘로 헤브론으로 떠났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가는 순례자.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명이 있고 그 인생에 꿈과 비전이 떠나지 않았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희생과 순종, 외로움과 인내, 고난,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우리 해외 한인 장로회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종교개혁의 신앙전통을 이어 개혁주의 신학(깔뱅신학)을 기초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과 유대를 가지고 있으며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열려 있는 교단이다. 벌써 캐나다 노회 출신으로 감리교 신학대학 출신과 성결교의 서울 신학대학 출신이 교단 대표인 총회장을 거쳐갔다. 그 뿐 아니라 33개 교회 중 총신대 출신 (합동)목사가 여섯 분이 계시는데 충성스럽고 성공적인 목회를 하신다. 우리 교단은 교파를 초월하여 화합과 일치와 섬김을 중요시하는 교단이다.
그리고 조국을 떠나 온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 이민 순례자의 신학으로 세계 한인 이민자를 위한 교단이다. 바라기는 multicultural society 속에서 하나되어 서로 협력하는 열린 복음적인 교단의 사명 다하기를 바란다. 이 사역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포용과 아량을 가지고 섬기는 목회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제자의 발을 씻겼듯이 말이다.

5. 나가는 말

해외한인 장로회는 조국을 떠나 북미 땅에 와서 사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위한 교회이다. 우리는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이질감 속에서, 한국의 전통과 현재의 캐나다 생활에서 오는 차이에서 발생되는 갈등과 아픔과 차별과 좌절을 한국적 믿음으로 잘 이겨내야 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순례자이다. 순례자는 영원한 본향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이 땅에 보내신 소명으로 오늘에 사명을 감당하므로 내일에 밝은 새 역사를 창조하자.
과거는 변두리(marginality)에 있었지만 지금은 캐나다 장로회와 캐나다 연합교회와 손을 잡고 캐나다 교회와 미국교회와 호주교회, 뉴질랜드교회, 남아연방교회 및 영어권 사용국가들과 교류하며 아니 전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역군이 되자. 새 역사 창조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 와서 돈 벌어 집도 사고 사업체도 마련하고 자녀교육을 잘 시켜 이민에 성공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교회도 애써서 큰 교회당을 짓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는 교회를 이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캐나다 이민 반 세기를 통하여 캐나다 국가와 교회에 어떤 인물을 내 놓아 공헌하고 있는가를 물어보아야 하겠다.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를 함께 챙겨야 한다. 여러분과 나, 이 땅에서 죽는 날까지 보내신 이의 사명을 감당하는 소명자의 철학을 가지고 살기를 바란다.

개신교수도원수도회 Protestant Abbey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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