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모님이 건강해야 목사님이 건강하고 목사님이 건강하면 교인과 교회가 건강해진다.
이민교회의 사모님들은 조국을 떠나온 이민자들의 아픔과 애환을 뒷바라지 해주고 열악한 교회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며
숨은 봉사를 하느라 피곤하며 목사님의 내조와 자녀양육으로 버거워 치쳐있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에 한인교회들이 700
교회가 넘고 교인수가 수 십만여명이 넘는데 지금 우리 사모님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
교회 안에서 버겁게 사역하시면서도 조그만 직분 하나도, 이름도 없이 일하신다. 사모님들은 교인들과 가까이 있으며
한 길로 가지만 거리가 있어 외롭다. 사모님들은 주장도 의견도 없이 목사님들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존재로서 도외
시 당하고 있지 않는가? 사모님들도 한 인간이기에 자기의 의견과 주장이 있는 인격체이다. 금번 사모 수련회는 사모
님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감과 사명감을 찾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만주에서 조선 이민자들 목회하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육칠십년전 내가 어릴적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하얀 와
이셔츠를 풀매겨 입으로 물을 품어서 숯불 다리미로 빳빳이 다림질하여 정장을 차려 입게 하시면 전도부인이 와서 함께
심방을 떠나시던 일이 생각난다. 엄마는 아버지의 뒷 모습이 골목길에서 사라지도록 바라보시다가 눈에 안보이면 방에
들어와 우리를 돌보셨다.
앨범에 붙여진 교인전체 기념사진에 아버지 옆에 어머니는 안 계셨고 다른 곳에도 엄마는 안 찍혀졌다. 철 없던 아이
시절 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이 사진에도 저 사진에도 어디에도 안 계세오.", "왜 안 찍으셨어요?", "엄마 진
짜 우리를 낳은게 사실이예요? 맞아요?" 엄마는 두 세 번 물었던 나의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엄마가 너희 6형
제 돌보느라 틈이 없어 사진을 못 찍었다. 엄만 너를 낳은 엄마다." 6.25가 발발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피난가
지 않으시고 교인과 교회를 지키시다가 공산당에 납치되어 이북으로 끌려 가셨을 때 국군이 서울에 입성하던 9.28에 아
버지를 찾아 서 대문 형무소로, 어디에 갇혀 계시다는 소문따라 찾아 다니다가 몇 일 동안은 반도호텔 지하실과 조선호
텔에 가셔서 시신들을 헤집어 봤지만 끝내 아버지를 찾지 못해 우시고 아퍼하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후 다시 나는 미국에 온 한인동포를 목회하는 이민목사가 되면서 사모된 아내를 옆에서 보게 되었다. 시간과 상황은
차이가 있어 다르지만 사모의 역할은 본질에서는 같다. 목회를 하다가 목사가 교인의 문제로 아파하면 사모는 어느새
제단에 엎드려 울고 있었고 교인의 사정으로 이리저리 뛰어 다닐 때 사모는 그 집에 찾아가 함께 있어 주었다. 때론
사모가 말을 적게 하면 교만하다고 하며 말을 좀 하면 수다 스럽다고들 한다.
남들보다 못지 않게 배웠으면서도 바보가 되어야 하고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체념하고 애처롭게 사는 사모들이다.
우리 하나님은 목사님들처럼 사모님들에게도 소명감과 사명감을 같이 주셨는데 교회 안에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문화
와 전통이 복음보다 앞서면 안 되는데 말이다.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Protestant Abbey Mission) 운동은 케톨릭교회 수도원처럼 세상을 등진 거룩성 즉 영성운동
을 추구하는게 아니다. 개신교 수도원 운동은 세상 안에서, 세상속에 살면서 하나님과 인간관계에서 거룩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수도원은 세상에서 피곤하고 지친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진자들이 찾아와 말씀과 기도와 성찬과 침묵으로 그리스
도 안에서 참 평안을 얻는 영혼의 안식하는 자리며 시간이다. 여기서 영혼의 갱신을 얻어 다시 세상에 돌아가 새로운 삶
을 창조하는 것이다.
2년 동안 수도원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사모님들과 여성 목회자를 위한 말씀 연구회가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영성회
복과 친교을 나누다가 이젠 다른 사모님들을 위한 수련회를 마련하기로 했다. 사모수련회는 수도원을 건축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교회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산을 생각지 않고 우선적으로 믿음
으로 시작했다. 성경연구회 회원들은 모두 다 준비위원이 되어 사모수련회를 위해 기도하며 자발적 헌신으로 임했다.
사모수련회의 프로그램과 조직도 모두 사모님들 자신이 스스로 만드셨다. 사모님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모 영성
말씀과 기도회 그리고 미술치료, 아침기도와 침묵으로 걸으며 기도와 묵상으로 자기를 내려놓기, 간증과 사모님들의 이야
기 등이 있다.
우선 멀더라고 자연이 우거지고 시설이 깨긋하고 조용한 에즈라 지도자 센타(EZRA Leadership Institute)를 택했
다. 수련은 집을 떠나 좀 거리가 떨어진 곳을 택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깨끗한 자연치료를 중요시 했다. 값비싼
54인승 대형버스를 대절했다. 강사들은 무보수로 하시기로 했다. 작은 이민교회를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은 대형 버스를
대절하여 여행을 가지 못한다. 큰 교회가 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 할 뿐이다. 사모님들의 버스 여행(왕복 10시간)을
통해 느끼게 하고 싶었다. 가능한 한 그동안 수고하신 사모님들의 노고를 격려하며 용기와 꿈을 주며 힘을 내게 해드리
고 싶어서 였다. 여기엔 남자 목사님들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지 않으신다. 사모님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친교를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처음에는 선착순으로 20면 등록비 없이 받기로 했지만 에즈라 수양관에서 10명을 늘려서 30명까지 받아 주겠다고 하셨
다. 알렐루야! 또 어느 권사님은 버스비 일체를 맡아 주셨다 또 수도원 사용과 식사도 에즈라 수양관에서 무료로 제
공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수양관의 호의를 감사히 받고 대신 헌금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집사님이 뜻밖에
그 헌금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다. 여호와이레! 수도원에서 하는 사모 수련회는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돕는 사람들
을 보내시어 모든 일을 맡아서 해 주셧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실하게 믿음과 기도로 하면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것을 사모님들이 체험하셧다.
20대 후반 사모님은 2살 짜리를 놔두고 수련회에 참서하십니다. 30대, 40대, 50대 현역사모들의 울부짖는 모임입니
다. 감리교, 순복음, 고신, 장로교 등 교파 연합하여 이해와 사랑으로 함께 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Network
가 형성되고 힘찬 이민 목회자의 내조자와 교회 어머니 역활을 감당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사모님 수련회는 어느 한 교
회가 감당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초교파로 다양성을 가지고 상호이해를 통한 연합과 단합을 통해 공통분모의 사모 주체
성 인식과 미래지향적인 사모목회 내조의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포스터 모더니즘 시대의 목회는 사모가 그림자
로 뒤에 숨어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뛰는 게 아니라 정면에 나서서 함께 주신 사명을 사모답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큰 도시의 많은 사모님들이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정신과의사에게 가면 소문날까봐 두려워
서 통역을 대동하고 미국인 의사에게 가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차마 여기서 퍼센트를 밝히지 못하지만 엄청 퍼센트가
놀랄만큼 높습니다.
이민교회가 은혜롭게 부흥하려면 사모님들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개신교 수도원 수도회는 참석 수에
상관없이 질적으로 좋은 수련회를 가지고 싶습니다. 이번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얻은 교훈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